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포켓몬빵이 반가운 이유

이유진 사회부 기자
2022.03.21

‘추억의 포켓몬빵 돌아온다!’ 지난 2월 말, 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포켓몬빵이 무엇인가. SPC삼립이 1998년 내놓은 제품으로, 유명 애니메이션인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빵과 함께 넣어 인기를 끌었다. ‘띠부씰(떼었다 붙였다 하는 스티커)’로 불리던 이 스티커는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에겐 이른바 ‘잇템’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다. 띠부씰을 문구용 클리어파일에 따로 모았다. 희귀 포켓몬이 나올 때마다 친구들을 모아 자랑을 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발견한 포켓몬빵. 하나에 1500원이다. 빵과 함께 넣은 ‘띠부씰’을 얻으려는 ‘어른이’들의 발길로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 이유진 기자

집 근처 편의점에서 발견한 포켓몬빵. 하나에 1500원이다. 빵과 함께 넣은 ‘띠부씰’을 얻으려는 ‘어른이’들의 발길로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 이유진 기자

매달 500만개씩 팔던 포켓몬빵은 2006년 돌연 생산을 중단했다. 열심히 모은 띠부씰은 고향집 창고 한구석에 방치됐다. 지금은 행방조차 알지 못한다. 어쨌거나 그런 포켓몬빵이 돌아온다니. 가슴이 뛴다. 이제는 용돈을 받아쓰던 꼬맹이도 아니지 않나. 1500원짜리 빵을 10개 이상 한꺼번에 살 정도의 돈은 있다. 물론 16년 전엔 빵 가격이 500원으로 훨씬 쌌다.

지난 일주일 출근길과 퇴근길은 포켓몬빵을 사기 위한 여정이었다. 사흘 내리 보기 좋게 실패했다. ‘요즘 누가 포켓몬을 좋아하겠어?’라는 생각이 패착이었다. 출입처는 물론 집 근처 편의점 어디에서도 포켓몬빵은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집 근처 편의점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포켓몬빵은 도대체 언제쯤 와야 살 수 있을까요?” 사장님은 누가 들어선 안 된다는 듯 주위를 살피며 속삭였다. “아가씨한테만 알려줄게. 차(물류차)가 밤 10시 좀 넘어서 와. 그러니까 11시쯤 와요.”

그날 밤 포켓몬빵 3개를 손에 넣었다. ‘어른이’의 재력을 과시할 수도 있었지만, 딱 먹을 만큼만 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빵봉지를 뜯어 스티커를 확인했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전부 ‘비인기’ 포켓몬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복잡한 고민 없이 빵 하나에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고작 띠부씰 하나에 어깨가 으쓱하고, 친구에게 가진 걸 선뜻 나눌 수 있던 그 시절.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새롭게 선보인 빵은 지난 3월 7일까지 300만개가 팔렸다고 한다. 열풍 뒤엔 작은 사건 사고도 따라왔다. 스티커를 확인해보겠다고 진열된 빵을 짓누르는 통에 한 편의점주가 빵을 찌르지 말라는 ‘눈물의 호소문’을 써 붙여야 했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선 ‘전설 포켓몬’ 스티커를 빵 가격의 20배에 달하는 3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누군가 띠부씰만 대량으로 빼돌려 되파는 정황을 포착해 제조사가 확인조사에 나섰다는 보도도 봤다.

사람들은 스티커를 더 이상 클리어파일이나 공책에 모으지 않는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려 자랑한다. 방탄소년단 리더 RM도 띠부씰 인증 행렬에 동참했다. 그는 포켓몬빵이 품귀현상을 빚자 “(빵을) 제발 더 팔아달라”며 호소하기도 했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사원증에 띠부씰을 붙이는 게 유행이다. 정치와 국제 분야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내게 공포와 무력감을 안긴다. 현실이 감당하기 너무 벅찰 때, 마음이 잠시 도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이야깃거리는 필요한 법이다. 남은 빵을 다 먹으면 전설 포켓몬 띠부씰을 찾는 여정을 다시 시작하리라.

<이유진 사회부 기자 yjleee@kyunghyang.com>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