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옥쇄하라!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2021.08.30

광복절에 출간된 일본 거장의 만화

광복절에 맞춰 한편의 만화가 출판됐다. 그것도 일본 작가가 그린 태평양전쟁에 관한 작품이다. 일본만화의 거장 미즈키 시게루의 <전원 옥쇄하라!>로 작가 자신이 참전했던 당시의 경험을 옮겨놓은 만화이다. 유명한 작품이지만, 첫 출판이 1973년인 만화이고 일제강점기의 일본군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되기에는 정서적인 문제도 있었다. 그런데도 뒤늦게, 그것도 광복절에 이 만화가 소개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원 옥쇄하라!>(미즈키 시게루 지음)의 표지 /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전원 옥쇄하라!>(미즈키 시게루 지음)의 표지 /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작가 미즈키 시게루는 1922년생으로 아톰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보다 나이가 많은 일본만화계의 원로다. 그러면서도 2015년 93세로 세상을 떠나는 그해까지 만화를 그렸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으로 징집돼 남태평양 지역에 배치됐는데, 당시 미군의 폭격에 맞아 왼쪽 팔을 잃었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형편은 좋지 않았다. 여러차례 직업을 옮겼으나 가난을 벗어나긴 힘들었고, 그림에 뜻이 있었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러나 전쟁 경험은 삶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해주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씩 그의 만화를 인정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일본 국민만화가 된 그의 대표작 <게게게의 기타로>는 그가 마흔이 넘어서야 알려지기 시작했다. 요괴만화라는 장르를 상징하며 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은 일본 밖에서도 극찬을 받았는데, 대상은 <게게게의 기타로>가 아니었다. 그는 일본의 과거나 히틀러에 관한 만화도 만들었고, 자신의 전쟁 경험담 역시 몇차례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다. 그중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것이 <전원 옥쇄하라!>이다. 2011년 세계시장에 이 작품이 소개되자 그해 최고의 만화로 손꼽혔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과 만화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는 아이스너 어워드 등에서 수상했다.

<전원 옥쇄하라!>는 전쟁을 다루는 다른 작품처럼 그것의 실상을 보고하고, 그 안에서 개인이 느끼는 통증을 묘사한다. 특히 현장에 있었고 한쪽 팔을 잃을 정도로 피해를 본 작가의 경험 때문에 묘사가 생생하다. 하지만 미즈키 시게루는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생략해 독자의 감정이입을 차단한다. 그들의 죽음은 그리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전쟁터에서는 매일 누군가가 죽고 다친다. 총상을 입은 동료 병사를 구조하는 대신 새끼손가락 하나를 잘라 유골로 쓸 만큼 대단한 연대도 없다. 그들은 그저 어쩌다 보니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고, 마지못해 죽으러 가는 길이다.

일본이 미디어와 교육을 통해 공유하고 있는 전쟁의 피해자성을 이 만화는 경계한다. <전원 옥쇄하라!>에서 군인들은 외부의 적과 싸우느라 힘든 게 아니라 무능한 상관과 잘못된 가치관을 상대하고 있다. 대신 미즈키 시게루는 전쟁의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기록한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며 작품을 통해 그것을 신고한다. 이 때문에 만화에는 위안부에 대한 묘사가 조금 포함돼 있는데 보면서 편치 않았다. 작가의 묘사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서다. 일상에서 나는 또 그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복절에 이 작품을 받아 든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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