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아트테이너 김혜진

글·진행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 사진·동영상 청년서포터스 ‘젊은나래’
2021.07.05

내 작품은 내 삶의 ‘페르소나’ 그 자체

팔방미인. 김혜진 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JTBC 드라마 <언더커버>에 출연한 김혜진은 배우면서 23회의 개인전과 130여회의 아트페어 및 그룹전에 참여한 작가다. 배우이자 아티스트, 그래서 우리는 그를 ‘아트테이너’라 부른다. 김혜진은 최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그랜드관 개관전인 ‘스타작가 5인전’에도 초대됐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배우이자 작가인 김혜진이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이자 작가인 김혜진이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은 어디서 영감을 받나.

“대부분 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는다. 과거와 현재, 앞으로의 삶을 위한 자가치유 시리즈로 쭉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일상도 나오고, 영혼을 돌보기 위한, 힐링을 주기 위한 요소도 있다. 그래서 직접 전시장에 오면 내 삶도 듣고, 그걸 표현한 그림도 보고, 같이 교감할 수 있다(웃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자면.

“기법도, 스토리도 변천 과정이 많았다. 굉장히 회화적일 때도 있었고, 가장 돋보이는 기법을 사용해 내가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시작하자마자 뛰어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그 과정이 10년쯤 걸린 것 같다. 지금 내 것을 찾아 표현할 수 있는 것도 과거와 현재 이야기들의 페르소나 그 자체이다.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페르소나라는 건 여러분의 사회적 역할, 살아가면서 수행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모든 과정이 회화, 설치, 조각으로 이뤄지다가 초현실주의로 왔다. 하늘을 보면 기분이 풀리고, 이런 걸 복합적으로 표현하다 보니 초현실주의적으로 됐다. 이처럼 내 그림은 쭉 변천사가 있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피카소전’에 가보니 피카소의 작품에도 자신의 사랑, 삶, 변천사가 많이 녹아 있더라. 이번에 전시된 작품도 그런 것 같다.

“첫 개인전 때는 제목이 이어져 하나의 글이나 시나리오처럼 되게 했다. 내가 작품마다 제목을 달았는데, 작품 제목을 쭉 읽다 보면 나중엔 눈물·콧물을 다 흘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웃음). 내 아이덴티티, 즉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점은 배우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 양이나 작품수가 너무 많아지니까 내가 글을 계속 쓰는 게 한계가 있기도 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개인전 때 작품 제목을 전부 영화 제목으로 적는다.”

-원래 미대 출신이라고 들었다.

“지금 졸업한 지가 오만년이라(웃음). 그런데 왜 우리는 과를 나눠 놓는지, 전공자라는 걸 왜 만들어 놓는지 모르겠더라. ‘내 재능은 다방면으로 타고났는데 나한테는 한가지만 하래.’ 이게 내가 나중에 말할 작가 철학이기도 하다. ‘내가 왜 남들이 보고 싶어하는 하나의 패턴만 그려야 해?’ 그런데 미술 교육할 때는 그런 게 있다. 미술 시장에 나와도 너의 색깔 하나를 그려야 인정받고 너의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한 우물을 파라. 그것조차 10년 이상 해야 인정받는다. 그림을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몰아가더라. 그런데 내가 다 겪어보지도 않고, 표현해보지도 않았는데 내 것을 어떻게 찾는지 너무 말이 안 되는 거다. 피카소는 100년을 그렸는데, 아기 때부터 그림을 그려 안 해본 게 없는, 1세기를 보낸 그런 분도 다 겪었으니까.

내 작품도 10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너무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는 거 아니야?’라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평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죄송하지만, 내가 그때 그걸 표현하고 싶었고, 그걸 표현하려면 이 기법을 쓰는 게 최상이었다. 난 최대한 연구하고 많은 노력을 했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 정말 미친 노력으로 남들은 몇십년씩 하는 그 과정을 빠르게 지내온 것이다. 전시도 1년에 20회씩 소화해가면서 개인전도 23~24회 진행했고. 대형아트페어나 그룹전시회도 거의 150회 이상을 해왔다. 쉬운 건 아니다. 사실은 전문 작가들도 한달에 다섯개 이상의 전시회를 소화하는 걸 꾸준히 하는 게 쉽지 않다.”

아트테이너 김혜진(사진 오른쪽)이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아트테이너 김혜진(사진 오른쪽)이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내 속에 있는 걸 끌어내고 기법도 계속 연구하다 보니까 무릎을 꿇고 작업하는 게 많다. 작품을 보면 돌가루이다. 스톤 작업을 뿌려 하다 보니까 그림을 눕혀 놓고 엎드려서 하는 게 많다. 그게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쭈그린 자세로 하게 된다. 그래서 무릎 연골이 거의 없다. 또 10년 이상 거의 잠을 안 자고 그림을 그리다 보니 탈골이 된다. 살짝만 돌려도 무릎이 빠져버려 나사로 조여야 한다. 이렇게 몰입하는 작가들이 각자의 기법에 따라 앓는 고질병이 있다. 꿈을 펼치고 하는 것에 대한 대가이기도 하다. 행복한 시간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직장생활도 디자인 쪽에서 시작했다는데.

