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위안의 비눗방울

고장원 SF평론가
2021.07.19

기후조절은 양날의 칼이다

불의 발명 이래 인간은 늘 자연에 대한 통제를 꿈꿔왔다. 이러한 욕심의 끝판왕은 기후·기상조건의 인위적 조절이다. ‘비행기 인공강우’의 역사는 미국기업 GE 소속 빈센트 쉐퍼 박사의 1946년 실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사상 최대의 인공강우는 2007년 중국 랴오닝성에서 시도됐다. 구름과 만나 비를 만들어낼 일종의 씨앗(먼지검댕이)들을 잔뜩 실은 로켓을 무려 2181발이나 발사한 끝에 약 8억t의 비가 쏟아졌다. 경기도 전역에 50㎜의 비가 내린 꼴이다. 국토가 넓어 가뭄에 시달리는 곳이 많은 중국에서 인공강우 연구는 반세기가 넘었는데, 류츠신의 단편 ‘위안위안의 비눗방울’은 이러한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위안위안의 비눗방울>(류츠신 지음) / 에브리북

<위안위안의 비눗방울>(류츠신 지음) / 에브리북

이 짧은 소설은 어려서부터 성인이 돼서까지 비눗방울 놀이에 집착하는 딸과 중국 내륙 서북부에 건설된 계획도시가 만성 물 부족으로 유령도시가 될 위기를 막고자 백방으로 애쓰는 아빠의 삶을 대비시킨다. 이공계 박사 출신에다 첨단벤처기업 CEO가 돼 돈방석에 오른 딸이 이루려는 꿈은 아빠 눈에 이기적인 현실도피 오락 같기만 하다. 초강력 계면활성제 덕분에 빌딩군을 품을 만큼 덩치를 키워도 좀처럼 터지지 않는 초거대 비눗방울을 개발하겠다니! 하나 운 좋은 오비이락이랄까. 애초 이 비눗방울은 딸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뜻밖에도 아빠가 평생 염원해온 소망을 이뤄준다. 남중국해 해변과 공중에 설치된 수많은 대형 하늘그물에서 거대 비눗방울들이 쏟아져 나와 길이 약 2000㎞의 대열을 이루며 기류를 타고 중국 서북부로 향한다. 바닷가의 습기를 가득 채운 지름 수㎞의 비눗방울 수억개는 성층권까지 떠올라 히말라야산맥을 넘는다. 이 특수한 비눗방울들은 점성과 연성이 남달라 아무리 커도 잘 터지지 않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증발하다(막의 두께가 얇아지다) 목적지에서 수명을 다한다. 그 결과 아빠가 구하려던 도시 상공에 시원한 빗발을 뿌린다.

과학소설이 주목하는 관심 분야 중 하나인 환경생태학은 과학기술이 양날의 칼이란 사실 또한 잊지 않는다. 딸이 만들어낸 거대 비눗방울 시제품은 도시에 떨어졌다가 도무지 터지질 않아 그 안에 갇힌 주민들을 위기로 내몬다. 외부공기 차단으로 질식은 물론이고 햇빛에 달아오른 온도를 외부로 방출할 수 없어 내부 기온이 섭씨 60도까지 오를 기세니까. 이와 대조적으로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개량한 결과, 거대 비눗방울은 무인도시가 될 뻔했던 신도시를 비옥한 낙원으로 바꿔놓는다. 환경친화적인 것 같고(?)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의 해법은 설사 훗날 그런 기술이 가능해진다 해도 만능은 아닐 듯하다. 중국 특정지역의 가뭄 해갈에는 좋겠으나 대량의 수분을 남중국해에서 억지로 빼낸다면 원래 그곳의 생태계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현지 주민들과 해양생태계는 어찌 될까? SF작가라고 다 류츠신처럼 환경개조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하지는 않는다. 만일 중국의 대국중심주의(혹은 중화주의)가 혹여 생태계에까지 개입하는 날이 온다면 이것이 또 다른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분쟁으로 비화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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