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와 ‘X-이벤트’

최영일 시사평론가
2022.11.21

이태원 참사, 혹은 10·29 참사 후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158명의 귀하고 젊은 생명의 소멸, 그 슬픔에 공식 애도기간이 지났어도 추모가 이어진다. 기가 막힌 것은 사고의 양상, 사망과 부상 등 피해의 규모가 도무지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장례절차, 삼우제, 사구재가 지나고, 오롯이 차분하고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함께하던 이의 부재가 얼마나 텅 빈 공허로 다가오는지를. 특히 참사로 자녀를 잃은 부모의 트라우마는 이제 입구에 서 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두려운 슬픔이다. 공동체가 손잡고 끌어안아야 한다.

핼러윈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이태원역 1번 출구 안내봉에 국화꽃이 매달려 있다. / 연합뉴스

핼러윈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이 마련된 이태원역 1번 출구 안내봉에 국화꽃이 매달려 있다. / 연합뉴스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도 남아 있다. 과학자들은 냉철하게 이 사고의 모델을 단순화한다. 단위면적당 군중밀도, 즉 1㎡당 평균 몇명의 개체가 들어간 상황이었나, 단위면적당 6명 이상이면 자기 의지로 움직일 임계점을 넘고 이상행동이 시작된다는 등의 시뮬레이션이 나온다. 이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으로 받아들인다.

실제 사고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과학 실험실의 상태와 현실의 현상은 차이를 보인다. 이태원 참사는 더 그렇다. 실험 모델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시 이태원 거리에 있던 개체들은 사람이었다. 자유의지를 갖고, 상황판단을 하고, 위험을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고도의 지능과 활동력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계 모델이 아니라 복잡계 모델로 분석해야 한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생긴 선형적인 사고가 아니라 여러 변수가 얽힌 경로종속적 사건이었다. 수많은 변수 중 몇개만 들어내도 사고의 위험은 해소될 수 있었다.

‘X-이벤트’라고 최근 미래전략에 등장한 용어가 있다. 산타페 연구소의 존 캐스티가 정리한 ‘X(extreme·극단적인)-이벤트(사건)’란 주로 거시적인 사회 대혼란에 적용한다. 9·11과 같은 대규모 테러, 핵전쟁과 원전 사고, 디지털 블랙아웃, 식량위기, 복잡한 국제금융시스템의 붕괴, 국가 부도, 다국적 기업들의 갑작스러운 주가 하락 등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현재 모두 겪고 있다. 곧 터질 것으로 예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특정 시공간에서 빠르게 벌어진 이태원 참사가 ‘X-이벤트’라고? 그렇다.

사고 후 윤석열 대통령은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라는 다소 엉뚱한 해법을 언급했다. 언론기사들은 빅데이터 분석, 드론, 인파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 등 4차 산업혁명의 여러 분야를 갖다 붙였다. 미안하게도 이러한 기술은 대부분 이미 존재한다. 통신사의 빅데이터 분석으로 해당 시간, 해당 공간에 몇명이 몰려 있었는지, 심지어 누구였는지까지 파악 가능하다. 지하철역의 전자계수와 곳곳의 CCTV로 유동인구의 유출입과 밀집도도 계산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반 ‘이태원클럽발(發) 확산’이 퍼졌을 때 클럽에 모였던 불특정 다수의 젊은이를 추적하던 역학조사를 떠올려 보라. 무직이라고 얘기했던 인천의 학원강사를 찾아내고, 물류센터로 코로나19가 퍼져나간 과정을 이틀 정도에 다 잡아냈다. 사건의 임계점을 가른 핵심변수는 책임 있는 자들이 아무도 미리, 또 참사 초반에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와 관련된 몇개의 변수가 과학적·사회적 혹은 정치적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 뿐이다.

<최영일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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