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난감 산업의 위기, 그리고 생존전략

이승환 재무제표 읽어주는 남자
2022.01.24

한국 장난감 회사의 경쟁자는 ‘사교육’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영유아 때는 영어 유치원, 초등학교부터는 선행 학원에 다녀야 하니까요. ‘장난감’이란 어린시절을 뜻합니다. 걸음마를 할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4~5년, 가장 많이 장난감을 가지고 놉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때문에 장난감과 놀 시간이 예전보다 줄었을지도 모릅니다. 유아도 스마트폰을 알게 되면, 다른 건 흥미를 잃어버리니까요. 2000년대 초반 “레고의 경쟁자는 닌텐도다”라는 마케팅 문구가 충격을 줬습니다. 그전까지 경쟁자라고 하면 동종업계, 같은 상품을 판매하는 시장 참여자였는데 경쟁자에 대한 시각을 확 바꿔줬습니다.

레고 제공

레고 제공

국내 완구산업의 매출 하락

국내 완구산업은 1990년 봉제 인형, 플라스틱 장난감 등을 주문자위탁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해 수출하면서 호황을 누렸습니다. 노동집약적 완구사업의 경쟁력이 떨어지자, 현재 재무제표를 공시하는 ‘대형 장난감’ 회사는 몇개 남지 않았습니다. ㈜영실업, ㈜손오공, 오로라월드㈜ 정도입니다. 이들 장난감 업체들은 최근 매출액 감소를 겪고 있습니다. 한때 국내 1위 완구기업으로 불리던 변신 자동차 로봇 ‘또봇’의 ㈜영실업은 2018년 매출액 1931억원을 정점으로 2020년에는 -45%의 매출감소를 보였습니다. ‘터닝메카드’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손오공 역시 2016년 1293억원이라는 최고 매출액을 기록하고는 이후 하향 추세를 보이며 2020년 매출액 852억원으로 마감했습니다. 2021년 3분기 실적이 524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난감 시장의 전반적인 불황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영업이익도 하락세입니다. 5년 평균 13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던 오로라월드㈜는 2020년 87억원으로 마감했으며, 메이저 3사 모두 10~15%까지 나던 영업이익률이 다들 5% 미만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지배구조의 변화도 많습니다. 손오공은 글로벌 완구업체인 Mattel이 인수했고, 영실업은 외국 사모펀드에 팔렸다가 2020년 교과서 출판회사로 유명한 미래엔의 품에 안겼습니다.

완구시장이 좀처럼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한 데는 ‘낮은 출산율’ 원인이 큽니다. 장난감 구매 및 사용 고객의 취향 변화도 한몫했습니다. 우선 신규 유입 고객(신생아) 수가 매년 줄고 있고, 구매자(부모)들의 취향이 변해 예전과 달리 아이들에게 봉제 인형이나 플라스틱 자동차 등을 쥐여주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매출이 줄어드는 환경인데 제조원가를 낮추거나, 광고선전비, 판매촉진비와 같은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기는 어렵습니다. 2010년과 2020년의 ㈜영실업 비용 수치를 비교해보면, 10년 사이 매출액이 242억원에서 1054억원으로 3배 정도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동안 매출액 상승 대비 인건비와 광고비, 운반비 또한 비슷하게 증가했습니다. 반면 제조원가는 상승률보다 무려 10% 이상 증가했습니다.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거나 원가가 줄어야 이익을 많이 낼 수 있습니다. 시장은 정체되고, 원가를 줄이기 힘드니 이익이 자꾸 줄어듭니다. 재무제표 숫자로는 완구산업은 활력을 잃어가는 듯 보입니다.

[재무제표로 본 기업의 속살](20)장난감 산업의 위기, 그리고 생존전략

시장 타깃과 지역의 다변화

물론 장난감 회사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죠. 열심히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레고입니다. 한국에 진출한 레고코리아㈜는 2019~2020년 유일하게 매출액과 이익 상승을 이뤄냈습니다. 보통 외국투자기업은 현지 유통을 위해 설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레고코리아의 유형자산은 2억원에 불과한데 재고자산은 255억원입니다. 자산총계가 544억원이니 레고코리아 절반이 ‘블록’인 셈입니다. 레고 상품을 창고에 보관하다가 판매하는 일이 주된 업무인데 재고자산 항목도 심플합니다. 평가충당금과 미착품이 있을 뿐입니다. 해외에서 제때 들어오게 하고, 창고에서 손실이 나지 않도록 재고를 관리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유형자산 항목이 비품밖에 없는 걸 봐서는 재고관리나 유통(배송) 등도 외주를 주고 있습니다. 판매관리비가 349억원이나 되지만 인건비 비중은 적습니다. 광고선전비로 175억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레고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새로 출시하는 신제품은 알려야 합니다. 레고코리아는 매출액보다 이익률 증감 상황이 더 좋습니다. 2020년 영업이익률이 7%로 과거 5년간 평균치보다 2%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익률의 개선은 마진율이 높은 고가 상품군이 잘 팔렸기 때문입니다. 레고는 고객층을 성인까지 확장해 ‘키덜트’ 문화를 적극 활용하는 한편, 해리포터와 스파이더맨 등 각종 캐릭터(지적재산권·IP) 등과의 협업을 통해 ‘레고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장난감의 성공 공식이 캐릭터를 이용한 ‘원소스 멀티유즈’라는 점은 이미 검증된 바입니다. 레고는 캐릭터 상품으로 성인층까지 공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로라월드㈜는 캐릭터 사업을 해외 고객 수요에 더 맞추는 편입니다. 2020년 오로라월드의 전체 매출액 1415억원 중 해외 비중이 67%에 달하며, 특히 미국 사업본부가 700억원을 판매했습니다. 자체브랜드를 해외판매법인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캐릭터브랜드 사용권의 로열티 수입도 올리고 있습니다. 국내 완구업체 중에서 오로라월드만이 매출추이의 변동이 적고, 2021년 3분기까지 매출액 1274억원, 영업이익 120억원 등 전년 동기(매출액 1014억원, 영업이익 75억원) 대비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완구업체의 현실을 되짚어봅니다. 장난감 제조는 외주를 줘야 하고, 캐릭터와 디자인 개발로 수출이 가능한 지식생산권(IP)을 만들어내는 게 장난감 회사의 생존 필수전략입니다. 국내 캐릭터로 애니메이션까지 제작한 또봇과 터닝메카드 그리고 디즈니 캐릭터와 협업해 성인이 좋아할 스토리 상품을 만드는 레고 등의 움직임에서 알 수 있듯이 매번 등장하는 새로운 경쟁자에 장난감 회사들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합니다. 이종(異種)의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최근 완구업계는 스마트폰과 결합한 ‘혁신’ 작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고민은 남습니다. 스마트폰 기능을 장착한 완구가 아이들을 위한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웨덴의 한 장난감 회사는 홈페이지에 “모든 이들이 행복한 어린시절을 갖길 원한다”는 소망을 적어놓았네요.

<이승환 재무제표 읽어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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