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개의 날

조경숙 만화평론가
2021.06.28

폭력을 덮는 군대에 묻는다

얼마 전 공군 여중사 한명이 자살했다. 그는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였고, 이를 신고했지만 군 내에서는 덮기 바빴다고 한다. 설상가상 그는 옮긴 부대에서도 ‘관심 간부’ 취급을 받았다. 피해자가 괴로움에 시달리는 동안 정작 가해자는 태연하게 군대를 오갔다.

<D.P 개의 날>(김보통 지음) / 씨네21 북스

(김보통 지음) / 씨네21 북스

직업군인이든 의무 사병이든, 그들에게 군대는 강제력을 지닌 하나의 견고한 세계다. 나라를 지킨다는 소명 아래 모인 이들은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것을 군대에 종속시켜야 한다. 집도, 동료도, 경력도, 미래도 군대 안에 있다. 그러나 가진 것들을 헌납하고 입대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군대는 이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군 기강 정립이라는 손쉬운 말로 이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폭력을 정당화시킨다. 공군 여중사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조직은 코로나19로 회식이 금지된 시기였음에도 회식을 감행한 사실이 들통날까 두려워 소속 부대원의 성폭력 사건을 덮으려 했다. 군대는 개인의 철저한 희생을 강요한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이라는 것이 이들의 일상적인 폭력마저 정당화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군대 사망사고에 의하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군대 내에서 매년 50명 이상이 죽었으며, 그중 과반이 자살이다. 2020년에는 4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대신 도망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군대에는 이런 탈영병을 쫓는 ‘군무 이탈 체포조(이하 군탈체포조)’가 있다고 한다. 만화가 김보통은 군인이던 시절, 실제 군탈체포조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D.P 개의 날>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D.P 개의 날>의 주인공은 군탈체포조 안준호 상병이다. 작품에 따르면, 매달

60명 이상의 군인이 탈영한다고 한다. 이들이 탈영하는 이유는 잡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집에 복귀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겼는지, 개인적인 고민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군대 내 가학 행위가 있었기 때문인지. 준호가 체포한 탈영 군인들은 대개 군대에서 선임들이 부당하게 행사하는 폭력 때문에 괴로워 도망친 사람들이다. 선임의 성추행, 성폭력, 이유 없는 폭행, 강압적이고 모욕적인 처벌… 군대에서 선임들의 도 넘은 괴롭힘에 시달리던 탈영병 오성환은 자신을 체포하러온 준호에게 묻는다. “군대가 바뀐다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확실히 바뀐다고 설득하려는 준호의 말에 오성환은 고개를 돌린다. “있잖아요. 제가 쓰는 수통 밑에 1953이라고 새겨져 있어요. 육이오 때 쓰던 거예요.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폭력을 피해 도망친 이들을 잡는 게 준호의 일이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탈영병들을 체포하고 난 뒤 준호가 복귀한 내무반에서도 가학 행위가 일어난다. 가해자들은 준호에게 이 폭력에 동참하라고 종용하기까지 한다. 그런 장면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준호가 질문한다. “국방의 의무랑 병신 짓거리 참는 거는 연관 없지 않냐?” 준호의 질문은 매년 수십명씩 자살하는 군대를 향해 우리가 스스로 던져야 하는 물음이다. 선임의 빨래를 대신하고, 소변기에 머리를 박고, 선임의 성폭력을 참는 것은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국민을 부당한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보호되는 나라란 과연 무엇인가.

<조경숙 만화평론가>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