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민사재판, 사람을 흥부로 보지 않는다

박형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2021.01.04

판사로 일하며 편하면서도 뿌듯했던 때는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이다. 판결문을 쓰지 않아서도 좋았지만, 예비법조인에게 가장 중요한 ‘민사재판 실무’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증거와 법리에 따라 원고의 권리와 피고의 의무를 확정 짓고, ‘피고는 원고에게 얼마(몇원까지)를 지급하라’는 주문을 내는 모습이 처음에는 놀랍고 신기했을 것이다. 쉬는 시간에 제자들에게 “민사재판에서는 사람을 흥부로 보는가, 놀부로 보는가?”라고 묻곤 했다. 놀부라고 답하면서 얼굴을 붉히던 마음씨 착한 제자가 눈에 선하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사적 자치의 원칙’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어느 사회가 재화를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할지를 정하는 방식은 세가지다. 친족과 계층제도를 통해 내려오는 관습에 따라 정해지는 전통방식, 중앙 권력자가 지시한 바에 따라 구성원들이 생산하고 분배받는 명령방식은 역사 속으로 대부분 사라졌다. 시장방식에서는 개인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 의사에 따라 생산하고 교환하고 소비한다. 우리가 채택한 시장방식경제,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재물과 돈에 대한 욕망을 따르며 자유롭게 경쟁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체적으로도 부가 늘어나고,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1776년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건 도축업자와 양조업자, 제빵사의 선의 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이 아니라 이기심을 믿어야 하고, 그들에게 우리의 욕구가 아닌 그들의 이익에 대해 말해야 한다.”

민법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사적인 경제관계와 가족관계를 다룬다. 그중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돈 벌며, 돈으로 재화를 구입하고, 남에게 당한 피해를 구제받는 내용을 규율하는 재산법과 돈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는 민사재판은 시민에게 가장 중요한 법이고 재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통 농경사회도 아니고 계획·명령사회도 아니다. 로마법의 법언을 빌리면,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Do ut des)’라는 상호성과 대가성이 일상적인 경제생활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

자기 이익은 제쳐놓고 형제간 우애만 소중히 여기는 흥부는 윤리적으로 권장될지 모르지만, 민사재판이 상정하는 인간은 아니다. 사람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사유재산권을 존중하는 것을 바탕으로, 민법은 모든 사람이 타인과 자유롭게 계약을 맺어서 법률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민법학자들은 이런 ‘사적 자치의 원칙’이 개인의 자율을 보장하며 사적 영역에서 인격이 온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본다. 개인의 자율성이 인정되려면 세가지 전제 조건, 즉 계약당사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고, 계약당사자가 그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그 판단의 토대 위에서 대등하게 상대방과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거래에서는 이런 조건을 제대로 갖출 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적 자치의 원칙을 제한하는 이론과 법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다.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형성된 거래에서 다른 사람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법원이 사후적으로 민사재판으로 책임을 묻고 사적 경제분쟁을 심판한다.

우리 법원에 2019년 한 해 접수되는 민사사건은 475만건이 넘는다. 금융기관이 빌려준 돈에 대해 확정판결을 받기 위한 소송이 상당수지만, 이를 빼더라도 많다. 조선 초기에도 전체 소송이 한 해 1만건이 넘은 때가 많았다고 하니,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소송지국’이라고 할 만하다. 민사재판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착한 사람이 상대방도 자기 마음인 양 믿은 나머지 계약하면서 거짓말에 속고 손해 보는 경우다. 나쁜 사람일수록 자기 이익만 생각해 법적 문제를 꼼꼼히 검토했거나 교활한 수법을 부리게 마련이다. 옛날 원님이라면 법을 무시하고 착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면서 잘했다고 자부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랬다가는 직권남용죄로 고소당할 판이다. 사적 자치의 원칙을 제한하는 신의성실 원칙이나 권리남용금지 원칙을 적용해서 법감정과 재판의 결론을 일치시킬 수도 있으나, 여러 이유로 쉽지 않다.

2019년 민사사건 475만건 넘어

몇 년 전 시민단체에 강연을 갔는데 “판사들이 세상물정을 잘 모르거나 있는 사람의 편을 들어서, 착하고 억울한 사람이 많이 패소하지 않느냐”라고 따지는 사람이 있었다. 조금 당황했지만 “판사들이 평범한 사람의 삶과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권력과 부에 아부해서 치우치게 재판했다면 잘못이다. 그러나 법리상 어쩔 수 없이 억울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라는 취지로 대답했다. 민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권리능력을 주고, 누구나 합리적으로 거래를 한다고 가정한다. 시민은 중요한 계약을 하거나 재산권을 행사할 때 자기 이익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판사도 착하고 억울한 사람을 보호하지 못한다. 돈을 빌려주면서 상대방 말만 믿고 차용증을 받지 않았다가, 증거가 부족해 패소할 수 있다(믿은 탓). 고소를 취소한다고 해서 돈을 주면서 조건부 합의라는 사실을 적지 않으면, 나중에 낭패를 볼 수 있다(안 쓴 탓). 집주인이 내민 임대차 계약서를 자세히 읽지 않고 도장을 찍으면,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도 효력이 있다(안 읽어 본 탓).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민법은 “권리 위에서 잠자는 사람은 보호하지 않는다”라고 차갑게 말한다. 민사 재판관으로서 시민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판사도 법에 의해 재판권을 부여받았으므로, 자기 생각과 가치관은 어떻든 법의 이념과 정신을 따를 수밖에 없다. 바로 그것이 법치주의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냉정하고도 합리적인 민법과 민사재판제도가 엄청나게 경제 발전을 이룩한 자본주의를 법적으로 뒷받침했다. 하지만 시민 모두에게 풍족한 재화를 줄 것이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시기는 먼 미래로 미루어졌다. 교수의 짓궂은 질문에 흥부라고 말한 제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작동하는 민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공부만 하느라 세상물정을 익힐 시간이 없었으리라. 놀부라고 말하며 얼굴을 붉힌 제자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을 이기적으로 보는 것은 사적 경제생활에서일 뿐이라고. 더 넓은 사회적 관계와 더 깊은 마음속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한, 지금 여기에서 덕을 쌓고 실천해야 한다고.

<박형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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