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과 ‘우리’

윤지원 경제부 기자
2022.03.14

캐나다에서 자라 인종이나 출신별로 특이한 행동양식 등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이란 출신의 친구 가족은 매일 저녁을 1·2부로 나눠먹었다. 본식사(2부)는 늘 오후 9시가 넘어야 시작했다. 독일계의 ‘하우스메이트(Housemate)’는 끼니마다 질리지도 않고 통감자를 삶았다. 눈에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출신별 가치관의 차이는 가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아일랜드 출신 홈스테이 아저씨는 본인의 취침시간에서 1분이라도 넘기면 내가 대마초에 눈이 뒤집힌 부랑자들 사이를 걷는데도 데리러 나오지 않았다. 심보가 고약한 노인이라고 투덜댔는데 훗날 아저씨의 외면은 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는 서구권의 일관된 교육 방식임을 깨달았다.

2021년 11월 1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2021년 11월 1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인들도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혼자 이사를 해야 해서 난감했던 적이 있다. 중국인 친구 한명이 인맥을 총동원해 하루종일 가구와 살림살이를 옮겨줬다. 이사가 끝난 뒤 사례도 안 받고 떠나는 무리를 보면서 대륙의 박애 스케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알고 보니 이 경험도 문화적 특징과 관련이 있었다.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친구의 친구’는 췐즈(圈子), 즉 ‘이너서클’로 간주해 기꺼이 일손을 보태는 중국의 ‘꽌시(關係)’ 문화 말이다. 중국인들은 그러나 ‘우리’라는 테두리에 들어오지 않는 외부 사람들은 철저히 무관심으로 대한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관계를 규정할 때 ‘우리와 너희’라는 틀에 맞춰 각각 60 대 40의 관심을 쏟는다면 중국인들은 ‘우리와 남’으로 나눠 99 대 1의 관심을 보낸다(이철·<중국의 선택>)는 분석이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조선족이 한복을 입고 등장한 모습에 불편해하는 한국인들을 중국인들이 의아하게 생각한 것도 어쩌면 한국에 대한 무관심 때문 아니었을까.

중국 인민을 단일한 ‘우리’로 구성하려는 시도는 중국 공산당이 꾸준히 벌이고 있는 주요 사업 중 하나다. 공산당은 인민의 선택을 받지도, 인민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시진핑 주석을 비롯해 중국공산당 상무위원 7명이 14억 인민을 이끄는 상황에서 인민 봉기나 내부 분열만큼 공산당 통치를 위협하는 장애물은 없다. 시 주석의 장기집권 플랜과 함께 전국에서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은 극단적 애국 MZ세대인 ‘샤오펀훙(小粉紅)’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원조 논쟁을 곳곳에서 일으키며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더 고립시키고 있지만 적어도 공산당 입장에선 그리 손해보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중국 정부=인민’이란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면서 세계에서 일고 있는 반중 정서가 다시 중국의 내부 결속과 당을 향한 인민의 애국심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중국 인민과 연대해 또 다른 차원의 ‘우리’를 만들 수 있을까. 꿈 같은 발상 같지만 미국은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시 주석을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신봉자”, 인민을 “역동적이고 자유를 사랑하는 시민”이라고 가르며 14억 인민과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 발언은 시 주석이 “공산당과 인민을 이간질하는 행위를 금한다”고 발표하는 등 중국 정부의 격렬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이어졌다.

<윤지원 경제부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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