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이방인의 마을, 관광은 주춤 삶은 계속

김천 자유기고가
2021.11.08

서울에서 외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을 꼽자면 용산구 이태원을 들 수 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부터 녹사평역까지 이태원로를 중심으로 각종 상권과 이태원 특유의 문화가 펼쳐진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방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나, 가게에서 파는 이국의 식자재에서 이태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영어 또는 아랍어 간판과 화려한 색깔의 스프레이 낙서도 서울의 다른 골목과는 차이가 있다.

이태원은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태원은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태원에 이방인이 정착한 것은 꽤 뿌리가 깊다. 고려말 거란족과 여진족이 정착했던 곳이라는 설도 있고,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이 정착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남산 기슭에 배나무가 많아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가깝게는 일본군과 미군의 군사기지가 있었고, 그들이 드나들던 흔적도 엿볼 수 있으니 이역의 자취가 이태원 곳곳에 배어든 것은 오래된 일이다.

이태원은 해밀턴호텔을 기점으로 동서남북의 골목길이 서로 다른 모습이다. 해밀턴호텔 뒤편 상가를 조금 벗어나 남산 쪽으로 향하면 고급 주택가와 저택들이 한강을 내려 보며 자리 잡고 있다. 재벌가와 유명인의 저택이 줄지어 있다. 그 주택가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곳은 전형적인 서민들의 주택가로 또 다른 분위기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 서로 다른 경제 사정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곳이 이방인의 마을이라는 점은 부동산 주인의 유창한 영어 솜씨에서도 드러난다. 외국 회사 주재원인 듯 말쑥하게 차려입은 손님과 함께 부동산 업자는 열심히 이태원의 장점과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대충 들리는 이야기는 1000만원에 육박하는 월셋집을 제시하는 것 같은데, 이웃 부동산 창문에는 보증금 2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방을 알리는 전단도 붙어 있다. 이곳은 극과 극이 함께하는 골목이다.

오래된 가게들도 이태원 골목의 주인이다.

오래된 가게들도 이태원 골목의 주인이다.

유흥·쇼핑으로 흥한 과거

이태원은 서울에서 가장 활발한 상권으로 이름났다. 대표적인 유흥가로 화려한 시절을 보낸 적도 있다. 지금도 골목마다 명소가 있고, 특색 있는 옷과 물건을 파는 가게도 남아 있다. 이태원 상권이 활발해진 것은 대략 1970년대 미군부대 병사들의 소비가 동력이 됐다고 한다. 그들을 상대로 양복을 짓고 기념품을 팔던 가게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1980년대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이태원의 명성은 더 높아졌다. 그때부터 자리 잡고 있는 큰 옷 전문점과 2박3일이면 가봉까지 끝내주는 양복점은 아직도 영업 중이다. 귀국 병사를 위해 기념품을 팔던 가게는 골동품과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곳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예전과 달리 이태원을 드나드는 이방인도 주체가 바뀌었다. 무엇보다 용산 미군기지 대부분이 평택으로 옮아간 여파가 컸다. 대신 보광동 모스크를 드나드는 무슬림과 중앙아시아인, 러시아인과 아프리카 출신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그 자리를 채웠다. 놀러온 사람도 있고 일자리를 찾아온 이들도 있다. 이곳에선 식당도 이슬람 율법대로 마련한 할랄 푸드를 팔고 자전거로 음식을 배달하는 외국인도 흔히 볼 수 있다.

이태원 골목의 낙서도 외국어로 된 것이 많다.

이태원 골목의 낙서도 외국어로 된 것이 많다.

이태원 파출소 뒤편 골목에 있던 이태원시장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 중형마트가 시장 골목 전체가 할 일을 대신 맡았고, 식료품 가게며 쌀집이 있던 점포 대부분은 트랜스젠더 술집으로 바뀌었다. 밤이면 붉은 등이 켜지고 트랜스젠더와 게이가 열린 문 사이로 호객을 한다. 문 닫힌 낮 동안은 순댓국집을 찾아 헤매도 되지만 해가 지면 야릇한 분위기가 골목을 지배하는 곳이다. 1970년대 이 일대 골목은 유명했던 세븐클럽 등 미군 상대의 클럽이 성시를 이루었고, 시장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양주며 양담배 등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 유흥과 암시장의 번영이 이태원 전성기의 일부였으나, 그런 흥청망청한 모습은 사라졌다. 하나의 세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질병보다 무서운 집세

이태원로 남쪽 국제시장과 지하상가 일대는 옷 좀 입는다는 이들의 단골 쇼핑가가 있다. 소위 보세 옷들이 쏟아졌던 1980년대부터 이곳 의류시장이 번창했다. 아직까지 큰 옷과 특이한 의상과 액세서리는 이태원 골목의 주된 상품이다. 상가 앞에서 행인을 지켜보던 가게 주인은 “예전엔 손님 물어오는 호객꾼만 5명을 두고 있었는데, 지금에야 집세 낼 걱정이 더 크다”라고 걱정했다. 명품을 주로 팔던 지하상가 한 곳은 가장 목 좋은 가게가 철수했고, 곳곳에 ‘임대’ 표지판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경기를 묻자 “우선 외국인들이 못 오지 않느냐. 여기 의류 상가 손님 반은 외국인이었는데, 이런 시국에 손님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되묻는 상인의 이야기는 수긍이 갔다.

이태원은 고급 주택가와 서민 주택가가 공존한다.

