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의 클레오파트라 역 논란

박효재 산업부 기자
2020.10.26

할리우드 액션영화 <원더우먼>의 주연으로 유명해진 이스라엘 출신 할리우드 배우 갤 가돗이 고대 이집트 왕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기로 하면서 아랍권이 반발하고 있다. 오랜 영토분쟁으로 적대관계였던 국가 출신 배우가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이유에서다. 클레오파트라의 혈통,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을 옹호했던 가돗의 과거 발언까지 언급되는 등 갈수록 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1963년 개봉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한 장면

1963년 개봉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한 장면

2017년 개봉한 갤 가돗 주연의 영화 <원더우먼>의 한 장면

2017년 개봉한 갤 가돗 주연의 영화 <원더우먼>의 한 장면

가돗은 10월 11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에 <클레오파트라> 리메이크에서 주연을 맡게 됐다고 밝혔다. 가돗은 “여성의 눈을 통해 클레오파트라 이야기를 전하게 됐다”면서 “내가 오랫동안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썼다.

이번 영화는 1963년 당대 톱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한 고전 영화를 각색한 것이다. 영화 제작이 확정된다면 가돗이 그동안 다져온 할리우드 톱스타로서의 입지, 강한 여성 캐릭터는 더욱 단단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랍권 네티즌들은 부적절한 캐스팅이라며 반대한다. 한 네티즌은 트위터에 “갤 가돗 당신은 수치스럽다”며 “당신의 나라는 아랍 영토를 빼앗고 당신은 아랍인들의 배역을 빼앗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네티즌은 북아프리카 혈통 배우의 캐스팅을 제안하면서 “백인, 이스라엘 배우들에게 파라오와 아랍인 배역을 맡기는 것에 신물이 난다”고도 했다.

제작진은 클레오파트라가 마케도니아 그리스계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후손이었다며 그리스 혈통인 가돗을 캐스팅한 것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가가 철저한 근친혼을 유지했던 만큼 적어도 어색한 캐스팅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클레오파트라의 어머니가 누군지 알려지지 않아 정확한 혈통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페르시아나 시리아 조상을 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랍권은 가돗이 이스라엘의 반인권적인 군사공격을 옹호했던 과거 발언도 문제 삼고 있다. 가돗은 2014년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백린탄 폭격했을 당시,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가 어린이와 여성을 앞세워 테러를 일삼고 있다며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백린탄은 살점을 녹이는 대량살상무기로 이스라엘군 폭격에 2000명 넘게 사망했고, 사망자 중에는 어린아이 500여명도 있다.

이번 논란으로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 사이에 뿌리 깊은 적대감만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집트는 아랍권 국가 중에서 최초로 이스라엘과 수교한 나라다. 이스라엘은 지난 9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과 평화 협정을 맺기도 했다. 국가 정상들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지만, 아랍권 지역 국민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새다.

<클레오파트라> 리메이크가 아랍 국가들에서 상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2017년 <원더우먼> 개봉 당시에도 아랍권 국가들에서는 가돗이 이스라엘 출신이라는 점, 이스라엘 가자지구 폭격을 옹호한 것이 논란이 됐다. 결국 요르단과 카타르 등에서 상영이 금지됐다.

<박효재 산업부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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