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 넘나드는 새로운 창작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2022.06.20

‘그리드(Grid)’는 바둑판의 격자형이나 컴퓨터를 하나의 초고속 네트워크로 연결해 계산능력을 극대화하는 상호접속 가능한 전력계통 디지털 신경망이다. 미술에서 ‘그리드’는 1960년대 추상적이고 중성적인 구조, 논리와 조화 그리고 균형과 통일성을 보여주는 미적 형식을 일컫는 용어이기도 하다. ‘아일랜드(Ireland)’는 섬(Island)이란 의미뿐 아니라 한 나라의 명칭이다. 이러한 의미를 담은 ‘그리드’와 ‘아일랜드’를 결합한 전시 <그리드 아일랜드>(5.26~8.15)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리드 아일랜드> 전시 전경 / 서울시립미술관

<그리드 아일랜드> 전시 전경 / 서울시립미술관

이 전시는 미술관의 기능인 수집과 연구, 전시와 교육의 바탕이 되는 담론 생산의 조건이자 과정으로서 제작에 주목하는 동시에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한 공유와 협업을 가능케 하는 웹의 잠재력을 전시프레임으로 설정한다. 이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플랫폼을 구축해 새로운 창작방식으로 ‘제작’의 개념을 제안한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했던 작가들로 전시를 꾸렸다. 데이터 수집과 편집, 재생산 방식을 다루는 데이터 센터(김익현·현우민·안성석·홍은주), 비물질 데이터를 현실에 출력해 현존하는 신체로 제시하는 데이터 송출(권아람·김동희·니콜라스 펠처·민성홍·백정기·이다 다이스케x박성환·정진화), 그리고 데이터의 생산 및 소비 경향과 미디어 환경에 관해 다루는 메타 데이터(이은솔·이은희x김신재·한수지) 부분을 각각 맡았다.

‘그리드 아일랜드’는 창작시스템의 순환을 위해 창작의 새로운 조건 및 과정과 방법의 변화, 관계의 확장 등을 꾀한다.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의 핵심 키워드인 공간, 작품, 작가 간의 비선형적 ‘제작’을 전제로 일종의 게임의 원리와 물리적 한계에 대한 역할 및 비물질 데이터의 공유와 협업을 통해 시각예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다.

전시가 열리는 시공간에서 창작과 감상의 관계는 감상의 시선에서 작품과 소통이 가능한 지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국내외 현대미술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영상 미디어전시의 경우 한 작품의 시간이 짧게는 몇분 길게는 30분 이내다. 대형 전시프로젝트일수록 중력 없이 팽창하는 엄청난 양의 디지털 데이터의 산속을 걷듯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와 마주해야 한다. ‘그리드 아일랜드’는 디지털 영상과 설치를 작품과 작품 사이, 시청각적 감각의 여백에서 걷다가 앉고 또 가까이 다가가거나 멀리서 봐야 여유로운 감상이 가능하다. 마침 널찍한 공간이 있어 산책처럼 작품을 둘러볼 수 있다.

작품에 담긴 메시지 송출을 받아들이는 관계에 따라 다양한 시각적 차가 발생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못했다. 창작과 감상 간의 다양한 관계에서 공감대를 형성해갈 수 있는 공통의 감각, ‘홍은주-등장인물 소개’ 등 작가들 간의 연결망, 타자를 투영한 자아 성찰의 깊이와 넓이, 나와 타자 모습의 결합 지점, 각 작품에 숨은 공간 등을 탐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영시간이 28분 29초에 이르는 비디오작품 ‘비트콘드리아’를 따라 다중디지털 공간을 탐험했다. 시간의 차원, 해양생물학 등 다양한 경로를 관찰하며 상상의 이야기와 생명체를 접했다. 디지털 공간과 물리공간의 관계는 모호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가지는 명확했다. ‘가상성의 힘 혹은 중력 없이 팽창하는 데이터’에 대한 영상을 보고 들으면서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품고 있는 시공간임을 자각했다.

<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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