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돈에 대한 우리다운 환기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2021.11.29

한동안 우리 사회는 기능성 경도와 배금의식 치중에 대한 자정의 기류가 있었다. 아마도 인문학의 서정이 살아나거나, 사회 연민의 보편성이 지펴지던 지점들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아주 생경하게도 지난해 코로나19가 덮치고 나서부터 우리 사회에서 돈의 주제가 이전보다 강하게 일상에 투영되는 것을 본다. 내일을 모르는 코로나19의 확산 와중에 지금 주식을 사야 한다고 청년에게, 심지어는 어린이에게까지 미디어도 나서서 강권했다. 그리고는 주택을 구입하는 행렬이 갑자기 늘어나 그동안 매매도 어렵던 후미진 빌라나 작은 원룸에도 장사진을 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경기가 살아나고 소득이 늘어나면 당연히 주식은 오르고 주택가격도 오른다. 그러나 하늘길이 끊기고 외출이 막히고 직장을 폐쇄하는 코로나19 시국에 시중의 갑작스러운 돈의 열병은 왜 생겼을까. 수출이 좋은 실적을 거두고 소수의 소재기업과 엔터기업이나 플랫폼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지만, 사실 그 자금은 대다수 국민의 현금흐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런 일을 하는 국민은 아주 소수이기 때문이다. 재난기본소득을 나눠준 일이나 늘어난 재정을 푼 것은 직접 대중의 돈 사정에 연계가 되는 일이지만, 그 돈만으로 채울 수 있는 근자의 주식 시가총액 상승폭이나 아파트가격 상승 수치가 아니다.

대중을 현혹하는 돈

무언가 어떤 시류가 만든 분명한 투자 과잉, 부채 과잉, 기대 과잉의 바람이 대중의 삶에 파고든 탓이다. 대중이 돈에 휘둘리는 시기는 갑자기 성공한 사람들이 곳곳에 나타나면 그런 경향이 있다.
1990년 후반에 우리 사회는 인터넷 바람이 갑자기 불었다. 누구는 닷컴 도메인 하나로 얼마를 벌었다 하고, 카페나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고 돈을 번다고도 했다. 급조된 등록기업들이 코스닥의 문턱을 넘었고, 코스닥 주가는 하늘로 날았다. 아직도 코스닥은 2000년 2월 29일 기록한 2925포인트는 어림도 없다.

당시 돈은 부동산으로도 넘어왔다. 벤처기업들이 연구개발자금으로 구한 자본금을 가지고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이 붐이었다. 당시 스타벤처인 메디슨이 1998년에 사업에 쓰라고 증자로 모아준 큰돈으로 강남사옥을 사는 데 썼다. 그후 3년도 못 돼 그 회사는 유동성 위기가 와서 사옥을 팔았고, 끝내 문을 닫았다. 이렇게 남들이 무엇을 하면 공연히 강한 자극을 받는 사회가 우리의 일천한 돈 문화다. 당시에 메디슨의 뒤를 이어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는 사업용 증자로 모은 돈으로 사옥을 산 풋내기 벤처기업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후 대다수가 건물도, 기업도 사라졌다.

1947년 설립된 모 중견그룹은 창업자 시절 내내 자기 업무용 사옥이 없었다. 기업은 항상 주주가 준 돈이나 사업으로 번 돈을 장기적인 연구개발, 유사시의 자재 구입, 어려울 때 직원 급료, 단골 거래처의 납품결제 등에 써야 한다는 창업자의 경영철학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대성연탄의 창업자인 고 김수근 회장이다. 그는 건물을 짓지 말라는 유언도 했지만, 서울 신도림역 부근의 원래 연탄저탄장 자리에 후손들이 디큐브라고 사용업 건물을 근년에서야 지었다. 이렇듯 개인이나 기업은 항상 유동성을 잘 관리해야 한다. 돈이란 갑자기 구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다반사여서 항상 일정한 생활비나 여유 사업자금은 가능하면 늘 수중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갑자기 대중이 돈에 심리적으로 매몰되는 시기가 오는가.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과 지금의 코로나19 인플레 사태만 특정하면, 이건 미국의 저금리와 돈 공급이란 명백한 유사성이 있다. 미국발 풍선효과다. 당시 1990년대 후반도 미국은 아시아 외환위기를 막느라 금리를 낮춰 원래 낮은 국제금리를 더 내려놓은 상황을 만들었다. 미국의 그 풍선은 10년 후 리먼 사태를 촉발했다. 지금의 미국 돈 공급도 그때 같은 융단폭격이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는 취임 이후 나랏돈을 더 많이 쓰고, 이번에도 대규모 인프라 예산이 의회를 통과했다.

