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드라마로 보는 21세기 노동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2021.05.10

한국사회에서 ‘노동’만큼 대접이 박한 단어가 또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뉴노멀 같은 신조어에서 ‘노동’은 없는 존재처럼 취급되기 일쑤다. 노동이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것과 궤를 같이해 ‘노동영화’도 금기다. 20세기 후반 잠깐 가뭄에 콩 나듯 다뤄지다 요즘엔 그저 지나가는 배경이거나 희화화 소재로 쓰일 뿐이다,

‘두근두근 외주용역’의 한 장면 / 시트콤 협동조합

‘두근두근 외주용역’의 한 장면 / 시트콤 협동조합

‘웹드라마’라는 장르가 있다. 만화로 치면 웹툰과 유사한 존재다. 짧은 분량과 저비용으로 2010년대 이후 각광받고 있다. 특성상 다양한 시도와 소재 활용 시험무대가 되기도 한다. 공중파 방송이나 상업영화에선 멸종위기인 노동문제도 웹드라마에서는 직설적으로 다뤄질 수 있다. 유튜브 채널 ‘시트콤 협동조합’의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요즘 보기 드문 본격 노동 주제 웹드라마 시리즈다.

드라마 대본 작업 현장, 드라마 <유니콘이 필요해> 서브 주인공의 음주운전 사건이 터지자 제작진은 대책 마련에 골몰한다. 진즉에 (극 중에서) 죽여버릴 걸! 아득바득 궁리를 거듭하는 가운데 방송 콘텐츠 제작환경과 그 이면의 ‘사람 갈아 넣는’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방송작가와 촬영 스태프들은 3일째 철야 중이고, 보조출연자들은 자비로 찜질방에서 대기한다. CP는 여기 걸린 광고가 몇개인데! 시청률 한창 올라가는 중이라며 탄식하지만, 보조출연자들에게 숙박을 제공할 생각은 없다.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막내인 수지 작가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여자 주인공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내용으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벗어나자 주장한다. 하지만 선배들은 드라마는 개인의 역경과 환상을 팔아야 한다며 핀잔을 준다. 낙담한 막내 작가와 외주 하청 김 PD는 “유니콘이 아니라 유니온, 노조가 필요해!” 마음의 소리를 교감한다. 비록 이들의 아이디어는 현실에선 무산되지만 서로 같은 뜻을 공유함이 확인되고, 매년 5월 1일마다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인터내셔널가’를 배경음악으로 5분짜리 5부작 웹드라마는 마무리된다.

너무 낭만적이지 않냐는 이들에겐 외전 <두근두근 외주용역>이 기다린다. 대기업 과장과 하청업체 사장이 만난다. 하청업체 사장은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대기업 횡포라 자조하고, 대기업 과장은 너와 나는 신분이 다르다며 깔보지만, 이들의 독백은 서로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꼴사나운 상대에게 노조가 생기면 쌤통이라 생각하는 순간만 빼면, 둘은 본심을 감추기 바쁘다. 한국사회에서 부당하게 낙인찍힌 노조 이미지가 어떤 의도로 조장돼왔는지 단 5분 만에 풀어내는 경이로운 단편이다.

이 시리즈의 엔딩 크레딧에는 수많은 노동 관련 연관검색어와 상담 연락처가 빼곡하다. 그 검색어들의 사전적 의미와 연락처만 메모해둔다면 실생활에 퍽 유용할 테다. ‘노동’이라는 의제가 아무리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지언정 물이나 공기와 같이 사회를 받치는 기반임을 새삼 확인하게 해주는 이 시리즈의 후속편을 얼른 보고 싶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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