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이시철 경북대 교학부총장 “국립대 개혁에 정부규제는 독이다”

한기홍 자유기고가
2022.08.29

수도권과 전국권의 격차와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엄습한 팬데믹으로 그 위기의 성격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대학도 몸살을 앓고 있다. ‘지방소멸’이란 섬뜩한 위기의 시대에 각 지역의 대학은 어떤 모색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시철(58) 경북대 교학부총장(대학원장 겸임·행정학과 교수)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지역의 위기와 대학의 생존법’을 물었다.

이시철 경북대 교학부총장은 “정부가 대학에 자율을 부여하고, 등록금·학사·교원·입학 등에서 규제를 대폭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주미영 작가

이시철 경북대 교학부총장은 “정부가 대학에 자율을 부여하고, 등록금·학사·교원·입학 등에서 규제를 대폭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주미영 작가

그는 오래전부터 ‘사람-건강-녹색-도시’의 연결성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린 어바니즘(green urbanism·도시, 공동체, 생활양식에서 환경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구현하는 주의)’에 기반을 둔 ‘콤팩트 도시(compact city)’ 구상도 그의 중요한 연구 분야 중 하나다.

최근에는 주목할 만한 2개의 논문을 썼다. ‘밀도와 안전의 공존 가능성; 코로나19 시대, 공간계획의 변화방향 예측’, ‘코로나19, 대구의 초기 대응에 관한 주요 쟁점 분석’이 그것이다. 이시철의 논문을 읽어보면 그가 항상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도시문제를 바라봤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경제학·생태학·인문학 등 인접 학문에서 두루 영감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압축도시는 여전히 유용하다” 이시철은 오래전부터 밀도를 중시하는 ‘콤팩트 도시’를 옹호했던 학자다. 밀도야말로 도시가 창조적으로 발전하는 근원이라고 봤다. 대중교통을 중심에 배치하고, 복합용도로 시가지를 개발하면 이른바 ‘도시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요컨대 도시계획에서 ‘밀도’는 계획의 정당성이자 최대의 성과이며, 대부분 평가의 기준이 된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급반전이 일어났다.

“안전과 밀도의 충돌이 시급한 의제로 떠올랐다. 결국 밀도를 낮추는 공간의 분산이 필요했다. 당장은 주거와 상업시설에 대한 건폐율과 용적률을 낮추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균형발전에 우선순위를 두어 계층적·공간적 격차 해소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압축도시는 여전히 유용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땅이 부족한 나라에서 미국식 교외개발은 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최근 미국에서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능력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2020년),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로스쿨 교수(2019년)가 메리토크라시를 각기 비판적으로 성찰한 2권의 책에 대한 논평이기도 했다.

메리토크라시는 실력, 또는 능력 중심의 사회구조를 지칭한다. 노력과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일견 당연한 논리다. 미국을 대표하는 두 엘리트 학자가 이 논리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시철은 능력주의의 폐해를 우리나라 지역균형발전의 위기에 적용했다. 서울의 집 부자를 메리토크라시와 연결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서울에 집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와 주립대 출신의 무명 변호사의 차이 나는 인생 경로를 메리토크라시 개념 안에서 비교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이시철은 자신이 명명한 ‘공간 메리토크라시’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능력주의의 수용으로 ‘엘리트 세습’이 고착되면서 사회·문화 자본에 이어 교육과 일자리조차 결국 대물림되고 있다. 수도권에 인구와 자본이 집중하는 현상에도 메리토크라시가 작동한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공간 역시 메리토크라시의 논리가 관철된다고 본다. 공간 점유의 승자와 패자 모두가 ‘공정하다고 착각하는’ 가운데 지역별 경제·문화·사회 자본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시철 교학부총장은 “대학은 혁신의 근거지이며, 특히 전국권 대학은 지역균형발전의 견인차”라고 말했다. / 주미영 작가

이시철 교학부총장은 “대학은 혁신의 근거지이며, 특히 전국권 대학은 지역균형발전의 견인차”라고 말했다. / 주미영 작가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드라이브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행복도시와 혁신도시 사업으로 실제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수도권 인구집중 현상을 그나마 일부라도 억제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지방균형발전 이슈가 거의 구체화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실행전략 측면에서 노무현 정부에 비해 부족했다. 주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벌였는데, 226곳의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개발사업이었다. 수도권의 거대한 밀집현상과 맞설 수 있는 대책이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는 아직 명쾌한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윤 정부의 반도체 인재 양성론은 수도권 규제 완화의 물꼬를 틀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나는 우려하고 있다.”

