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이런 고전은 죽지 않는다. 더 빛날 뿐!

고장원 SF 평론가
2021.11.29

영화 <듄>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워너브러더스가 극장과 자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동시 개봉해도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점했고, 유럽 각국 흥행성적도 양호하다. 한국도 이미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속편 제작도 확정이다.

이게 단지 제작진의 공일까? 무엇보다 원작의 시들지 않는 인기에 힘입은 바 크다. 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즈>(1965~1985)는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서사 탓에 극장용 영화로 옮기기 어렵다는 우려에도 1984년에 이어 2021년에도 영화화할 만큼 배후 수요가 두텁다.

영화 <듄>의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듄>의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필자는 2015년 펴낸 졸저 <SF란 무엇인가?> 말미에 역대 영미권 과학소설 가운데 추리고 추린 ‘왕 중 왕’ 29편의 목록을 수록했다. 해외 유명 평론가들과 주요 출판관계자들, 기자들 그리고 국내외 열성 팬덤의 의견까지 두루 망라한 12종의 목록 중 무려 11군데에서 <듄>이 상위에 랭크됐다. <듄>이 작품성뿐 아니라 높은 대중성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SF평론가 J. W. 해리스는 고전의 개념과 사례는 세월이 흐르며 계속 변한다고 본다. 맞다. 대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개봉되면 돌연 원작소설의 순위가 수직상승한다. <듄>도 영화개봉과 더불어 번역소설이 다시 판매호조를 보인단다. 필자가 추린 29편은 과학소설 역사에서 여전히 위상을 잃지 않는 고전과 발군의 신작 간 팽팽한 힘겨루기의 산물이다. 이 치열한 전장(戰場)에서 <듄>이 거의 빠짐없이 언급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변방 외계행성 아라키스(듄)를 주무대로 황제일가와 귀족가문들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이야기는 스페이스오페라 장르에서 정형화된 플롯이다. <듄>은 아주 다르다. 이른바 ‘므왓딥’이라 불리는 메시아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통해 단지 궁정활극 이상의 깊이를 부여한다. SF서사지만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 반목과 야합을 반복하고 돈줄(스파이스)과 혈통(권력의 중심근거지)을 지키고자 사이비 이데올로기(또는 사이비 신앙)를 끊임없이 설파하며 대중을 호도하는 이야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이의 공감을 자아낸다. 정치공학과 경제(성간우주무역), 종교사회학, 유전공학, 환경생태학, 인공지능이 금지된 사회의 내일 그리고 이런 환경에 순응 또는 항거하는 인간군상을 짜내는 묘기야말로 이 작품을 즐기는 이유라 하겠다.

<듄>이 SF판 <반지의 제왕>이라 불리는 건 대하드라마 서사극의 온갖 요소를 다채롭게 맛볼 수 있어서다. 방대한 은하제국을 무대로 수천년간 저마다 호소력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해 세상의 흐름을 좌우하려 든다. 그 시도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사회는 그로 말미암아 나아갈 방향이 180도 달라진다. 사막행성의 고귀한 전사들의 오랜 수난과 짧은 영광 그리고 타락, 예언된 메시아의 도래(그것이 설사 계산된 음모이자 선전공작의 결과라 해도), 권력의 노예가 된 여황제의 자멸, 모래벌레로 서서히 변해가며 수천년을 사는 반인·반벌레 황제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뒤에는 원래는 사막이 아니었던 듄 행성의 기원이 감춰져 있다. 이 수상쩍은 기원의 산증인이 프레멘들 사이에 신성시되는 ‘샤이 훌루드(거대 모래벌레)’다. 이어질 속편들이 위에 열거한 이슈를 하나씩 소화하리라.

<듄>과 같은 내공의 스페이스오페라가 미국 SF 풍토에서 하루아침에 나타난 건 아니다. 스페이스오페라는 어떻게 어린아이에서 지금과 같은 어른이 됐을까? 다음 글에서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고장원 SF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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