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늙음과 죽음을 현명하게 수용하는 법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2021.07.26

심장질환, 늙음, 알츠하이머 질환, 살인, 사고, 자살, 안락사, 에이즈, 암. 미국의 의사 셔윈 B. 뉴랜드가 1993년에 낸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는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경로를 다룬다. 의학적 설명과 함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대전 충남대학교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한 간호사가 휠체어를 탄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정근 기자

대전 충남대학교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한 간호사가 휠체어를 탄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정근 기자

나 같은 50대가 읽으면 좋을 내용이 많았다. 기름진 음식, 흡연, 운동 부족, 급한 성격, 흥분 잘하는 마음 같은 게 동맥경화를 불러일으켜 결국 건강이 고장 나는 과정을 보면 지금 당장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

“나이가 많아 죽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늙음과 죽음’에 대한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의사들의 사망진단서에는 뇌졸중, 심장마비, 폐부종 같은 것들이 적혀 있다. 사인으로 나이를 드는 건 의학적 설명이 아니다. 하지만 노인들이 결국 죽는 것은 낡아가는 신체조직 때문이다.

인체는 죽은 세포를 새 세포로 끊임없이 대체해 나간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재생능력이 떨어진다. 신경세포와 심근세포의 회복력은 떨어지고, 심장은 세월과 함께 죽어간다. 동맥의 벽은 두꺼워지고 탄력성이 떨어진다. 심장으로부터 영양을 공급받던 각 기관은 영양실조에 걸린다. 50세 이후 뇌는 10년마다 무게가 2%씩 줄어든다. 단, 뇌의 성장이 끝나도 어떤 신경세포는 더 원숙해지고, 사고를 많이 하면 그 부분이 더 발달하기는 한다.

뉴랜드가 강조하는 것은 늙음이 불러오는 병과 그 끝의 죽음을 피해가는 방법이 아니다. 늙음과 죽음을 현명하게 수용하는 방법이다. 때가 되어 생의 무대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걸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라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에 대한 불필요한 저항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기 마음을 헤치게 된다. 생에는 정해진 한계가 있으니 그 한계를 받아들이고, 살아 있는 동안 부지런하고 뜻있는 삶을 영위하라는 권유다.

“몇십 년 동안 치러왔던 성탄 파티 중 가장 좋았어!” 만족한 미소 뒤에 그는 한마디를 더 보탰다. “당신 알아, 캐롤린? 죽기 전까지 최대한 재미있게 살아야 된다고.”

크리스마스를 잘 보냈나 보다. 말이란 게 맥락이 얼마나 중요한지, 떼어놓고 보면 별말 아니다. 하지만 이 성탄 파티는 한 남자의 소중한 희망이었다. 변호사이자 시의원이었던 49세 남자가 있었다. 암 수술을 위해 개복을 했더니 암이 넓게 번져 있었다. 남자는 결과를 전하는 의사에게 정직하게 말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했다.

남자의 희망은 마지막까지 자신으로 존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병들기 전의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거였다. 남자는 2시간마다 모르핀 주사를 맞으며 다른 해와 똑같이 성대한 파티를 치렀다. 위의 인용문은 손님들이 돌아간 후 남자가 아내에게 한 이야기다.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뉴랜드는 이 남자에게서 구원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이 존재하는 것을 배웠다고 술회한다.

의사로서 뉴랜드가 말하는 희망은 그냥 하기 좋은 말이 아니다. 심각한 병을 앓으며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의 희망이다. 거짓으로 속일 수도, 환상으로 포장할 수도 없다. 진짜 희망이어야 한다. 뉴랜드는 의사로서의 가장 중요한 의무가 아무리 근거 없는 것일지라도 환자들이 희망을 붙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런데 이때 어떤 희망이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종서적

세종서적

희망은 “아직 성취되진 않았지만 좋은 일이 있을 거라 기대하는 마음”이다. 뉴랜드는 의사들이 흔히 이 희망을 오해해 치료나 병세의 호전에 이용하려 한다고 우려한다. 이런 희망은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고, 환자는 물론 본인까지 뭔가를 시도하려는 강박관념으로 죽음의 존재를 부인하게 한다.

뉴랜드의 이런 우려는 본인의 회한에서 비롯됐다. 건강하던 친형이 암 판정을 받았다. 뉴랜드는 수술 후 회복기간에 누구도 형에게 완치될 희망이 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방어막을 쳤다. 나중에 뉴랜드는 이 방어막이 자신에게도 필요한 거였다고 돌아본다. 죽음에 대한 거부는 한동안 죽음을 지연시키지만 결국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

장애물은 또 있다. 환자 스스로가 통제력을 거절하는 거다. 보호받고 싶고 책임이나 의무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으로 자신의 자율권을 포기하며 오판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뉴랜드는 형의 바람을 거부할 수 없었다. 형에게 의학에 관해 모든 것을 아는 든든한 동생의 역할을 했다. 불가능할 걸 알면서도 열심히 연구해 실험적인 치료를 시도했다. 낙관주의로 나아가되 비관적인 관점도 항상 옆에 둬야 한다는 스승들의 가르침도 잊었다.

생의 마지막이 찾아왔을 때

뉴랜드는 환자가 원하는 희망을 안겨줬던 자기 태도가 기만행위였다고 후회한다. 뉴랜드는 실험 수준의 약품이 미치는 독성이 형에게 더 큰 불행을 안겨줄 거라는 점을 직시하지 못했다. 형의 죽음을 조금 늦췄겠지만 부질없는 희망으로 형이 참혹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고 안타깝게 후회한다. 이렇게 뉴랜드는 스스로 엄중하게 반성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마음이다.

이런 후회를 딛고 뉴랜드는 자신의 희망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생의 마지막이 찾아왔을 때 생을 연장하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지 않고, 그로 인한 고통은 더더욱 받지 않겠다는 결심이 그것이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보람 있게 이용하다가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죽어가겠다는 결심을 말한다.

40년 동안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본 의사가 하는 말이니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짧거나 길게 머물다 죽음을 맞는다. 확률적으로 나도 그럴 거다. 늙어가는 중에 언젠가 병상에 누워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미리 마음이 무거워 가볍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마무리가 더 나을 것인지를 내가 현명하게 판단 내릴 수 있을까.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뉴랜드가 말하듯, 현실적인 희망이지 않을까. 모든 날의 희망이 아니라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필요한, 그런 실현 가능한 희망 말이다.

일단은 내가 판단을 내릴 상황이 주어지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현명한 의료진을 만나는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가 상황을 수용하고, 그 상황에서 가능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삶의 마무리를 근사하게 하고 싶은 게 지금의 희망이다.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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