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OTT 시대, 가끔은 ‘화면 off’

김태훈 기자
2021.03.01

1981년 미국에서 당시로선 특이한 채널이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24시간 음악이나 음악 관련 프로그램만을 방영하는 MTV입니다. 뮤직비디오라는 음악계의 새로운 흐름을 연 이들이 처음으로 전파에 실어보낸 노래가 바로 ‘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습니다. 영국의 뉴웨이브 밴드 더 버글스의 노래로 제목의 뜻은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네’ 정도 되겠죠. 소리 중심의 음악시장이 영상 중심으로 격변을 맞게 된 상황을 상징하는 곡이었습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의미하는 OTT가 지상파와 케이블, IPTV를 ‘죽일 듯이’ 세를 확장하는 2021년의 상황은 40년 전과 겹쳐 보이는 점이 많습니다. 이제 ‘안방극장’이란 표현도 걸맞지 않은 시대가 왔습니다. 안방이나 거실에 대형 TV를 갖추고도 굳이 작은 화면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영상을 감상하니까요. MTV가 개국할 무렵인 80년대 국내 안방극장 앞에 앉아 있던 시청자들은 강풍만 불어도 흔들리는 안테나 때문에 화면이 먹빛이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반면 OTT는 거추장스러운 셋톱박스조차 필요 없게 만들며 최고화질의 화면을 언제 어디서든 또렷하게 감상하게 해줍니다.

새로운 변화는 희망찬 가능성과 함께 과거의 유산에 추억이라는 색깔을 덧입힙니다. 흑백TV나 아날로그 방송 시절의 추억을 낭만적으로 여겨온 것처럼 조만간 디지털 방송 역시 같은 취급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집에도 5년 가까이 한 번도 전원을 켜지 않은 TV가 애물단지처럼 남아 있습니다. 막상 중고로 팔기 아까운 마음이 맞서서 용케 버티고는 있죠.

OTT건 지상파 방송이건 실용성 외의 가치를 놓고 평가 내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한때 ‘바보상자’라고 할 정도로 시청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었던 TV의 시대가 저물고 능동적인 검색과 감상이 가능해진 OTT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 흐름도 지나가 버리면 다음엔 어떤 바람이 불지 궁금합니다. 이미 OTT로 영상 한편 보고 나면 자동 추천 목록에 뜨는 영상을 습관처럼 눌러 멍하니 보는 이들도, 아니면 아예 뭘 볼지 고르기만 하다 시간을 다 보내는 이들도 늘고 있답니다. 어차피 ‘멍때릴’ 거면 때로는 차라리 화면을 끄고 식구들 얼굴이라도 보며 멍때려 보는 건 어떨지 감히 제안해 봅니다. 영상은 다시 볼 수 있지만, 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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