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슬픔

김주연 연극평론가
2022.08.29

지난해 초연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르는 연극 <빈센트 리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상처를 마주하고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극은 빈센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살해당한 뒤, 그의 어머니 아니타와 빈센트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데이비가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했지만, 모종의 공감대를 느낀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알고 있는 빈센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기로 하고, 그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함께 나눈다. 이를 통해 관객 역시 무대 위에 부재하는 빈센트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씩 희미한 윤곽을 따라가게 된다.

연극 <빈센트 리버> / 엠피엔컴퍼니

연극 <빈센트 리버> / 엠피엔컴퍼니

후반부에 데이비가 밝히는 빈센트의 죽음은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고 처참하다. 아들이 왜,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무대 위의 아니타나 무대 밖의 관객 모두 숨을 죽인 채 고통스럽게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의 초점은 빈센트의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사람이 어떻게 그를 기억하고 새롭게 발견하면서 자신들의 상처를 마주하는가에 맞춰져 있다.

빈센트가 죽은 지 18개월이 지났지만, 아니타는 아들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다. 큰소리로 울어본 적도 없다. 데이비 역시 겉으로 내색할 수 없는 상실감과 죄책감으로 고통받으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공연 내내 담배와 술을 입에서 떼지 않는 아니타나 약병에 의존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데이비를 보면 이들이 극도로 위태롭고 불안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극의 초반부에 아니타는 얼굴에 상처가 난 데이비에게 소독약을 발라주면서 자신의 이모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은 상처를 그냥 두었다가 결국 파상풍으로 다리를 자르게 됐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데이비에게 “상처는 깨끗하게 닦아야지”라고 말한다. 초반에 나오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아니타와 데이비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 대사는 상처를 피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고 충분히 치료해야 한다는 작가의 의도를 은유하고 있다.

아니타와 데이비의 대화는 결국 그날 밤의 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빈센트에 대한 서로의 추억을 나누는 기억의 장이 된다. 죽은 이를 온전히 기억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임을 생각할 때, 이들의 대화는 그 자체로 빈센트를 기리고 애도하는 하나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극중 데이비가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아니타의 집을 찾은 것 또한 이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즉 데이비의 상복은 며칠 전 죽은 자기 어머니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몇달 전에 죽었음에도 아직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빈센트를 위한 복장이기도 하다.

긴 대화에서 아니타와 데이비는 분명 서로 가까워진다. 여기서 아니타와 데이비가 느끼는 분노나 애정 같은 감정은 어찌 보면 부차적인 것이고, 그들이 서로를 통해 감각하는 빈센트야말로 이 대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빈센트 리버>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그 부재를 마주하고 감각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공연을 보고 나면 관객들도 처음엔 희미하게만 여겨지던 빈센트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인상을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부재하지만, 2시간 내내 무대를 가득 채우는 그 이름, ‘빈센트 리버’가 이 작품의 제목인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10월 2일까지, 드림아트센터 4관.

<김주연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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