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를 사랑한 숀 코너리

박효재 산업부 기자
2020.11.16

영화 ‘007시리즈’의 초대 제임스 본드인 숀 코너리가 10월 31일(현지시간) 바하마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0세. 유족은 코너리가 말년에 치매를 앓았으며, 이날 잠자던 중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코너리는 섹시하면서도 유머 감각이 뛰어난 본드 캐릭터로 큰 인기를 누렸다. 액션 블록버스터 캐릭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크린 뒤에서는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을 비난하고 스코틀랜드 독립을 외치는 등 솔직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1969년 「007 두 번 산다」 촬영 현장에서 숀 코너리의 모습 / AP연합뉴스

1969년 「007 두 번 산다」 촬영 현장에서 숀 코너리의 모습 / AP연합뉴스

본드 역할을 연기하는 다니엘 크레이그는 “코너리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재치와 매력은 메가와트 수준으로, 그는 현대 블록버스터를 창조하는 데 일조했다”면서 “앞으로도 배우와 영화제작자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로저 무어 경의 유족은 트위터에 “로저는 항상 숀이 최고의 제임스 본드라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코너리의 이력은 독특하다. 1930년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동시대 다른 영국 배우들과 달리 정식 연기수업을 받지 않았다. 아홉 살 때부터 등굣길에 우유 배달을 했고, 13세에 학교를 그만뒀다. 16세에 해군에 입대했다가 3년 만에 전역한 뒤에는 트럭 운전사와 안전요원, 미술학교 모델로 돈을 벌었다. 국제 보디빌더 대회에서 스코틀랜드 대표로 출전한 경력도 있다. 이를 계기로 영화제작자들 눈에 띄어 몇몇 영화에 출연했지만 어색한 연기로 단역을 전전하는 데 그쳤다. 그러던 중 1962년 <살인번호>를 시작으로 1983년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 이르기까지 총 7편의 ‘007시리즈’에 출연하며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코너리는 007시리즈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미지가 액션 배우로 한정되는 것을 꺼려해 수차례 본드 배역을 거절했고, 다양한 장르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지평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그중에서도 컬트 SF영화 <자도즈>(1974년)가 가장 유명한 사례로 꼽힌다. 코너리는 이 작품 연기 도중 얼굴에 상처를 입고, 이를 가리기 위해 수염을 길렀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그의 상징이 됐다.

인간적으로는 매우 솔직했다. 코너리는 2006년 한 인터뷰에서 할리우드가 상업성에만 치우쳐 창의성 넘치는 배우와 감독들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앞서 2003년 할리우드 영화 <젠틀맨 리그>에 출연했다가 감독과 심한 갈등을 겪고는 더 이상 연기를 하는 것에 환멸을 느낀다며 2006년 공식 은퇴 선언을 했다.

스코틀랜드인으로서 자부심은 대단했다. 코너리는 은퇴할 때까지 말투에서 스코틀랜드 억양이 묻어났는데, 버리지 못한 게 아니라 일부러 버리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이 더 많다. 그는 평생 스코틀랜드 독립을 외쳤다.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추진단체인 ‘예스 스코틀랜드’에 기부했으며, 영국 국내 여러 공식 석상에서 스코틀랜드 전통복장인 킬트를 입고 참석했다. 코너리 별세 소식에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비통하다. 우리는 오늘 가장 사랑하는 아들 중 하나를 애도한다”고 말했다.

<박효재 산업부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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