경북대와 서울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한 그는 워싱턴대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내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 대전광역시 교통국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경북대 강단에 섰다.

2009~2010년 매사추세츠 주립대에서 세 학기를 강의했고, 2017~2018년 풀브라이트 방문교수로 예일대에서 1년간 연구와 강의를 병행했다. 예일대 교수, 학생들과 교류하며 소위 세계적인 명문대의 겉과 속을 두루 파악하게 됐다. <예일, 사계>라는 제목의 책도 펴냈고, 여러 대학에서 예일대의 강점과 그에 가려진 실상을 강의했다. 강의의 제목은 ‘아리스토텔레스, 월스트리트로 가다: 예일대 이야기’다.

“책에는 ‘전통, 자본,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미국 명문대의 빛과 그늘’이란 부제를 달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월스트리트는 예일대의 빛과 그늘을 대비하는 두 상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일대의 리버럴 아츠(liberal arts·기초학문) 교육을 상징한다. 예일대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배울 때,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본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졸업생들 다수는 결국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시장에 진입해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 현실을 두고 학생들과 대화를 했다.”

외형적으로 압도적인 강점을 지닌 예일대의 면모를 여기서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우선 예산에서 우리나라 대학과 비교할 수 없다. 1년 예산이 4조원, 유보된 기금이 50조원이나 된다. 그래서 예일대를 ‘하나의 거대한 기금운용회사’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교수나 학생 상당수가 겉으로는 진보주의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대학의 존재 자체가 미국 자본주의를 굳건히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최초로 대학 기숙사를 의료시설로 제공 “2020년 봄 코로나19 초기, 당시 대구에서 확진자 수가 하루 700명 이상 늘어나던 때다. 3월 초 대구시장이 경북대 총장에게 약 400명의 경증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캠퍼스 내 기숙사를 제공해 주도록 급히 요청했다. 캠퍼스 감염의 위험성을 들며 반대한 학생과 교수들도 있었다. 결국 ‘지역이 없으면 대학도 없다’는 대의(大義) 앞에 경북대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당일 한밤중에 수백명의 환자가 급히 이송됐다. 의료진과는 별도로 대학 측은 주말에도 긴급 상황실을 운영하며 엄중 관리에 들어갔다. 학생회에서도 직접 환자를 돌보는 봉사활동에 나섰다. 대학의 기숙사를 실질적 의료시설로 바꿔 제공한 최초·최대의 사례로서 대학의 책임을 다한 모범으로 기록될 것인데, 비슷한 시기에 예일대 등에서 간호 및 소방인력을 위한 캠퍼스 공간 제공을 거부했던 것과 대조된다.”

이시철의 관점에서 팬데믹의 상시적 유행은 지역균형의 이슈와 맞물려 있다. 2019년 말을 기점으로 수도권 주민의 숫자는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50%를 넘어섰다. 고용·기업·세금·서비스 등 경제적 가치의 집중은 대략 70%를 상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면적의 13%인 서울과 수도권에 1000대 기업 본사의 74%가 밀집한 현실이 문제의 심각성을 웅변하고 있다(국가균형발전위원회 2020년 통계).

경북대 반도체융합기술연구원. 최근 경북대는 삼성전자와 반도체계약학과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이시철 제공

경북대 반도체융합기술연구원. 최근 경북대는 삼성전자와 반도체계약학과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이시철 제공

이 현상을 ‘수도권 전체의 나쁜 뉴욕화’라고 그는 명명했다.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도시로서의 역동성과 화려함 이면에, 고밀도로 감염병에 취약한 뉴욕의 민낯과 닮아간다는 것이다. 혼잡과 과밀, 폭력과 범죄, 차별과 착취의 악명 높은 정체성이다. 그의 관점은 수도권의 폭발적 비대와 지방의 소멸을 걱정하는 비관론에 맞닿아 있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현재의 ‘소멸 위험’ 지역이 오히려 살기 좋은 공동체로 전환될 수 있을까. 감염병의 위험이 덜한 청정지역으로 인구와 기업이 이전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지방 소도시와 농촌이 팬데믹 시대를 맞아 새로운 기회를 잡는다는 역설이 성립될 수 있을까. 감염병을 피해 여행·이주·이직하려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유인 요소(pull factors), 또는 머물게 하는 장치(retaining mechanism)를 적기에 마련하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이시철에게 아직 그 전망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지역불균형의 심화는 보건의료 측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지방의 대도시 역시 의료시설과 서비스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의료서비스 접근성 하위 20% 지역의 92.5%가 지방에 몰려 있다. 226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34개(수도권 12개 포함)는 응급의료기관이 아예 없는 실정이다. 2020년 초 대구·경북 지역은 매일 확진자가 폭증했다. 지역 내 병상 부족으로 의료시스템 붕괴가 우려됐다. 인구 250만의 대구에서조차 임산부나 출산 중인 확진자를 진료할 곳이 없었다. 현장 의료진의 증언에 의하면 ‘복막 투석환자를 챙길 수 없어 인천으로까지 보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감염병에 대응하는 응급 인프라가 전국적으로 너무도 부족하다. 그 현실을 정치권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 의료자원의 중앙집중적 관리도 중요하지만, 감염병이 발생한 각 지역과 현장에서 신속하게 대응하는 조치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구와 같은 대도시에서도 감염병 전담병원, 음압병상 등 인프라의 부족 현상이 심각했다. 공공의료체계는 전국적으로 적절히 분산돼야 하고, 기관별로 충분히 지원돼야 함에도 정부는 B/C(비용 대비 편익) 분석만 하고 있다고 그는 한탄했다.

