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스토퍼-차별금지법 이후의 사랑

조익상 만화평론가
2022.05.30

“갑자기 게이를 데려와 놓고 우리보고 좋아해 달라니 말이 안 되잖아.” 닉은 찰리와 만나고 있지만, 친구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로 우선 소개부터 했다. 닉의 친구들은 찰리를 기껍게 여기지 않았다. 찰리는 일찍 자리를 떠났다. “말해봐. 찰리의 어디가 불만이야?” 화난 닉은 친구들에게 물었고, 저 말이 답변으로 돌아왔다. “찰리가 게이라 문제라는 거군.” 닉이 확인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게이 혐오 분위기를 주도하는 해리가 답한다. “이러지 마. 닉. 여기에 동성애 혐오자는 없어.”

앨리스 오스먼의 <하트스토퍼> 한 장면 / 위즈덤하우스

앨리스 오스먼의 <하트스토퍼> 한 장면 / 위즈덤하우스

1994년생 영국 작가 앨리스 오스먼이 2016년 연재를 시작한 만화 <하트스토퍼>의 한장면이다. 영국에서는 이미 2010년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해당하는 평등법이 발효됐으니, 작가도 찰리와 닉도 성소수자 차별을 금하는 사회 속에서 10대를 보냈다. 그런데도 저런 동성애 혐오를 왜 그렸을까? 차별금지법으로는 부족한 걸까?

사실을 살피자면, 부족했던 게 맞다. 법만으로 사회와 개인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는다. 1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2018년 조사에서 영국 성소수자의 3분의 2가 차별을 염려해 공공장소에서 동성연인과 손을 잡지 않는다고 답했다. 40%는 언어폭력 및 물리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고등학교에서 게이임이 아우팅된 찰리도 힘든 경험을 했다. 찰리를 만나고서 바이섹슈얼로 자신을 정체화한 닉은 이제 혐오와 차별을 더 피부 깊숙이 느낀다.

<하트스토퍼> 곳곳에서는 차별금지법 이후의 사회가 그 이전의 사회, 곧 한국의 지금과는 다르다는 것도 드러난다. 앞선 장면만 해도 그렇다. 혐오 발언의 말풍선이 덮어버렸던 세 친구는 이후 닉을 찾아와 사과한다. “미안해. 우리가 해리에게 그만하라고 말렸어야 했어.” 시간이 지난 후 해리도 찰리에게 사과한다. 이들이 잘못을 깨닫는 과정이 그려지지는 않지만 그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혐오를 자유롭게 발언하게 두고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게 하는 우리 사회에는 없는, 차별금지법과 그것이 만든 사회적 분위기다.

<하트스토퍼>는 차별금지법 이후의 세계에서 동성 간 사랑이 어떤 모습일지 차분히 알려준다. 그 세계에서는 성소수자가 연애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공표하고 친구와 가족의 축복과 응원을 받으며 사랑할 수 있다. ‘만화로 본 세상’ 칼럼에서 다룬 한국 작품의 성소수자들은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거나(<환절기>), 아예 고백하기를 포기하거나(<각자의 디데이>), 정말 소수의 친구에게만 자신의 연애를 알릴 수 있었다(<모두에게 완자가>·<남남> 등). <하트스토퍼>의 세계에서는 찰리와 닉뿐 아니라 트랜스젠더 여성도, 레즈비언 커플도 친구들의 축복 속에 만남을 이어간다. 가족도 “네가 행복하다니 나도 행복하구나”, “엄마에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끼게 만든 적이 있다면 미안해”라고 말한다. 어려움도 남았지만, 지지가 더 크다. 이런 사회가 그저 왔을 리 없다.

법이 제정되더라도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힘들 것이다. 하지만 숨지 않을 수 있고, 사회의 지지와 응원을 느낄 수 있다. 혐오와 차별을 일삼던 이들도 법과 사회의 압력 아래 변할지 모른다. 이런 삶이, 이런 사랑이 가능한 사회가 가까이 있다. 입법을 미루고 미루는 이들에 의해 지연되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미루지 않길, 나도 더 이상 이런 글을 쓰지 않아도 되길, 마음 다해 바란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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