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가장 공정해야 할 대학엔 공정이 없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2021.07.12

“학술지 평가기준만 잘 맞추면 등재지로 승격될 수 있기 때문에 학술지의 양적 확대는 가져왔지만, 질적인 확대는 안 된 것이죠. 또 등재지 숫자는 늘어났지만, 연구재단의 예산이나 인력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감시가 허술해질 수밖에 없었고요. 이제는 등재지의 양적인 확대보다 질적인 확대를 꾀하는 방향으로 등재지 제도의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2019년 기준으로 한국 대학의 전임교원 수는 약 8만9345명, 비전임교원은 6만8873명이다. 이중 여성 전임교원은 26.2%, 외국인 전임교원은 5.7%로 파악된다. 매년 감소하는 전임교원의 비율보다 10배씩 비전임교원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여성 전임교원의 비율은 미미하게 매년 증가 중이지만, 외국인 전임교원의 비율은 매년 감소 중이다. 요약하자면 한국 대학에서 정규직은 계속 감소 중이고, 비정규직은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대학의 국제화는 퇴보 중이다. 강사법은 이런 대학의 흐름을 가속화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대학은 더 이상 정규직 교수를 원하지 않는다. 소수의 정규직 교수가 다수의 비정규직 교원을 싼값에 착취하는 구조로 한국 대학은 진화하고 있다.

학회의 타락

하지만 한국에서 여전히 교수는 선호직종이다. 고위직 관료에 임명되는 이의 대다수가 교수인 게 현실이고, 직업만족도에서도 직업안정성에서도 교수는 언제나 상위권이다. 게다가 교수는 한국에서 존경받던 직업의 대명사였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교수라는 단어는 자기과시용으로 가장 적합한 직함이다. 미디어에서 강연하거나 지면에 글을 쓰는 이들은 물론 유명인의 상당수가 교수 직함을 갖고 있을 정도로, 한국엔 정말 수많은 교수가 있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대학과 유명인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생겨난 명함장사의 결과라는 점이다.

교수라는 말 앞에 붙는 수식어의 대부분이 바로 이 명함장사로 얻어진 교수자리다. 겸임, 초빙, 객원, 특임, 대우, 외래, 명예, 석좌, 기금, 연구, 교환, 강의 등의 수식어를 지닌 교수들은 대학의 전임교원이 아니다. 2018년 교육부의 조사에 의하면 국내 비전임 교원의 명칭은 31가지가 넘는다. 최근 숙명여대는 대우초빙교수라는 직함까지 만들었다. 이들 중 대다수가 전임교원처럼 주당 9시간의 강의 및 연구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한 학기에 특강 한두차례만으로 교수 직함을 다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원래 비전임 교원제도는 특수한 분야의 학문을 담당하는 교수를 전임으로 채용할 수 없을 때 사용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이젠 명함장사와 교수 인플레이션의 주요 통로가 됐다. 게다가 2019년 개정 강사법 이후 대학들은 시간강사를 강사로 고용하는 대신 초빙교수와 겸임교수를 통해 교원 확보율을 채우고 있다.

얼마 전 <뉴스타파>는 경기대 교수들 중심으로 운영되는 ‘관광경영학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논문 심사과정을 왜곡해 연구재단 평가용 서류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번에 폭로된 이 학회의 논문게재 과정은 경악스럽다. 학회장을 비롯한 상당수의 연구자가 이 학회를 일종의 논문공장으로 이용했는데, 논문을 제출하면 심사위원 명의를 도용해 학회장 등이 논문을 승인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논문게재율을 맞추기 위해 다른 학회에 제출된 논문을 꿔오는 일까지 있었다고 하니, 이쯤되면 한국연구재단이 심사하는 등재지 대부분을 전수조사해야 할 판이다.

얼마 전 세종대 윤지선 교수의 논문이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미디어는 그가 저격한 유튜버와의 갈등에 주목했지만, 사실 윤지선 사건의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제대로 된 참고문헌도 없이 오류투성이로 작성된, 게다가 철학적 논증 자체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논문이 버젓이 연구재단 등재학술지에 게재됐다는 점에 있다. 발생학에 대한 배경지식의 부족은 차치하고, 인간 남아의 발생과정을 곤충에 아무런 논증도 없이 대비시키는 처참한 수준의 논문이 서울대 교수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철학연구회에 의해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됐고, 그런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도 학회는 물론 철학계 모두가 침묵했다는 사실은 한국의 학회가 얼마나 처절하게 망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에는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것만 3185개의 학회가 있다. 학문 분야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보장받기 위해 학회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그런 모든 요소를 고려해도 한국에 학회가 지나치게 많다는 데 있다. 교육학, 법학, 역사학, 경영학의 경우엔 학회가 100개 이상으로 생물학, 물리학, 화학처럼 학회가 한두개로 통합된 자연과학 분야에 비해 비정상적인 학회 과잉현상을 보여준다. 심지어 요즘 대학교수들은 학회 임원이 되기 위해 학회 쪼개기도 한다. 학회 임원은 연구재단으로부터 여러 위원 자리를 제공받는 지름길이 된다. 이렇게 학회 수가 증가하다 보니 등재지로 인정받기 위해 논문이 필요해지고, 이에 따라 부실 논문도 당연히 증가하게 된다. 윤지선의 논문은 바로 그런 결과물이다.

일류의식과 삼류 교수

무심코 ‘대학교수’로 뉴스를 검색하니, 가장 먼저 뜨는 뉴스 제목이 “대학 총장, 임금 삭감 교수들에게 갑질의혹 논란”이다. 그 밑엔 도대체 왜 한국 교수사회에선 성비위가 끊이지 않는가에 대한 사설도 보인다. 카이스트 총장 이광형 교수의 글도 보인다. 한국에 세계 일류대학이 없는 이유는 교수, 학생, 국민 모두 일류의식이 없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바로 그 아래엔 ‘친일이 정상’이라고 외치던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의 길거리 성추행 뉴스가 떠 있었다. 미래학에 관심이 많은 카이스트 총장의 정신세계는 여전히 개발독재 시대에 남겨져 있었다. 한국에 제대로 된 일류대학이 없는 이유는 삼류 교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나 잘하는 교수가 총장질로 대학을 망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은 인구절벽으로 피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 대학들이 그동안 노출해온 구조적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 소수의 정년보장이 약속된 정규직 남성 노교수들을 위해 운영되는 대학에서, 학문은 물론 한국의 미래를 움직일 혁신이 등장할 리 없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모든 후보가 공정을 내세우고 있는데, 가장 공정해야 할 대학엔 공정이 없다. 대학은 어둡다.

김우재는 한때 초파리로, 지금은 꿀벌로 세계정복을 꿈꾸는 과학자다. 동물의 행동을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며, 사회성 행동을 유전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어한다. 연구 외에도 과학의 사회적 사용에 관심이 많으며 <플라이룸> 등의 책을 저술했다. 현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연구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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