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본질은 ‘함께하는 것’

박희정 기록활동가
2021.08.23

NHK <애니메이션×패럴림픽: 당신의 영웅은 누구입니까>

“도쿄 비장애인 올림픽 중계방송을 여기서 마칩니다.”

지난 8월 8일, KBS 이재후 아나운서는 도쿄올림픽 폐막식 중계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해 주목받았다. 8월 24일부터 9월 5일까지 진행될 도쿄 패럴림픽을 환기하며 쓴 말이다. 패럴림픽은 신체장애인 선수들이 참여하는 올림픽으로 출발했고, 올림픽은 ‘비장애인’ 중심이 맞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주목받은 건 이 사회가 철저히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인간의 기본값으로 놓고 사는 일이 너무 익숙해 이렇게 콕 집어 한 번 불리기만 해도 비장애인들은 깜짝 놀란다.

NHK <애니메이션×패럴림픽: 당신의 영웅은 누구입니까>의 시각장애인 유도편의 한 장면 / NHK 홈페이지 갈무리

NHK <애니메이션×패럴림픽: 당신의 영웅은 누구입니까>의 시각장애인 유도편의 한 장면 / NHK 홈페이지 갈무리

패럴림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부상으로 장애를 얻은 퇴역 군인과 시민을 위한 재활프로그램에서 출발했다. 패럴림픽이라는 이름도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paraplegic’과 ‘Olympic’의 합성어다. 시간이 흐르면서 참여하는 장애인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고, 장애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더해져 지금은 ‘para(나란한)’와 ‘Olympic(올림픽)’의 합성어로 설명된다. 패럴림픽은 88 서울올림픽부터 올림픽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진행된다.

그러나 패럴림픽을 ‘비장애인 올림픽’의 부수적 이벤트처럼 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올림픽 폐막을 보도한 지상파 3사 뉴스 중 패럴림픽 개최를 언급한 방송은 KBS가 유일했다. 이재후 아나운서의 폐막식 마지막 멘트가 화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한국보다 장애인이 살기에 나은 나라인 일본도 패럴림픽은 올림픽만큼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과 인식개선을 끌어내기 위해 애니메이션이란 카드를 꺼냈다.

<내일의 죠>(치바 테츠야), <캡틴 츠바사>(다카하시 요이치) 등 크게 인기를 끈 스포츠만화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유명 만화들과 협업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패럴림픽 12종목을 소개하는 5분 분량의 작품 12편을 공개했다. 비장애인과 견줘도 손색없는 경기력을 강조하는 작품에서는 장애 차별구조의 바탕을 이루는 능력주의가 읽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는 각각의 종목이 갖는 고유의 재미를 전달하려 애쓴다. 어떤 종목이든, 그것이 비장애인 올림픽이든 장애인 올림픽이든, 스포츠는 즐거움을 준다. 신체를 활용하는 쾌감, 내 한계에 도전할 때의 성취감, 승부를 겨룰 때의 박진감 같은 것이다.

시각장애인 유도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주로 스포츠만화를 사실감 있게 그려온 가와이 가쓰토시가 원안을 구성했다. 주인공은 유도선수로 활동하다 시력을 거의 잃고 시각장애인 유도에 참여하게 된다(실제 이런 사례가 많다고 한다). 비장애인 유도는 서로 멀리 떨어져 시작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유도는 상대방의 소맷귀와 가슴 깃을 붙잡은 채로 시작한다. 손에 잡힌 부위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거기에 연결된 나머지 신체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경기한다.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유도에 적응해가면서 유도가 서로 몸을 부딪치는 ‘상대’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경기임을 새삼 깨닫는다. 스포츠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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