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당신의 가족관계·인간관계는 안녕한가요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2021.06.14

“노년의 걱정거리/ 힘 좋은 어깨 위로 훌훌 털어 넘겨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 향해 천천히/ 기어갈 결심을 굳혔노라.”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605년경 발표한 <리어왕>의 한 구절이다. 리어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했다. 리어는 딸들에게 왕국을 물려주고 100명의 기사와 딸들의 집을 돌아가며 살 작정이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한 나라의 왕이더라도 자식들에게만 기대서 편안한 노년을 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방백으로만 전달되는 리어의 비극은 진심에 대한 태만에서 비롯된다. 사진은 리어왕 퍼포먼스 스틸사진 / 국립극장

방백으로만 전달되는 리어의 비극은 진심에 대한 태만에서 비롯된다. 사진은 리어왕 퍼포먼스 스틸사진 / 국립극장

리어는 딸들에게 누가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지 묻는다. 그에 따라 상으로 영토를 내릴 작정이다. 첫째 딸 고너릴과 둘째 딸 리간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사랑을 호소한다. 리어는 셋째 딸 코딜리아에게도 사랑을 증명할 말을 요구한다. 코딜리아의 답은 없다는 거다. 코딜리아는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사랑하며 결혼 후 그 사랑을 남편과 나눌 거라는 진실밖에 내놓을 게 없다.

리어왕의 불행한 노년

리어는 코딜리아를 쫓아낸다. 다행히 구혼자 프랑스왕이 코딜리아와 함께 떠난다. 코딜리아의 진심은 방백을 통해 객석에만 전달된다. 코딜리아는 자신의 사랑이 입보다 무거우므로 침묵을 택하기로 했다는 거다. 리어는 말로 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진심을 알지 못한다. 코딜리아의 진심을 알아달라는 신하 켄트까지 추방해버린다.

리어의 비극은 여기서 비롯된다. 진심에 대한 태만이다. 공들여 상대방의 마음을 알려 하지 않는 리어와 진심이 있지만 말하지 않는 코딜리아가 맞부딪쳐 운명의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그 대가는 크다.

첫째 딸은 수행 기사를 줄여달라고 요구한다. 리어는 불같은 화를 낸 다음 둘째 딸에게 향한다. 둘째 딸은 언니에게 돌아갈 것에 더해 수행 기사를 더욱 줄이라고 요구한다. 리어는 두 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비로소 눈치챈다.

자식에게 배신당하는 인물은 또 있다. 글로스터 백작이다. 글로스터의 서자(庶子) 에드먼드는 가짜 편지로 적자(嫡子) 에드거를 모함한다. 글로스터는 격분하고 에드거를 찾아내라고 명령한다.

오십대에 읽는 <리어왕>은 젊었을 때와 많이 다르다. 쇠락해가는 노년의 음울함을 보여주려고 쓴 게 분명하다. 당시 셰익스피어는 40대였다. 평균수명도 짧을 때라 40대에 노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자연스럽다. 셰익스피어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일단 리어는 은퇴를 결심한 셈이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게 쉽지 않으니 왕의 자리를 넘기고 싶었다. 문제는 부와 권력이 있을 때는 진심이 필요 없지만, 부와 권력을 넘겨준 다음에는 진심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불행하게도 리어에겐 진심을 알아볼 능력이 없었다.

글로스터는 가짜 편지를 믿었다. 편지엔 아버지의 재산을 받을 수 없고, 아버지의 억압에 묶여 있으니 같이 아버지를 제거하자는 음모가 적혀 있었다. 글로스터는 에드거의 진심을 알아보지도 않고 에드먼드를 믿어버렸다. 진심을 읽는 데 글로스터 역시 실패한 셈이다.

민음사

민음사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온 리어나 자기 자리를 지키려던 글로스터 모두 불행한 노년을 맞는다. 옛날 옛적 어느 왕국의 일이니 오늘날과 같은 복지제도는 없다. 노년의 삶은 전적으로 가족의 돌봄에 달려 있다. 리어도 글로스터도 쇠락해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평생 가꾸어온 가족관계가 중요해진다.

리어는 가족에게 폭군처럼 굴었다. 효도 경쟁을 시키며 코딜리아를 쫓아낸 게 비극의 씨앗이었다. 글로스터 역시 혼외자식으로 에드먼드를 두었으니 비극의 씨앗을 스스로 키웠다. 다행히도 코딜리아는 버림받은 리어를 도우려 달려왔고, 에드거는 두 눈을 잃은 글로스터를 돌보았다.

“무정하게 강타하는 이 폭풍을 견디는/ 불쌍하고 헐벗은 자들아, 너희들이 어디 있건/ 쉴 곳 없는 머리와 먹지 못한 허리와/ 숭숭 뚫린 누더기로 이 같은 계절에/ 어떻게 몸을 보전하느냐? 아, 이런 일에/ 난 너무 소홀했다. 허식이여. 치료를 받아라./ 자신을 노출시켜 가엾은 자들을 느껴라.”

가까운 이들에게 안부전화라도

리어는 첫째 딸과 둘째 딸에게 화를 쏟아붓고 폭풍 이는 바깥으로 나갔다. 리어는 불쌍하고 허약하고 경멸받는 노인이 되고만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작품의 절정은 이런 리어의 광기와 거센 폭풍이 뒤섞인 비극적 장면이다.

리어는 모든 것을 잃고 스스로 가엾은 사람이 돼서야 다른 사람의 사정에 눈을 돌렸다. 자기연민이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리어는 진실에 눈을 뜨고 허식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진즉 마음을 열었다면 첫째 딸과 둘째 딸의 교언(巧言)이 아니라 셋째 딸의 진심을 선택했을 거였다.

가족관계도 인간관계다. 공들여 가꿔야 한다. 리어처럼 부와 권력을 휘두르며 강요해 어떻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까.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진심을 알아보려고 노력하고, 가능하다면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서로의 신뢰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리어왕>의 교훈이다.

이런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게 사랑일 거다. 가족 간 사랑은 하루아침에 타오르고 하루 저녁에 사라지는 사랑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쌓아가고 키워가는 사랑이다. 부모님을 보살피는 것도, 자식을 키우는 것도 이런 사랑 없이는 고단하기만 할 거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를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이 세계의 엄연한 질서다. 노년은 오고야 만다. 그런데 이것을 자주 잊는다. 오십 전에는 실감이 나지도 않았다. 오십이 돼서야 나 역시 노년과 마주하게 됐다.

당장 여러 대비를 해야 할 거다. 건강을 제대로 돌보고, 저축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일상도 나이에 맞춰 재조직해야 할 거다. 그런데 건강과 돈 못지않게 중요한 건 인간관계가 아닐까. 이런 인간관계가 한순간에 주어지는 게 아니니 사랑을 꾸준히 적립하는 건 어떨까.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관계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21세기의 노년에는 혼자 살지, 가족과 살지, 대안 공동체를 만들어 살지,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단언할 수 없다. 그 어디서라도 돌봄을 주고받으며 산다면 그것 역시 나쁘지는 않을 거다.

100세 인생에서 오십이 절반이라면 희망은 있다. 가족은 물론 인간관계나 공동체에 사랑을 쏟아볼 시간이 제법 많다. 광기와 연민에 사로잡힌 리어왕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당장 내일이 되면 가까운 이들에게 안부전화부터 해봐야겠다.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