(22)‘돈의 논리’에 빠진 한국사회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2023.02.13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한국에서는 하루건너 사건 사고가 터지고, 언론과 여론은 현재를 따라가기에 바쁘다. 과거는 곧 잊히고, 미래를 내다볼 여유는 없다. 가끔 제 자리에 멈추어 현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미 알려진 사실 몇 가지를 재확인하자.

한국은 살 만한 곳인가?

한국 경제는 급속히 성장해왔다. GDP는 세계 10위권에 근접했고, 1인당 GDP는 2000년에 비해 세 배 가까이 올라 유럽연합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은 말 그대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OECD 최신 통계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38개국 중 34위다. 사회 보장에 관한 지표도 대체로 낮은 수준이다. 빈곤율은 높은 편이고, 특히 노인빈곤율은 가입국 중 가장 높다. 소득 불평등(지니 계수)도 큰 편에 속한다.

성별 임금 격차는 지난 30년간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OECD 가입국 중 독일에 이어 두 번째이고, 성차별 정도를 나타내는 사회 제도와 젠더 지수(SIGI)도 높은 편이다.

산재 사망률은 가입국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부상, 질병, 장애로 일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한 공공 지출은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심각하다. 안정적 노동과 불안정 노동의 분리는 일반적이지만, 한국처럼 사회문화적 신분제마냥 작동하는 곳을 찾기는 어렵다.

자살률은 압도적 1위다. 합계출산율은 2018년 이후로 0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OECD가 제공하는 1960년 이후 통계에서 합계출산율 1.0 이하를 기록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의 사회적 지표가 나쁘다는 사실은 전혀 새롭지 않다. 주목해야 할 것은 통계 수치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이다.

한편에는 이런 지표의 의미에 무관심한 이들이 있다. 해외에 나가보니 한국만큼 안전하고 편리하고 살기 좋은 곳이 없더라는 사람을 종종 본다. 상당한 자산 또는 안정적 소득이 있는 사람, 차별의 경험과 거리가 먼 사람은 한국의 현실을 굳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 빈곤 노인, 장애인, 아픈 사람,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게 한국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더구나 이 사회에는 일종의 ‘추락 지점’이 존재해서, 그곳을 지나면 나락으로 떨어져 빚의 올가미에 잡혀버린다.

다른 한편에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오로지 ‘돈의 논리’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다. 앞서 나열한 지표는 사회 보장 강화와 노동시장 개편을 요구하지만, 이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민주화부터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성장까지 사회적 삶의 문제는 ‘경제’와 ‘성장’이라는 박정희식 패러다임으로 환원된다. 과거 진보정당이 주장했던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기본소득도 돈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회 보장 강화=국가가 돈 많이 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는 정치인뿐 아니라 다수 시민의 기본 인식이기도 하다. 돈으로 환산 가능한 이익과 혜택이 사회 보장을 평가하는 첫 번째 척도로 작동한다. 사회 서비스 영역 강화, 사회적 시민성과 권리에 기초한 사회 정책, 노동시장과 사회 보장의 통합체로서의 복지국가 등은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2021년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 결과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조사 대상 17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인만이 물질적 행복을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는 가족, 건강, 사회, 직업 등을 선택한 다른 나라와 분명히 대비된다. 이 결과가 단순히 ‘한국인은 돈에 집착한다’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돈이야말로 삶의 다양한 가치를 실현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믿음이 반영된 결과 아닐까. 국가의 존재 이유는 부자 나라가 되는 것이고, 개인의 첫 번째 목표도 부자가 되는 것이다. 돈이 많아지는 것이 사회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된다.

사회적 재생산의 중단

돈의 논리에 따르면 자신에게 얼마짜리 이익이 돌아오는지가 삶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그럼 굳이 사회 보장을 지지할 이유가 사라진다. 나에게 이익이 될지 불이익이 될지 불확실하고, 자신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 한국종합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을 줄여야 한다”에 대한 찬성 의견이 크게 늘었다. 최근 몇 년간 대중의 여론을 주도한 것은 사회 보장을 강화하고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 개인의 자산과 소득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공정’에 대한 요구는 그 믿음을 실현하기 위한 공정한 규칙을 마련하라는 의미였다.

돈이 많아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한심한 착각이다. 다른 문제는 돈으로 대충 틀어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인구 감소는 해결하지 못한다. 그동안 수백조원을 쏟아부었다는 저출생 대책은 목적부터 불분명하다. ‘애 낳으면 돈을 주겠다’는 수준으로 시행되는 정책도 적지 않다. 전례 없는 0점대 합계출산율은 한국이 인간을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국가 경제가 성장하고 나 개인이 부자가 돼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이는 돈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논리와 가치를 요구한다. 주거는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아니고, 노동과 고용은 소득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아직도 인간적 삶의 기본 조건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시작하지 못했다.

각자도생은 현 상황을 표현하기에 너무 부족한 말이다. 공동체가 무너져 개인이 각자 살길을 모색하는 것인가, 혹은 자산과 소득 증가만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개인은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부자가 되는 것 말고는 삶의 다른 방식을 상상할 수 없는 강박적 존재에 가깝다. 이들은 자신이 경제적 삶에 몰두할 뿐,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가 어떠해야 할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결국 사회는 재생산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여기저기서 점진적 소멸이 시작되고 있다. 물론 소멸의 영향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그나마 나은 곳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번에도 부자가 되는 것이 승리를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선택될 것이다. 한국사회가 부자 되기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자기 소멸이라는 정해진 미래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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