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8년 전 그때…

송윤경 기자
2021.02.08

[취재 후]가습기 살균제 참사, 8년 전 그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처음 만난 건 8년 전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둔 2013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건물 앞에서 이들은 외로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확인된 것은 2011년 가을.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시점의 회견에서 나온 얘기는 의외였습니다. 당시 정부는 피해자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원인 미상 폐 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것만 확인한 후 손을 놓고 있었던 겁니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사연을 취재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내가 이걸 내 손으로 샀어요. 그러니까 나 때문이에요.” 가족에게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산 생활용품이었습니다. 고개를 떨어뜨리며 “내 탓이다”라고 말하는 피해자들 앞에서 깊은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2016년엔 가해자 단죄가 이뤄지리라는 기대도 해보았습니다.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나서 옥시와 롯데마트 등의 책임자들은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SK·애경 제품 피해자들은 또 한 번 가시밭길을 걷게 됐습니다. 지난 1월 1심 재판에서 SK·애경은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무죄’ 판결문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사는 학자들에게 ‘단정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학자들에게 100% 확신은 신의 영역입니다. 불확실성을 줄여가는 방식으로 연구하는 학자들과 불확실성이 한점도 남아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재판부 사이의 간극이 컸습니다. 재판부가 해외 학술지에도 실린 주요 실험결과를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 연구 결과를 바르게 해석하지 못했다는 지적, 각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종합’하는 대신 개별 연구의 ‘불완전함’에만 주목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논란을 지켜보며, 8년 전 피해자들을 처음 만난 때가 떠올랐습니다. “내 사례를 조사 해달하고 정부에 연락해도 답신이 오지 않아 막막하다” 했습니다. 그때 정부는 적극적으로 피해자 조사에 나섰어야 합니다. 피해 신고를 받고, 임상·병리학적 분석을 진행하면서 살균제 사용 정보, 피해자들의 유전력, 주변 환경 요소 등을 기록해 두었어야 합니다. SK·애경 가습기 살균제 성분은 옥시 사례와 달리 동물실험만으로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와 유족들이 애도와 회복의 시간을 갖고 일상으로 복귀할 그 날은 언제쯤 올까요. 부디 항소심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년이나 내후년에 쓸 가습기 살균제 기사는 피해자들의 ‘회복’에 관한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