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가 앞서 본 세상

최영일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시사평론가
2020.11.16

007시리즈는 늘 시대를 앞서 예견했고,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 했으며 상상력을 통해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선도한 공이 있다.

숀 코너리 경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경’이라는 칭호를 싫어할지 모르겠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것은 맞지만 그는 끝까지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을 지지한 스코틀랜드인이었다. 코너리의 태생부터 성장기의 삶은 귀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던 노동자 계급의 아이.

숀 코너리 / AFP연합뉴스

숀 코너리 / AFP연합뉴스

007시리즈를 처음 영화화할 때 원작자 이언 플레밍은 그를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을 본 후에는 이후 소설 속 제임스 본드를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묘사할 정도로 만족해했다.

소년 시절 접했던 007시리즈는 꿈과 환상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유년기 공상과학 소설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통해 바다와 잠수함을 동경하고,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통해 지구촌 곳곳을 누비는 모험여행을 꿈꾸게 되었듯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네극장에서 처음 접한 007영화 10탄 <나를 사랑한 스파이>를 처음으로 만난 제임스 본드의 세계는 다른 무엇보다 첨단과학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 당시 미성년자 관람 불가 작품을 미성년자로 보았던 일탈은 이제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자백하기로 하자.

개봉하는 새로운 시리즈마다 핵잠수함,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요즘은 ‘드론’이라 부르는 원격조종 비행체,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레이저빔을 쏘는 첨단 위성무기, 스페이스셔틀과 우주정거장, 스타워즈 개념 등 지금도 북·미 간 ‘밀당’의 수단이 되고, 미·중 군사 갈등의 첨병으로 당시에는 냉전의 산물이었던 대량살상무기와 각종 무기류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각종 비밀기능이 숨겨진 첩보원의 장착물, 고급시계와 슈퍼카는 기본이었다.

하지만 시리즈마다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역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당 캐릭터의 등장이었다. 당시 서방과 공산권의 냉전을 확전시키려는 전쟁광 세력, 또 그러한 전쟁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려는 군산복합체가 다양한 모습으로 재창조되면서 등장했다. 그리고는 복잡한 스토리텔링 속에 장착된 게임전략을 보면서 흥미를 느끼게 되는, 성장기의 학습콘텐츠이기도 했다.

007시리즈는 늘 시대를 앞서 예견했고,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했으며 상상력을 통해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선도한 공이 있다.(이렇게나 긍정적인 평가의 이면에 그 이상 상당한 비판의 여지가 있음은 본 지면에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으련다.)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개발한 과학기술이 민간시장에 응용되고, 군수장비가 민수용으로 전환되며 다양한 신기술, 신제품이 산업을 일으킨 경우가 많기에 007은 ‘제임스 본트라다무스’의 역할을 톡톡히 해온 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 관점에서 본드는 거의 국고 탕진 중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파티와 파괴로 막대한 물량을 헤프게 날려 먹지 않던가? 또한 남의 나라에서 함부로 살상하고 대혼란을 일으키기 일쑤여서 외교적으로는 재앙 수준의 골칫거리이다. 명칭 ‘더블오세븐’은 살인면허의 일련번호이니 태생부터 오죽하겠나.

어쨌든 한 세기 가까이 지구촌 영웅 행세를 하며 영국 국고를 털어먹어 브렉시트까지 유발한 제임스 본드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사실 007의 미덕은 첨단기술, 첨단무기가 아니라 본드를 지원해주는 팀, 즉 M과 Q, 머니페니 등 클래식 휴민트를 지원해준 사람들의 신뢰와 휴머니즘에 기반을 뒀음을 잊어선 안 되겠다. 그래서 숀 코너리의 가는 길에 지난 시대의 회한을 싣게 되는 것이다.

<최영일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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