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마음, 나는 토토입니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2022.05.16

불태워진 만화들을 애도하며

1970년대는 만화 화형식의 시대였다. 글자 그대로 만화를 모아놓고 불태웠다. 만화를 불량한 사회악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매년 광장에 수백권에서 수만권의 만화가 끌려나와 잿더미로 변했다. 한상정 만화연구자는 1967년 박정희가 만화를 ‘밀수, 탈세, 도박, 마약, 폭력’과 더불어 ‘사회 6대 악의 하나’로 지정했을 때부터 만화에 대한 사회적 폭력이 본격화됐다고 본다. 쿠데타로 잡은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박정희는 시민의 눈을 돌릴 희생양 또는 ‘사회가 더 나아졌다’는 감각이 필요했다.

소복이 작가의 <소년의 마음> 한 장면 / 사계절

소복이 작가의 <소년의 마음> 한 장면 / 사계절

왜 만화였을까. 박정희가 지정한 사회 6대 악 중 만화를 제외하면 사회적으로 이미 ‘범죄’로 합의된 행위였다. 당시 만화가 손쉽게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건 ‘어린이의 문화’였기 때문이라는 강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지금은 만화가 모든 연령층이 즐기는 문화예술이라는 생각이 보편화했지만 1960년대는 만화 하면 곧 아동만화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별다른 즐길거리가 없던 어린이들에게 만화는 절대적 인기를 구가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만큼 이를 우려하는 어른들의 눈초리도 매서워졌다.

1970년대의 만화 화형식은 어린이날이 있는 5월 즈음에 극심했다. 때로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광장에서 어린이들이 참여해 이뤄지기도 했다. 끔찍한 일이었다. 당시 불태워진 만화들을 애도하며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만화 2권을 추천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하는 부천만화대상 어린이만화 부문의 2017년 수상작인 <소년의 마음>(소복이 작가), 2018년 수상작인 <나는 토토입니다>(심우도 작가)다.

<소년의 마음>은 소년의 상처를 말한다. <나는 토토입니다>는 어린 고양이 토토의 눈으로 나와 다른 존재들을 만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추천하는 어린이 책에 관해 쓴 에세이 <책으로 가는 문>에서 “어린이가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어린이 문학”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만화도 그러한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상처 입은 어린이, 다른 세계와 만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어린이가 늘 있고, 그러한 어린이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돼 누군가에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해왔다. 어린이를 미완의 존재(‘미래시민’이라는 표현),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들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가 어린이들에게 힘을 준다.

올해 어린이날은 제정 100주년을 맞는다. 어린이를 시민의 일원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담은 ‘어린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쓰인 지 벌써 이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 인권의 현주소는 어떨까. 어린이를 배제하는 ‘노키즈존’이라는 말이 큰 저항감 없이 쓰인다. 스쿨존의 속도를 30㎞로 제한하는 규정조차 사회적 논란을 겪는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속도제한은 교통사고로 인한 보행자 사망을 낮추는 효과가 분명 있다. 한사람이라도 덜 죽게 할 수 있다면 이 사회가 잠깐의 불편을 참는 걸 택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한사람 한사람이 곧 ‘세계’니까.

많은 사람이 어린이날을 어린이에게 장난감을 한아름 남기는 날처럼 여기지만 어린이 인권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날이기도 하다. 장애인들이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바꿨듯이, 어린이들이 ‘어린이의 날’도 ‘어린이 차별 철폐의 날’로 바꿔쓰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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