돈, 가볍게 다루지 말아야

세상의 모든 일은 항상 반전이 있다. 돈이 많이 풀리면 다시 돈을 조이는 시간도 오고, 금리가 낮은 시절이 있다면 금리가 오르는 시간도 반드시 온다. 문제는 이런 시기에 대중을 현혹하는 돈의 나쁜 마취기능이다. 누구는 얼마를 벌었다는데 나는 왜 이런가, 지금 못 벌면 언제 또 버는가 하는 조바심이 젊은이들의 영혼을 흔들 수 있는 마수 같은 시간이 지금이다. 어느 젊은 의사가 해외주식 사이트로 유명하다 해서 한번 보았더니, 자기가 전공한 과목보다 피부과, 성형외과 친구들이 돈을 더 벌어 만회하고자 주식 투자를 한다고 고백했다. 인술에 이건 뭔 말인가.

미국 주가를 앞에서 끌고 가는 운용사들은 오로지 자기 수익만 좇는 야수들이다. 특히 블랙록과 JP모건 등은 요즘 CEO가 나서서 이미 천상으로 오른 주가를 더 끌어 올린다. 엄청난 주식이나 대체자산과 코인도 가진 그들이 여기서 더 강공할 때는 예상을 넘는 수준으로 잔뜩 들어 올려 비관론자들의 마음도 다 돌려놓은 뒤, 그들은 어느 날 소리 없이 서서히 팔기 시작한다. 아니 지금 올리며 팔고 있을 게다.

그래서 문제는 지금의 미국 주가가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고, 상당수 국내외 대중이 거기에 말려들 거란 점이다. 반복되는 이런 상황이 참 싫지만, 이성으로 막을 수가 없다. 서학개미의 해외투자는 이렇게 어렵고 위험하다. 국내 투자보다 몇 배나 어렵고 힘이 든다. 해외투자는 전 자산의 10% 이내에 글로벌 기업만 골라 신중히 투자해야 한다. 요즘 TQQQ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도 보인다. ETF 형식의 투자는 하락장이 오면 곧잘 테마별로 급락하기 쉽고, 게다가 TQQQ는 3배수 레버리지다. 아차 하면 전 재산이 일주일 내에 깡통을 찰 수도 있다. 3월에 글로벌펀드 하나가 그렇게 사라졌다.

마침 선거철이다 보니 유력후보들도 돈 얘기가 잦다. 나라의 돈 얘기는 누구라도 조심히 다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가차원의 산업혁명으로 생긴 소득이나 자본을 이제는 적절히 국민이 공유하는 것은 제도적인 접근으로 바람직하다. 하지만 돈을 일상에서 쉽게 나누고, 함부로 취하고, 가볍게 쓰는 사회적 풍조라면 우리 같은 근로사회에는 바람직하지 않고, 우리 민족사의 삶의 품격에 비춰봐도 너무 경박하다.

투자나 소비나 임금이나 국가의 공공소득이라도 돈은 그 과정에 인격적 수고가 꼭 담겨야 한국인은 돈 앞에서 당당해진다. 모바일로 쉽게 접하는 주식매매를 청년들은 꼭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임해야 한다. 누구라도 칼춤을 추는 장세에 몰리면 돈도 잃고 삶도 잃는다. 그런 날은 반드시 온다.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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