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아, 여기 강화도에서 책방이 되겠어?”

조진석 책방이음 대표·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
2020.11.23

“아, 여기서 책방이 되겠어?”

“여기 책 사볼 사람 없어.”

“여기 막걸릿집할 때, 월 200만원은 벌었어. 책방해서 200만원 벌겠어?”

강화도의 딸기책방을 두고 오간 말들입니다. 직접 가서 지켜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반나절 동안 책방에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은 하굣길 학생밖에 없었고, 찾아오는 손님은 두 시간에 한두명밖에 없었습니다. 중학생들은 책방에 관심이 없어 보였고, 방문객도 책을 한두권 사가고 말더군요. 대도시에 있는 서점도 살아남기 어려운데 어떻게 이런 곳에 책방을 내었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강화도에 위치한 딸기책방 내부 / 딸기책방 제공

강화도에 위치한 딸기책방 내부 / 딸기책방 제공

딸기책방 대표는 알튀세르 연구자였습니다. 사회적 지배 가치와 행위 양식에 무의식적으로 편입하도록 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작용이고, 언어와 대중매체가 주체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알튀세르죠. 연구자에서 출판 편집자로 전업해서 1995년부터 지금까지 주로 만드는 그림책과 만화책이 가장 독자층이 넓은 대중매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은 행보 아닌가 싶습니다.

출판계 정년은 40세?

한국 출판계는 편집자의 정년을 통상 40세로 잡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40세 이상의 편집자가 많지 않을 겁니다. 매년 베스트셀러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출판사가 매년 그 전해보다 수익을 더 창출하기 어렵습니다. 회사의 수익이 늘지 않으니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상대적 고임금자부터 회사를 나가야 하고, 그 자리는 신입의 저임금 편집노동자로 채워집니다.

또 편집 디자이너의 노동 시간은 노동자의 평균 노동 시간보다 현저히 길고, 근골격계질환 등 VDT증후군(장시간 컴퓨터 사용에 따른 부작용)의 높은 유병률 때문에 편집노동을 오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상 40세가 되면 퇴사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게 됩니다. 퇴사 후에도 대부분이 출판으로 다시금 생업을 이어가기 때문에, 1인 출판사가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딸기책방 대표도 2017년 퇴사하고 1인 출판사를 준비합니다. 사무실 겸 사람들을 편히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는데 마침 강화읍내 오래된 건물이 임대로 나와서 계약했습니다. 194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한때 막걸릿집이었다가 이제는 쓸모를 못 찾아 창고로 방치돼 있는 강화읍내의 어금버금한 공간 중 하나였습니다. 출판사 이름은 상큼한 딸기책방으로 지었습니다.

강화에서 출판사를 열려니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서울 혹은 파주에 있는데 강화도에 생뚱맞게 출판사라니?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예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요즘엔 예전과 달리 데이터를 서울 혹은 근교에 있는 인쇄소로 넘기면, 인쇄해서 바로 파주의 도서 창고로 가는 시스템입니다. 출판사가 지리산에 있건 제주도에 있건 상관없습니다. 책 주문이 들어오면 온라인으로 창고에 지시서를 보내면 바로 출고를 합니다.

딸기책방 출판사에서 출간한 동화책 / 딸기책방 제공

딸기책방 출판사에서 출간한 동화책 / 딸기책방 제공

출판사 문을 열고 편집 작업실로 꾸미고서 집에 있는 책을 참고용으로 한권 두권 갖다 놓기 시작했습니다. 신간 동향을 알아야 하기에 신간을 사서 비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책방에 즐겨 읽는 책이 들어오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꽂히고 그림책과 그래픽노블이 책장 한둘씩 제자리를 잡고 나니 어쩐지 책방처럼 보이더군요. 지인들이 이걸 보더니, 책방을 해보라네요. 추가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해서 별 고민 없이 2018년 출판사이자 서점인 딸기책방으로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서점으로 변환했을 때, 사업자등록상 취급품목에 도서만 추가하면 되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임대료는 몇십만원 안 되어서 걱정이 안 되고 여기서 편집과 디자인을 주로 해서 생활비는 벌고 있으니 인건비도 별도로 들 일이 없었습니다.

강화도에 자리 잡은 출판사 겸 서점

보통 사람들에게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딸기책방 대표는 어른·아이 불문하고 좋은 그림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제작해 보는 프로그램을 해보자 싶었습니다. 이 사업은 지금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서 시작했습니다. 20대부터 70대까지, 지역의 주민들이 12주 동안 그림책을 읽고 만들어보는 ‘그림책 작가 되기’ 프로젝트. 올해까지 매해 한 번씩 열어서 벌써 세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수업을 열면 매번 기발한 상상력이 녹아든 작품이 나옵니다. 수업에 참여한 한나씨는 얼마 전 <풀이 나다>를 출판까지 했습니다. 인천시, 인천시교육청,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공고가 뜰 때마다 지원서 쓴다고 밤을 지새우는 날이 요즘도 이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딸기책방은 이제 ‘좋은 그림책이 많은’ 서점으로 알려졌습니다. 현대미술을 전공한 고진이 작가처럼 강화 여행을 왔다가, 딸기책방에 책 사러 와서 작가의 할머니 이야기로 <섭순>을 출판한 작가도 생겼습니다. 강화도에 사는 문승연 작가는 마실 나들이하듯이 드나들면서 <코코코 초록 잎>, <깜박깜박 스르르르>, <노랑, 파랑, 빨강, 세상을 물들여요>, 벌써 세 권이나 딸기책방에서 출간했습니다.

지역에 출판사가 있다는 것, 책방을 같이 하다 보니 작가를 키우고 작품을 만드는 데도 수월합니다. 또 출판사에서 직접 책 사는 경험을 즐기는 분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올해는 인디뮤지션 곽푸른하늘, 씨없는수박 김대중, 하헌진, 천용성, 정우를 ‘딸기책방에서 노래 읽기’ 프로그램에 초대했습니다. 홍대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을 강화도의 딸기책방으로 왕창 부른 거죠. 홍대로 나가지 않아도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 “누구보다 뚜렷하고도/ 투명한 색을 가진 너/ 이토록 탐스러운 널 단숨에 낚아채/ 한입 물고파” 노래가 깔리고, 하, 하, 하. 대표님의 유쾌한 웃음으로 가득한 여기는 딸기책방이랍니다.

<조진석 책방이음 대표·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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