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고 발칙한 ‘어른이’ 동화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2022.03.07

난쟁이 찰리는 공주와 만나 인생 역전을 꿈꾸는 야심 가득한 주인공이다. 백설공주를 만난 후 오매불망 그를 잊지 못하는 할아버지 난쟁이 빅과 함께 숲속의 마녀를 찾아가 신데렐라처럼 마법을 부려달라 말하지만, 요즘 세상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며 거절당한다. 그대로 포기할 수 없던 찰리는 끈질긴 설득 끝에 인어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긴’ 다리를 만들어주는 마법의 약을 얻는다.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3일. 그 안에 어떤 공주든 상관없이 입맞춤과 진정한 사랑을 얻어야 한다. 실패하면 허무하게도 거품이 되고 만다. 난쟁이들의 운명을 건 ‘공주 마음 얻기’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까.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학로 뮤지컬 <난쟁이들>의 무대 속 이야기다.

뮤지컬 <난쟁이들> / (주)랑 제공

뮤지컬 <난쟁이들> / (주)랑 제공

소재로 쓰인 이야기의 기본 뼈대는 아이들이 보는 동화지만, 뮤지컬에서 펼치는 이야기는 촌철살인의 배꼽 잡는 성인용 코미디다. 동화 속 판타지 대신 현실감각을 덧입혀 이색적으로 각색한 뮤지컬은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예를 들자면, 여장을 한 남자 배우가 연기하는 신데렐라를 괜찮은 왕자만 찾아다니는 속물로 그린다. 마마보이 신랑 때문에 밤마다 외로운 백설공주는 보석 탄광에서 삽질하며 꿈틀대는 근육을 자랑하던 난쟁이들의 남성미를 그리워한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우스꽝스럽고 허접스러운 왕자들은 ‘끼리끼리’를 노래하며 “이성을 교제할 때는 신분과 계급이 가장 중요하다”며 풍자하고 익살을 떤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들이지만 웃음 속에 담겨 있는 ‘뼈 있는’ 한마디는 영웅담이 아닌 현실적인 유머코드로 관객들을 왁자하게 박수치고 환호하며 쓴웃음을 짓게 한다.

백설공주의 이야기 원형을 무대에 활용한 창작 뮤지컬은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니다. 공주를 진정으로 사랑한 일곱 난쟁이 중 한명인 반달이의 이야기를 그린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도 이미 큰 사랑을 받았다. 줄여서 말하기 좋아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백사난’이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눈물을 쏙 뺄 만큼 애틋하고 아름다운 짝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엇비슷한 소재지만, 창작 뮤지컬 <난쟁이들>은 ‘백사난’과 사뭇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훨씬 직설적이고 과감하게 접근한다. 무대에는 시종일관 19금의 외설적인 대사와 직설적인 표현들이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초연 당시 부제로 쓴 홍보문구 역시 ‘어른이 뮤지컬’이라는 익살스러운 표현이었다. 어린이의 ‘린’에 X자를 긋고 ‘른’이란 단어를 써놓았다. 마음의 준비가 된 ‘어른’ 관객들만 알아서 보러 오라는 마케팅 의도였다.

4년여 만에 시도한 앙코르 무대에 현실적인 대사를 새롭게 더했다. 스머프 이야기도 그렇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재작년 인간 세상으로 떠났지만, 집값이 폭등해 전세대출의 원금은커녕 이자만 갚다가 펑 하고 터져 죽었다”는 웃픈 이야기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큰 이슈인 부동산 문제를 풍자한 말이다. 들을 때는 배꼽을 잡지만 곱씹을수록 알싸한 뒷맛이 웃음 뒤에 긴 한숨을 내뱉게 한다. 폭소 이면에 담긴 뼈 있는 한마디가 이 작품만의 별스러운 재미와 웃음을 완성해낸다. 재미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극장 뮤지컬이다. 볼 만하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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