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VJ 카메라로 본 민주화 투쟁기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2021.05.03

미얀마 민주화운동이 3개월째를 넘어가면서 시민의 희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중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국제사회는 시위대를 지지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도움을 전하기엔 부족한 상태다. 그동안 타국의 민주화운동에 상대적으로 입장표명이나 개입이 턱없이 미흡했던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는 활발히 의견을 개진하는 중이다.

버마VJ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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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운동은 올해 초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니다. 1962년부터 기나긴 군부독재에 맞선 1988년 8·8항쟁, 2007년 샤프란 항쟁 등이 끈질기게 일어났다. 한계에 부딪힌 군부는 수십년간 가택 연금했던 민주화의 상징, 국부 아웅산의 딸인 수치와 그의 정당 NLD에 약간의 권력을 나눠주며 형식적 민주화를 진행한다. 사람들은 낙관했다. 하지만 군부독재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자국민을 대상으로 내전을 벌이는 중이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보여주듯, 3세계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주의 투쟁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서구 언론과 영화계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자국민에게는 폭압적 독재자라도 강대국 시민권자에겐 주춤한다. 그 이점을 활용해 미얀마 민주화운동 영상물은 거의 전적으로 서구의 시선과 자금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8·8항쟁 직후 군부 탄압을 피하려는 민주화 인사들과 함께 목숨 건 탈출을 감행하는 미국인 의사 이야기를 다룬 <비욘드 랭군>(1995)과 아웅산 수치의 전기영화 <더 레이디>(2011)를 통해 그가 2010년 가택연금에서 석방되기까지 과정과 민주화운동의 개략적 흐름을 엿볼 수 있다.

EBS의 다큐멘터리 전문 OTT 플랫폼 D-box에는 <버마 VJ>라는 작품이 등록돼 있다. 감독은 덴마크인이지만 작품 속 영상은 거의 전부가 ‘버마 민주의 소리(Democratic Voice of Burma·DVB)’ 지하방송 활동가들이 생명의 위협 속에서 촬영해 해외로 반출한 것들이다. 대부분 현장에서 휴대폰이나 핸디캠으로 촬영됐다. 감독은 이를 편집하고 정리했을 뿐이다. 비록 지난 10년의 민주화일망정, 이를 쟁취해낸 2007년 투쟁의 시작부터 종막까지가 생생히 담겨 있다. 물론 그 대가는 가볍지 않다. 작품 속 화자의 지인 몇은 끝내 소식이 끊어졌고, 비밀리에 운영되던 방송본부는 끝내 경찰에 ‘함락’되고 만다. 하지만 수많은 시민의 희생과 불굴의 의지를 목격한 화자는 ‘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생명을 걸고 미얀마로 잠입한다.

그 장엄한 결의 앞에서 (이제 군부독재의 총칼 걱정은 않는) 한국 시민은 답해야 한다. 우리가 힘들 때 누군가 자기 안위를 희생하며 소득 없는 일에 나섰다. 이제 우리도 찬란한 민주화 투쟁 역사를 자랑만 할 게 아니라 그에 희망을 품고 거리에 나선 이들을 도울 궁리에 나서야 할 때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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