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삶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받아들이는 용기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2021.06.28

황량한 풍경이다. 여자가 울고 있다. 시뻘건 속살이 드러난 몸속에는 부서진 이오니아식 기둥이 보인다. 벌거벗은 몸을 보정기 띠들이 감고 있다. 온몸에는 작고 큰 못들이 박혀 있다.

[오십, 길을 묻다](46)삶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받아들이는 용기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가 1944년 그린 자화상이다. 제목은 ‘부러진 척추’다. 아무리 묘사를 덧붙여도 그림에 담긴 고통을 전하기에는 모자라다. 가끔 화집 <프리다 칼로>(2005)를 들춰본다. 저자는 독일 예술사가 안드레아 케텐만이다.

칼로는 평생 건강 때문에 몹시 고통받았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와 발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목발의 프리다’란 서글픈 별명을 얻었다. 열여덟 살에는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척추가 탈골됐고, 아홉 달 동안 척추를 고정하기 위해 석고보정기를 착용해야 했다.

자화상을 그리게 된 계기

칼로는 사진작가인 아버지에게 화구를 얻고 침대에 이젤을 고정했다. 침대 윗부분은 거울로 덮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모델로 삼았다. 케텐만은 칼로가 자화상을 그리게 된 계기라고 말한다. 칼로는 평생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칼로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자신을 그린다고 고백했다.

케텐만은 병상에 누워 있던 이 시기에 칼로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경험하고 발견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육체적 고통은 칼로의 어찌할 수 없는 생의 조건이 돼버렸다. 칼로는 일생 내내 통증과 수술과 치료를 벗어날 수 없었다. 교통사고로 손상된 몸 때문에 낙태와 유산까지 겪어야 했다.

작품 ‘헨리 포드 병원(혹은 날아가는 침대)’은 유산으로 칼로가 겪었던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칼로는 황량한 공장지대 풍경을 배경으로 커다란 침대에 벌거벗은 채 피를 흘리며 누워 있다. 칼로의 몸에서 뻗어나간 핏줄 같은 실 끝에는 태아, 하반신 모형, 골반뼈, 증기살균기, 달팽이, 시든 꽃들이 묶여 있다.

케텐만은 사물들을 일상적 환경에서 분리해내는 이런 양식을 멕시코 봉헌화에서 찾는다. 멕시코 봉헌미술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원근법을 무시한 배경,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사물들에 대한 지나치게 섬세한 묘사가 그 기법이었다.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선택해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디에고 리베라와의 관계는 칼로 삶의 또 다른 조건이었다. 스물한 살 연상인 리베라는 칼로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유명한 화가였다. 멕시코 민중미술의 전통을 계승했고, 정부 후원의 벽화 작업을 이끌었다. 칼로가 독립적인 멕시코 미술을 주장한 예술가와 지식인 동맹에 참여한 것은 리베라의 영향이었다.

마로니에북스

마로니에북스

결혼 후 칼로는 태우아나 의상을 즐겨 입었다. 리베라는 멕시코 의상을 입은 칼로를 국가적 영광의 인격화라고까지 말했다. 장식이 많고 화려한 드레스는 오른쪽 다리의 결함을 감춰주었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적이고 민중적인 것을 표현했다. 당시 멕시코시티의 지식인 여성들이 태우아나 의상을 즐겨 입었던 데는 페미니즘적 맥락도 있었다. 태우아나는 멕시코 태우안테페 지역의 민속 의상이었다. 이 지역은 여성들이 지역경제 구조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칼로와 리베라 부부는 이념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는 동지로 보였다. 하지만 리베라는 칼로의 또 다른 고통이었다. 리베라는 1929년 결혼 후 계속 다른 여자를 만났다. 칼로의 여동생과도 깊은 관계를 맺었다. 리베라가 관계를 정리하자 이번에는 칼로가 남녀를 불문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가졌다. 1939년에 두 사람은 이혼했다.

‘짧은 머리의 자화상’에서 칼로는 머리를 바짝 자르고 남성 정장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다. 이혼 후 여성성까지 거부하는 모습이다. 1940년 리베라는 두 번째 청혼을 했다. 칼로는 경제적 독립과 성관계 없는 조건으로 청혼을 받아들였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칼로에게 리베라는 중요한 존재였다. 칼로는 자신의 이마에 리베라의 얼굴을 넣은 자화상을 그렸다. 또 반쪽은 자신의 얼굴로, 나머지 반쪽은 리베라의 얼굴로 이뤄진 초상화를 남겼다.

1949년에 그린 ‘우주와 대지(멕시코)와 나와 디에고와 세뇨르 홀로틀의 사랑의 포옹’에서 칼로는 리베라를 아기처럼 안고 있다. 여신의 모습을 한 대지가 두 사람을 안고 있고, 우주는 이 모두를 안고 있다. 칼로의 가슴은 피를 뿜고 있다. 대지의 여신 시우아코아틀의 가슴에선 젓이 흐른다. 우주는 달이 뜬 밤과 해가 뜬 낮으로 나뉘어 있다.

이런 이원론적 우주관은 고대 멕시코 신화에서 기원한다. 신화에 따르면, 낮의 신과 밤의 신 사이의 경쟁으로 세상의 균형이 유지된다. 우주의 양팔에는 식물들이 자라고, 어둠 쪽에는 칼로의 반려견 홀로틀이 안겨 있다. 멕시코 신화에서 죽은 자들의 영토를 지키는 수호신 홀로틀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삶의 양면성을 포용하기

이 작품은 칼로가 리베라와의 상처 많은 관계를 우주의 시선에서 품는 것으로 읽힌다. 칼로와 리베라와 홀로틀과 대지까지 우주의 검은 팔과 하얀 팔에 안겨 있다. 이런 우주라면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까지 한꺼번에 포용할 만하다.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주의 검은 팔과 하얀 팔에 안겨 있는, 삶의 양면성을 수용한 칼로의 모습이다. 칼로는 1950년 7차례 척추 수술을 받았고 아홉 달 동안 입원해 있었다. 1953년 멕시코에서 열린 첫 전시회는 침대에 누운 채 참석했다. 그해 칼로는 오른쪽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그리고 1954년 마흔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주의 두 팔처럼 삶에는 밝음과 어둠이 존재한다. 칼로의 삶에는 고통의 몫이 유난히 많았다. 이 고통을 이겨내며 칼로는 그림을 그렸다. 젊었을 때는, 꺾이지 않는 의지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칼로를 보며 위안을 얻었다.

이제 오십을 넘어 위안에 더해 용기를 얻는다. 삶에는 극복해야 하는 고난도 있고, 안고 가야 하는 고통도 있다. 칼로의 삶은 후자였다. 끝나지 않는 고통을 안고 가려면 삶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둠을 보며 근거 없는 낙관에 빠지지 않기. 빛을 보며 지나친 비관에 물들지 않기. 힘들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칼로의 그림은 이 깨달음의 증거이지 않을까. 내겐 그렇다.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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