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배달과 결제의 먼지를 털어라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2021.11.01

도무지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도록 만든다. 눈을 뜨면서 모바일 디바이스를 들고 손과 눈을 화면에서 뗄 수가 없도록 만든다. 이젠 글자 그대로 남녀노소가 다 그런다. 그런데 지금 그걸 기획하고 만든 사람들이 하나둘 국민 앞으로 소환되고 있다. 미국 의회는 마침내 법으로 이들의 횡포와 독점이익을 방지하려고 하며, 한국은 국정감사장에 불러내 일단 훈계로 간섭을 시작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자연을 이용하고 보호하는 일은 인간 불멸의 테마다. 그러니 저장과 절약과 검약함도 변치 말아야 할 삶의 유구한 실천덕목이다. 창고는 이런 용도로 쓰일 때 가치가 있고, 가능하면 집마다 있어야 하고, 선조들은 늘 그래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느 마을에 큰 창고가 들어오면 공장이 나간다는 증거이고, 창고가 매장으로 변하면 근방의 점포들은 서서히 문을 닫는다는 신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손안에 누군가는 모바일 디바이스를 팔고 누구는 정보사이트 연결망을 공짜로 사용하게 해준다. 그러더니 오토바이와 트럭을 동원하고 택배회사들이 사모펀드의 손을 잡고 온 골목길을 헤집고 다닌다. 이번엔 코스트코 같은 전용 창고매장마저 힘이 들자 배송사업자와 손을 잡는다.

주문-배달-소비 그리고 부채

우린 그러다가 코로나19를 만나 결국 한순간에 비대면 원격생활 설계기술자들에게 대기한 이용자이자 미필적 포로가 됐다. 시장으로 가는 길, 학교로 가는 길이 막히고, 이들이 준 각종 정보디바이스 앞에서 하릴없이 하루를 검색하며 보낸다. 건국 이래 처음 나라가 나눠준 나랏돈도 이들의 플랫폼에서 매일 검색하며 소비하며 게임하며 영화 보며 투자하며 그렇게 남김없이 강물처럼 흘려보낸다.

이건 정말 억측이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혹시 누가 코로나19를 퍼지게 했을까 하고 실물경제 전문가로서 한번 아무나 원망을 해본다면, 그동안 이번 사태로 시중에서 증시에서 돈을 다 쓸어가고 삽시간에 천문학적인 부를 이룬 비대면 구매, 배송, 결제 설계자들을 합리적으로 의심해보게도 된다. 이 소동을 타고 나타난 디지털코인 역시 비대면 정보기술자들이 만든 작품이다. 속이 상해 그냥 해본 소리다.

재배와 수확과 저장과 파종으로 이어온 우리 삶에서 결제와 배달이 과연 인류에게 얼마나 필요한 생명활동인지는 어느 역사책에도 없다. 그런데 순식간에 결제와 배달로 거부가 된 사람들이 나타나 이젠 가게도 못 가게 하고, 자동차도 몰지 못하게 하고, 떼돈을 번 자기들은 우주로 가려는 여행객들을 벌써 고가의 여행비로 불러 모은다. 곧 그들이 먼저 사들인 디지털코인을 우주여비로 받아주고 그들의 우주선이 출발할지도 모른다. 당장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란 사람들이 바로 이런 길을 걸어온 주문과 배달과 결제사업가들이다. 그들은 우주로의 사람배달을 시작했다.

요즘 미디어를 흔드는 모 영상플랫폼은 어느 날 나타나 개인영상 구경을 공짜로 이용하게 해주더니 이젠 온통 광고로 도배해 점점 짜증 나게 한다. 그런 귀찮은 광고를 피하려면 돈을 내고 이용하는 그들의 유료통로로 가야 한다. 이러리라 짐작은 했지만, 이게 무슨 야비한 토끼몰이인가.

요즘 미국이 소비자물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고, 생산원자재들이 곳곳에서 공급의 동맥경화를 보인다. 바다의 화물운임은 장난이 아니다. 이는 결코 정상이 아니며, 일정한 마찰적 현상도 있지만, 덧붙여 코로나19에도 멈추지 않고 더 확산된 비대면 기술에 의한 주문과 배달과 소비와 광고와 대출이 가져다준 저주 같기도 하다.

사실 그동안 지구가 고민한 문제는 생산과잉에 의한 디플레이션이지, 소비과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아니었다. 이점을 늘 고민하던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도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낮게 보다가 최근에 조기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으로 말을 바꿨다. 이건 팬데믹에서 솟아난 배달속도전과 과잉소비의 저주가 장기정책의 예측을 덮친 결과로 보인다.

사람을 ‘보조’하는 기술이어야

속도에는 가속도 원리가 있지만, 소비도 그런 점이 있다. 그래서 개인의 소비나 주문이나 결제나 대출이나 투자는 신중해야 하고 냉철해야 하고 가능하면 절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젠 돈을 현찰로 잘 받지 않으니 결제를 무슨 길가의 들꽃 만지듯 한다. 과잉소비는 각 개인에게 반드시 초과부채로 돌아온다. 지금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막느라 금융회사들이 가계대출을 조이자, 이번엔 금융가에선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비대면 금융회사를 차리고 돈을 쉽게 더 많이 빌려준단다. 자기들도 어디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사람들의 대출검색을 빼앗아갈 욕심으로 나타났다.

아주 예전에 사진을 처음 본 우리 선조들은 사진이 영혼을 빼앗아간다고 조심하라고 했다는 말을, 이제 온 천지 영상의 시대를 맞이하고 보니 공연히 남긴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현란하고 자극적이며 친절한 화상 앞에서 우리는 현명한 자신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특히 어린이들은 화상 앞에서 그 맑은 영혼들이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

얼마 전 수백만명의 구독자를 둔 스무 살 청년이 어느새 자신의 내면을 잃어버렸다고 고백하고 자기의 진정한 삶을 살겠다고 스스로 유튜버에서 은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그럴 만한 집단 자성의 시간이 됐나 보다.

곧 우린 다시 거리에서 만날 준비를 해야 하고 마스크를 벗으며 밝게 웃을 좋은 마음도 미리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사이에 이렇게 주문과 배달과 소비와 그리고 부채가 우리 몸에 먼지처럼 쌓였다. 이걸 벗어던져야 한다.

가상환경이나 증강현실이나 인터넷 세상은 우리가 사는 직접 대면세상의 이로운 보조기술이지 신비한 대안이 아니다. 느리고 어설픈 사람이 정확하고 빠른 인공지능보다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다는 것은 진리다. 우리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참고 손해 보며 끝까지 지키려 한 가치는 사람 그 자체이지, 비대면과 원격과 무인기술 세상이 아니다. 플랫폼들이 곳곳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가는 요즘, 코로나19로 더 왜소해진 대중에게 이제라도 정보기술사업가들은 과학을 이끄는 순수한 영재와 선한 지식인으로 돌아가시라. 더 늦으면 우린 그냥 따스했던 ‘손에 잡히는 세상’, ‘마음이 통하는 세상’으로 돌아갈 거다.

<엄길청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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