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분’만으론 지역 발전 담보할 수 없다

김찬호 기자
2022.05.02

10여년 전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의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입니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가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걸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지방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한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수긍’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현실인데 어쩌란 말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찬호 기자

김찬호 기자

지난해 4·7 서울·부산 재보궐선거를 취재하면서 잊고 지냈던 이 책이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분명 시장선거인데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거나 “정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등이었습니다. 서울·부산시장의 존재 이유를 중앙정치에서 찾는 상황이었습니다. “‘정권심판’ 내세운 시장…중앙정치 대리전 된 지방선거”, “부산시장 선거에 ‘부산’이 없다” 등의 기사를 썼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는 ‘정권심판’이 표심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임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이쯤 되니 의문이 생겼습니다. 한국의 정치·사회구조가 중앙에 예속된 상황에서 언론이 현실과 동떨어진 원칙론을 말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심지어 지방에서는 유명하고 힘 있는 정치인이 시장이 되는 걸 ‘지역 발전’과 동일시하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오는 6월 1일 열리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40여일 앞두고도 이런 현상은 재확인되고 있습니다. 중앙정치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들이 연고도 없는 지방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일부는 ‘당’과 자신이 속한 ‘정치세력’의 보전을 위해 출마했다고 공공연히 밝혔습니다. 또 다른 일부는 정치생명을 연장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디딤돌로 여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지역발전과 지방자치는 후순위입니다. 지난 호 ‘왜, 그들은 외지의 ‘수령’을 노리는가’ 기사는 이런 현상을 지방자치와 연계해서 살폈습니다.

기사가 나간 후 한 지방선거 출마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평생 지역에 머무르며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애썼지만, 어느 날 갑자기 중앙에서 내려온 유력 정치인이 모든 관심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전화를 걸어온 출마자의 정치경력은 온통 지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불쑥 중앙에서 내려온 인물과 평생 지역에 머무른 인물 중 어느 쪽이 더 지역을 발전시킬지 예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있습니다. 지방선거는 지방자치의 원활한 수행을 목표로 합니다. ‘대통령이나 중앙정치와 얼마나 친한가’ 따위가 지역 발전을 담보할 수는 없습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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