“순수미술을 하고 싶어 준비했다. 잠깐 학교 과제 때문에 디자인을 한달만 더 해야겠다 싶었는데, 미술학원 선생님이 무조건 네 인생 책임질 테니까 과를 바꿔 디자인 전공을 하라 했다. 그래서 디자인과를 가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20대 때는 직업으로 디자인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열망은 어릴 적부터 순수미술 쪽이었다. 막상 디자인 쪽에서 살고, 배우의 삶에도 10년 몰입한 후 작가로 전향해야겠다, 이때 아니면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창 드라마 <아이리스>랑 <동이>로 사랑받을 때 홀연히 떠나 내 것을 찾으려 순수미술도 하고, 설치미술도 하고, 조각도 하고, 회화전까지 계속 인연의 끈이 온 거다.”

-미술 말고 연기를 배운 적은 없나.

“어렸을 때부터, 그것도 약간 타고났다(웃음). 내가 잘한다는 게 아니라 ‘끼’라는 게 있지 않나. 어릴 때도 ‘야, 너 노래 한번 해봐, 연기 좀 해봐’ 하면 오락부장처럼 막 했다. 되게 소심했는데도 그걸 시키면 막 하고 그랬다. 연극에 처음 도전할 때도 일주일 전에 캐스팅이 됐다. 알고 봤더니 나한테 먼저 얘기한 게 아니다. 여주인공이 사고가 나 급하게 캐스팅이 됐는데, 다들 대본 내려놓고 블로킹 잡고 있을 때 섭외됐다. 다 유명한 분들이었다. 유지태·장현성 선배, 고수희 선배 이런 분들이랑 같이 공연했다. 적응도 빠르게 했다. 처음 무대를 하는데도 관객 얼굴도 잘 보였고, 남들보다 삶에서 어렵고 난해한 상황을 빨리 겪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인식하면 인터뷰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인식하면 인터뷰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작가를 하려면 들어가는 비용을 준비했어야 할 텐데.

“혼자 일을 오래 했기 때문에 매니저도 없고, 혼자 택시 타고 다녔다. 잠을 한시간도 안 자고 일을 했다. 내 다이어리에는 몇년 동안 개미처럼 새까맣게 글씨가 쓰여 있다. 하루에 CF 찍고, 영화 단역 하고, 드라마 단역 촬영을 다한 적도 있었다. 시간만 맞으면 다하는 거다.”

-배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면.

“나는 한푼도 없을 때 시작했다. 분명 길은 있으니까 꿈이 있으면 매니저 없어도 되니까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 좋은 것만 할 필요도 없고 주인공 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까 좋은 기회도 더 많이 온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드라마 <아이리스>로 큰 사랑도 받았다. 나를 끌고 온 건 미술에서는 관객과 컬렉터였다면 엔터 쪽에서는 팬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힘의 원천은 역시 대중이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엑스트라 때 좋은 기회가 됐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기억에 남는다. 출연했던 JTBC 드라마 <언더커버>의 송현욱 감독은 당시 조연출이었다. 당시 나는 엑스트라였는데, 너무 주목을 받아 그 작품에서 갑자기 조연이 됐다. 내가 오면 감독님이 나를 보려고 (일부러) 왔다. 방송국에서 스타가 됐다. 그런 특이한 기억을 준 분인데, 어느 날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걸 손 감독님의 아내가 먼저 알아봤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준비하던 KBS 첫 데뷔작 <전우>의 주인공으로 내가 오디션을 볼 기회가 생겨 인연의 끈이 이어지게 됐다.”

-연기에 집중할 때와 작가 활동에 몰입할 때, 생활패턴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희한하게 내가 했던 일들은 거의 잠을 못 자는 일들이 많았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닌데 직장생활을 할 때도 디자이너로, 벤처 관련 일들이 많다 보니까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일처리가 빨라서인지 내가 좀 어렸을 때부터 과 대표처럼 행사를 진행하거나 후배들이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잠 없이 몰입해 내 체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엔터 쪽도 출퇴근이 따로 없다. 하늘을 바라볼 정신도 없고, 미술 작업을 할 때도 하늘을 볼 수 없는 상황이 3~4년 됐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지하에서 무릎을 꿇고 열심히 그림을 그려 면역이 떨어졌다. 육체적인 힘듦이 유난히 심한 작업이 많았다. 지금은 작업을 한 1년 정도 릴렉스하게 했다. 앞으로는 과도하게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이끌어가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전시도 한달에 5개씩 하지 않고 하나씩 몰입해서 한다. 신작도 준비하면서 배우로서 기회 왔을 때 충분히 연기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여유롭게 삶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글·진행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 사진·동영상 청년서포터스 ‘젊은나래’>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