이태원은 고급 주택가와 서민 주택가가 공존한다.

전반적인 침체 속에도 타로점이며 궁합을 보는 점집을 드나드는 젊은이를 더러 볼 수 있었다. 수정구슬을 만지던 타로 점집 주인은 “불안할 때는 뭐라도 찾고 묻는 게 심사라 꾸준히 손님은 온다. 무엇보다 여기는 상담료가 싸다”라고 설명한다. 오늘과 내일의 두려움을 점으로 맞출 수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운명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태원 골목을 즐기는 행락객은 많이 늘었지만, 집기를 뺀 빈 가게도 여럿이고 한참 철거 중인 가게도 있다. 삼겹살과 곱창을 함께 굽는 특색 있는 메뉴로 장사했다는 가게 주인은 “처음엔 수제 맥주를 팔았는데, 안 돼서 메뉴를 바꿨다. 그것도 한 1년 찬바람을 맞으니 이젠 모두 접는 중이다”라고 한탄한다. 다시 회복의 실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리단길에서 시작해 이태원 전 지역에 불어닥친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가 퍼진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골목을 단장하고 벽화를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도 질병은 넘길 수 있으나 오르는 집세는 버틸 수 없다고 했다.

이방인의 거리답게 이태원에는 나이지리아 거리도 있고 베트남 퀴논 길도 있다. 이태원 의류상가 뒤편 골목이 베트남 퀴논 길인데 베트남을 상징하는 것이라곤 한두 곳 있는 베트남 커피집과 골목에 그려진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성뿐이다. 골목 위로 등도 달아두고 곳곳에 퀴논 길이라는 명판도 붙어 있지만 오가며 베트남을 연상할 수 있는 모습은 찾지 못했다. 단지 아주 오래된 골동품 가게와 명품 수선집이 그 골목의 터줏대감이라 했다. 아무 데나 상관없는 이름을 붙인다 해서 명소가 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골목 곳곳에서 플리마켓을 만날 수 있다.

골목 곳곳에서 플리마켓을 만날 수 있다.

이태원의 골목에서 종종 만나는 업종이 있는데, 열쇠가게다. 어쩌면 골목마다 열쇠가게 하나씩은 꼭 있다. 가게 주인에게 묻자 “여긴 몇달 살다 옮기는 이들이 많아 그때마다 열쇠 바꾸는 일이 잦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 보니 치안에 대한 걱정도 있는 편이고…”라고 답한다. 골목의 사정이 번창하는 업종을 만든 것이다. 방을 함께 쓰는 룸 셰어나 한두달 초단기 임대도 이태원에서는 흔한 일이다. 비자와 취업 문제 등으로 장기 체류가 어려운 외국인은 이런 형태의 주택 임대가 편하고, 외국인 커뮤니티에서는 이태원의 주택정보와 아르바이트 상황이 상세히 올라오고 있었다. 현재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대략 2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니 적잖은 비중이다.

관광지 이전에 사는 곳

자주 드나드는 외국인과 달리 이곳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붙박이로 살고 있는 이들이 많다. 다른 지역처럼 재개발로 주민의 대이동이 일어난 적도 없어 세입자들도 시내 가깝고 살기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살고 있다고 한다. 골목 안 가게 주인은 “보통 30년 이상 사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전한다.

이태원 시장은 외국인 상대 가게와 주점 골목으로 바뀌었다.

이태원 시장은 외국인 상대 가게와 주점 골목으로 바뀌었다.

이태원 의류상가 건너편 뒷골목은 주점으로 가득하다.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의류상가 쪽보다는 행인과 손님들이 훨씬 많았다. 이곳 역시 어떤 가게는 흥하고 어떤 가게는 문을 닫았다. 요행보다는 실력이 더 큰 힘이 되는 세상사의 이치는 이곳이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두려움이 살짝 비껴간 듯 대부분의 가게는 손님을 가득 받고 있다. 행인에게 이 골목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이국적인 분위기와 다양한 메뉴”라고 답한다. 골목 안 라면집부터 김치찌개 식당과 서양요리 전문점이 함께 공존하는 것도 독특했다. 행인들은 느린 걸음으로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어느 가게를 들를지 고르고 있다.

이태원은 오래전부터 외국에도 잘 알려졌지만, 한류 열풍이 불면서 더 큰 유명세를 얻었다. 특히 <이태원 클라쓰> 등 드라마의 성공은 이태원을 흔한 관광지에서 문화가 있는 곳으로 각인시켰다. 어떤 점에서 이태원은 한류의 시발지이자 가장 큰 혜택을 본 곳이다. 그야말로 가장 세계적이면서 한국적인 모습이 이 지역 곳곳에 배어 있다.

이태원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관광특구 지정을 받은 곳이다. 관광산업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지만, 골목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관광객보다는 이곳에 정착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와의 교류는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다. 일자리를 찾아서 혹은 유랑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 이곳까지 와서 둥지를 튼 이들은 이미 이웃이 됐다.

강남, 홍대와 더불어 이태원은 서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클럽과 유흥 지대다. 쇼핑과 더불어 이태원을 대표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당분간 전성기 모습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아프고 난 후 더 건강하길 바라듯이 이 시련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태원이 더 번성하길 바란다. 이방인도 이웃이 되고 인종과 언어에 상관없이 골목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곳이 이태원이다. 세상과 만나 더 큰 문화를 만들어내는 그런 지역으로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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