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과학책방 갈다’ 공공시설처럼 지원을

조진석 책방이음 대표·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
2020.12.07

책방이음을 열고서 지향한 것은 교양서점이었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분야 책이 고루고루 꽂혀 있고 이 책을 읽는 독자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자연과학 분야에는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 <시간의 역사>를 쓴 스티븐 호킹, <풀하우스>로 진화를 설명한 스티븐 제이 굴드, <통섭>의 작가 에드워드 윌슨 등의 저자와 사이언스북스의 ‘사이언스 클래식’과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를 갖추었다. 천문학, 생물학, 지구과학 등 분야별로 세분화해서 중요한 책을 준비해 두었다.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과학책방 갈다의 내부 모습 / 조진석 제공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과학책방 갈다의 내부 모습 / 조진석 제공

그런데 과학책 독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신학기가 되면 <이기적 유전자>와 <코스모스>만 과제를 위해서 팔리곤 했다. <이기적 유전자> 바로 옆에 있는 <눈먼 시계공>도 <이타적 유전자>도, 한권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과학책 코너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과학책방 갈다’ 대표인 이명현씨 인터뷰를 보고서야 알았다. 과학책은 문학책의 10분의 1밖에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110명의 주주 참여로 출발

한국에는 과학책 저자도 많지 않다. 대부분의 한국 과학자는 소위 ‘랩실’이라 불리는 실험실에 있어야 하고, 실험의 결과를 통해서 국가 발전에 공헌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책을 펴낸다 해도, 대학교재를 써서 전공자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지 사회적 저변을 넓히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학자가 비전공자를 위한 도서를 쓴다면 과학자의 외도처럼 인식한 점도 대중과 과학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소식을 방송으로 전한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 같은 분들의 외도가 과학책방 갈다의 씨앗을 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현 대표는 방송을 들으면서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사람이 걷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다고. 이런 마음은 천문학을 전공하고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교 천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데까지 이어졌다.

이명현 대표는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 연구원,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으로 연구자의 길을 걸으면서 꾸준히 대중 강연과 과학책 저술 등으로 대중과 소통했다. 그러나 과학책은 2010년대가 되어서도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에서조차 자그마한 서가에 대학교재와 대중서 약간만 놓여 있을 정도였다. 전국 모든 서점에서 문학책을 볼 수 있는 데 반해 과학책 독자들은 책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있는 공간조차 없었다.

2018년 6월 과학책방 갈다가 문을 연 것은 과학책의 고전과 신간을 독자들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곳이 한국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었다. 과학책방 길다는 과학책 전문책방이 없는 서러움을 가슴 아프게 절감한 과학책 베스트셀러 작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다윈 3부작>의 저자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 공룡전문가 이정모 당시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김상욱 교수 등 110명이 주식회사 갈다의 주주로 참여해서 5억원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학책방 갈다의 다양한 과학 관련 프로그램 / 과학책방 갈다 홈페이지

과학책방 갈다의 다양한 과학 관련 프로그램 / 과학책방 갈다 홈페이지

인건비 충당하기도 힘들어

그다음 문제는 공간이었다. 월세를 내면서 과학책을 판다는 것은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모르는 과학자들이어도 불가능하게 보였다. 마침 이명현 대표 부모의 집이 비게 되었다. 유용한 용도로 쓰이길 바라는 부모의 기부로 공간문제가 해결됐다. 주주들의 출자금 일부로 전체를 리모델링해서 지하 공간은 15명 이상 북콘서트를 할 수 있도록 꾸미고, 1층은 국내 작가와 추천하는 과학책의 서가로, 2층은 작가의 방과 세미나실로 만들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책방이 단지 책만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과학도 책도 사람이 향유해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갈’릴레오와 ‘다’윈의 이름 앞글자에서 따와서 과학책방 ‘갈다’의 이름을 지었다.

그동안 여기에서는 이명현 대표의 <칼 세이건 코스모스 끝까지 읽기>(6회)와 전중환 교수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읽기>(6회)와 같은 전공자가 가이드하는 독서클럽과 물리학자 김상욱 저자와 예술가 유지원 저자의 <뉴턴의 아틀리에> 북토크와 김선지 작가의 <그림 속 천문학> 북토크가 열렸고, 종교와 코로나바이러스를 ‘갈다 이슈’로 토론하는 자리가 열렸다. 또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 저자와 함께하는 제주과학탐험을 떠나고 ‘페르세우스 유성우 특집’과 같은 기행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표를 포함해 4명의 인건비 1000만원을 충당하기에도 벅차다. 책으로 얻는 이익은 책 가격의 10% 남짓에 불과하고 프로그램을 통한 수익도 운영자에게 지급하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다. 그나마 올해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수행하는 ‘과학문화 전문인력 양성사업’ 등을 수임 운영해서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과학책을 내는 저자들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오프라인 거점으로 계획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돈이 되지 않으면서 품이 많이 드는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는 시간이다.

사실 이는 과학책방 갈다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간비를 지불하지 않는다 해도, 많은 서점이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젝트에 매달리고 공무사업 지원서 작성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집중하는 순간, 책방의 원래 목적인 커뮤니케이션 역할과 문화의 거점으로서의 정체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공공형 중고책방 책보고에는 매년 10억의 공공 자금이 투여되고 있다. 또 반공공형 중고책방 설계비로 내년 예산에 수십억원을 책정했다. 만약 중고책방만이 아니라 전문책방을 공공시설로 인식해서 기금 1억의 돈이 과학책방 갈다의 운영비로 매년 쓰일 수 있다면 과학책방 본연의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채 2년밖에 안 된 과학책방이지만, 홈페이지를 잠깐만 보아도 이전에 전혀 없거나 모여 있지 않던 과학책을 둘러싼 황홀경이 여기서 펼쳐지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서점의 공공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해봤으면 한다.

<조진석 책방이음 대표·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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