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 카메라의 ‘상사형 행동’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2022.10.31

‘자동화된 사회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미디어의 구조, 물질적 기질에 특정 방향으로 사회성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자동화 기술이 등장하면 그에 따라 인간의 문화적 특성이 변화하는데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술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하고 있다는 단서이기도 하다.

구글 네스트가 출시한 초인종 카메라 ‘헬로’ / 네스트

구글 네스트가 출시한 초인종 카메라 ‘헬로’ / 네스트

비단 자동화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초인종 카메라가 널리 확산되고, 이에 따라 인간의 문화적 행동이 바뀌는 경향도 이 개념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초인종 카메라는 초인종처럼 보이는 보안 카메라로, 벨을 누르면 일반 초인종처럼 작동하지만 동시에 안에 있는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 바깥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초인종 카메라, 그중에서도 무선 인터넷 기능을 담은 스마트 초인종 카메라는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기술이다. 팬데믹으로 온라인 주문이 급증하면서 초인종 카메라의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주문한 제품이 문 앞에 잘 도착했는지 혹시 누군가 가져가지는 않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할 일이 많아져서다. 배송 기사와 대면을 피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조건도 영향을 미쳤다.

이 스마트 초인종 카메라는 이전 기술과 달리 카메라를 타고 들어온 모든 영상 콘텐츠를 외부로 공유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필요에 따라 카메라를 활성화해 주변 움직임을 감지할 수도 있다. 기기 제조사의 서버와 연결돼 있기에 촬영된 영상물의 아카이빙도 가능하다. 모든 제품 조작은 스마트폰으로 제어된다. 언제 어디에서든 확인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구글 네스트, 샤오미, 링 등 굵직한 테크 기업들이 이 시장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경쟁 구도를 형성 중이다.

스마트 초인종 카메라 사용이 늘어나면서 사용자들의 행동양식에 독특한 변화가 관찰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상사형 행동(Boss Behavior)’이다. 비영리 연구기관인 ‘데이터&소사이어티’가 명명한 이 행위 양식은 크게 모니터링, 훈계, 징계 등 3가지로 나뉜다. 예를 들어 택배기사가 유니폼을 입지 않고, 주문 상품을 집 앞에 두고 가면, 촬영된 영상을 주문업체에 직접 전송하는 행태가 자주 나타난다. 이는 모니터링과 징계에 해당한다. 특정 시간대엔 벨을 누르지 말라거나 택배를 놔두는 위치를 지정하면서 배송기사의 행동 변화를 제언하는 건 훈계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스마트 초인종 카메라 기술은 사용자가 택배기사의 상사처럼 행동하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어떤 고용관계도 없는 택배기사를 향해 직장 상사나 관리자처럼 행동하려는 태도, 말하자면 ‘기술화된 사회성’을 형성했다. 이런 유형의 사회성은 노동자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침으로써 다시 사회화된다. 초인종 카메라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인사를 올리고 정중하게 경의를 표해야만 하는 특별한 풍경이 현실화되고 있다.

CCTV에 이어 스마트 초인종 카메라까지 일상 감시체계의 네트워크로 들어오면, 노동자들의 작업장은 무한대로 넓어질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작업장뿐 아니라 그곳을 벗어난 공간까지 감시의 눈이 확대된다. 기존 초인종 카메라에 연결한 네트워크만으로도 인간의 태도와 노동 조건은 큰 변화를 겪는다. 기술 초감시 사회 앞에서 사회제도의 대응 속도는 늘 더디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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