“지역균형 정책은 혁신과 함께 포용의 가치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퇴행과 표류는 절대 안 된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팬데믹 시대 국토와 도시 공간에는 큰 변화가 예측된다.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변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비수도권의 공공의료체계 수준은 절대적으로 미흡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수도권 경제를 살리면 그 낙수효과가 지방에까지 미칠 것’이란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혁신의 근거지, 대학 이시철은 ‘지방대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수도권 대학에 대칭되는 개념은 ‘전국권 대학’이라고 본다. 그가 보기에 전국권 대학은 지역균형발전의 견인차다. 세계적으로도 대학은 혁신의 근거지였다는 것이다.

이시철 교학부총장은 “정부의 반도체인재 양성 계획이 대학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주미영 작가

이시철 교학부총장은 “정부의 반도체인재 양성 계획이 대학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주미영 작가

“1088년 볼로냐대학 출범 이후 대학은 늘 그런 역할을 해왔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스탠퍼드대학은 실리콘밸리 열기를 넘어 현대 IT 혁명의 본산으로 기능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스웨덴 웁살라대, 중국 칭화대 등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대학이 자국 사회경제와 기술의 혁신을 주도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지역 위기는 대학 위기와 상통한다. 과학기술 연구대학은 ‘외눈박이 코뿔소’, 국립대는 ‘눈먼 코끼리’, 사립대는 먹을 것 없는 ‘빙하 위의 백곰’이란 자조와 냉소에 직면해 있다. 먼저 국립대가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 어렵더라도 학생(수요자) 중심의 교과과정 수립, 전과·편입·구조개혁 등 학사제도의 유연화를 대학 스스로 단행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는 진정한 대학자치가 필요하다. 정부가 대학에 자율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고, 등록금, 학사, 교원, 입학 등에서 규제를 대폭 풀어야 한다. 국립대 재정의 안정성을 적어도 OECD 평균값으로 강화해야 한다. 파편화하지 말고 묶음으로 일단 주고, 나중에 책임을 묻는 ‘통 큰 방식’이 좋다. 마지막으론 자치단체와의 전면적인 협력이다. 강력하게 실천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윤석열 정부가 15만 반도체 인재 양성 계획을 발표했다. 규제 완화와 재정 투자 확대를 통한 양성책이다. 규모는 확정하지 않았지만, 교원확보율만 충족한다면 학부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할 계획이다. 수도권·비수도권 대학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수도권 대학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국정과제인 ‘이제는 지방대학’, 일명 ‘지방대학 살리기 정책’과는 상충되는 기조다. 비수도권 대학은 반도체 문제로 지금 심각한 위기감에 휩싸였다.

“어떤 곳이든 단순히 ‘반도체학과’ 하나 설립하고 갑자기 교원을 충원한다고 해서 양과 질 측면에서 필요인력이 배출되는 게 아니라고 들었다. 자연계열의 다양한 전공 역시 함께 어우러져야 반도체 수업과 연구가 제대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반도체 인재 양성 방침으로 전국권 대학의 우려가 극심하다. 당장 입시와 편입 과정에서 수도권 쏠림 현상이 극대화할 것 같다. 이런 흐름은 ‘지방대학 시대를 열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목표와도 역행한다. 각 대학이 가진 현재의 반도체 시설·장비·인력을 공유하면서, 오히려 지역대학을 살리는 계기로 반도체 양성 계획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수평적·수직적 역할 분담의 전략도 효과적으로 동원해야 한다. 지역대학에 대해 별도의 의미 있는 지원 패키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수도권과 전국권 대학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

<한기홍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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