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에 불과한 남근중심주의
<페니스, 그 진화와 신화> 에밀리 윌링엄 지음·이한음 옮김 뿌리와이파리·2만2000원
한국어판에 달린 부제 때문에 이 책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집어지고 자지러지는 동물계 음경 이야기’라니. 출판사 편집자는 혼신을 다해 반짝거리는 영감으로 ‘섹드립’에 가까운 부제를 단 뒤 흐뭇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 제목이나 부제와 영 딴판인 것도 아니다. 과도하게 숭앙받거나 혹은 반대로 처참하게 멸시당하는 ‘페니스’에 관한 신화적 태도를 그 뿌리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기 때문이다.
생명과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관련 분야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저자는 인간뿐 아니라 여러 동물의 ‘음경’을 비교하며 인간만이, 그리고 유독 남성만이 갖고 있는 음경에 대한 신화를 추적한다. 글은 대중적으로 두루 읽히기 쉬울 정도로 흥미롭게 쓰였다. 한 예로, 달팽이는 따끔한 바늘로 상대의 몸을 아무 데나 찔러 정자를 전달하고, 노래기는 같은 역할을 다하기 위해 수많은 다리 중 8번째 다리 쌍을 이용한다. 음경이라고 하면 수컷의 몸통에서 툭 튀어나와 있는 부위라고 흔히 상상하지만 많은 동물의 예를 볼 때 정자를 전달하는 데 쓰는 신체 부위는 사람의 그것과 전혀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러한 사례를 종합할 때 나오는 결론은 분명하다. 저자의 말처럼 남근중심주의, 즉 거대한 마천루나 오벨리스크처럼 음경을 다시 한 번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따지고 보면 별 실익도 재미도 없는 환상에 불과하며 사회적으로 유해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화의 껍데기를 벗겨버린 뒤 단숨에 음경을 음경으로만 보는 시각 전환도 가능할까. 저자가 말하는 섹슈얼리티의 발원지인 ‘뇌’가 단단한 두개골 속에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글쎄 그리 단순한 이야기는 아닐 듯하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 나오미 클라인 지음·김소희 옮김 모비딕북스·2만8000원
지난 50여년간 전 세계 재난의 현장에서 사익을 취하는 기업들이 국가를 움직여온 모습을 탐사 취재했다. 전쟁과 쿠데타, 테러, 자연재해 등 충격적인 사건 이후 혼란을 이용해 부유한 이들만 더 부유하게 만드는 약탈적 행태를 고발한다.
▲작은 연못 | 김민기 지음·정진호 그림·창비·1만4000원
1972년 발표된 이래 교과서에 수록되고 꾸준히 리메이크될 정도로 인기를 얻은 동명의 노래를 가사와 그림이 어울린 그림책으로 엮었다. 시대 상황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해석돼온 곡의 노랫말에 시각적 은유를 더했다.
▲욕구들 | 캐럴라인 냅 지음·정지인 옮김 북하우스·1만8000원
거식증으로 고통받은 경험이 있는 저자가 당시를 회고하면서 식욕과 성욕, 애착, 인정욕 등 여성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문화적 압박에 대해 썼다. 내면의 채워지지 않은 허기가 어떻게 쇼핑 중독이나 폭식, 쾌락의 탐닉 등으로 이어지는지 깊게 들여다봤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