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피버-미지의 해양 괴물 생명체와 팬데믹 공포

정용인 기자
2020.05.25

제목 씨 피버(Sea Fever)

제작국 아일랜드, 스웨덴, 벨기에, 영국

제작연도 2019

감독 니사 하디만

출연 헤르미온느 코필드, 코니 닐슨, 아르달란 에스마일리, 잭 히키 외

상영시간 93분

장르 SF, 공포

개봉 2020년 5월 13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 찬란

제공/배급 ㈜팝엔터테인먼트

㈜팝엔터테인먼트

㈜팝엔터테인먼트

먼바다에 나가본 사람은 안다. 바다는 무섭다. 몇 년 전 기자는 대한해협에서 그 공포를 느꼈다. 말 그대로 검은 바다. 하늘엔 휘영청 달이 떠 있었고, 같이 배를 탄 관광객들은 무슨 힘이 남아도는지 밤새 술판에다 화투판이었지만, 갑판에서 본 검은 밤바다는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무서운 괴물 같았다. 여기서 배가 가라앉는다면, 과연 시체라도 찾을 수 있을까. 그 공포는 세월호 침몰 사건이 모든 국민의 가슴에 남긴 트라우마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시본은 박사과정 학생이다. 심해생물의 패턴을 연구한다.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그 는 아일랜드의 트롤어선에 승선한다. 북유럽 뱃사람들 사이에서는 붉은 머리 여자가 배에 타면 재수가 없다는 미신이 있나 보다. 좀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욕심에 선장은 항해가 금지된 구역으로 배를 몬다. 그리고 쿵. 배에 뭐가 부딪쳤다. 선장은 원래 해양생물을 연구하고 스킨스쿠버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시본에게 그게 뭔지 확인하게 한다. 확인한 것은 스스로 빛을 내는 미지의 생물체였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촉수를 끊임없이 올려보내는. 시본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거대 오징어 종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 심해오징어에 걸려 배는 움직이지 않는다. 해양구조대에 무선을 치려고 하지만 무전기도 고장 났다. 그리고 저 멀리 정박한 배. 선장과 시본 일행은 고무보트를 타고 그 배에 건너가 도움을 청해보려고 하는데 응답이 없다. 배 안으로 들어간 선장 일행은 그 배의 승무원들이 눈이 사라진 채로 끔찍하게 죽은 것을 발견한다. 그건 시본이 탄 트롤어선에도 닥칠 운명일까.

트롤어선에 부딪친 미지의 해양생물체

지난해 제작된 유럽의 독립 SF공포물이지만, 이번 코로나19 국면만 아니었으면 올해 4월 정도에 북미를 비롯해 인터내셔널 개봉이 예정되어 있던 영화다. 코로나19가 모든 걸 바꿨다. 이 영화가 묘사하는 공포의 성격조차. 필사적으로 돌아가려는 선원들에게 해양생물 패턴을 연구하는 시본은 자신들도 감염되었을지 모르니 배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선원들은 그의 경고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갈등의 끝은 몰락, 즉 죽음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영화 리뷰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 맥락에서 읽혔을 괴물영화가 코로나19 국면과 접맥되면서 팬데믹 공포물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괴물이라고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Jaws)>(1975) 이래 만들어져 온 해양공포물이 점점 더 스펙터클을 추구한 반면 이 영화 속 ‘괴물’은 물속에서 발광하는 굵은 오징어 다리다. 그것도 실리콘 로봇 특수효과가 아니라 CG로 만들어진 발광하는 촉수 몇 가닥 정도. 이런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강조되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구조, 서로가 서로를 못 믿게 되는 상황 및 좌절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다. 이는 <괴물(the thing)>(1951, 존 카펜더가 리메이크한 1982년 작이 원작 소설의 플롯라인에 더 가깝다)이 채택한 전략이다. 어쨌든 <씨 피버>에서 딸을 잃고 어렵게 살아가는 선장 부부 이야기나 모자가 함께 선원으로 배를 타게 된 사연과 같은 서브플롯이 애잔하다.

저예산 독립공포영화가 취한 전략

영화 중반, 선원들 등쌀에 불을 켤 수 없었던 시반은 밖으로 나와 책을 본다. 그를 따라온 선주이자 선장의 부인인 프레야는 그에게 바다 발광 현상을 보여준다. 실제 북대서양이나 인도양 등에서 자주 목격하는 바다 발광 현상은 단세포 조류 또는 ‘야광충’이라 불리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화는 선원들 사이에 내려오는 전설을 소개한다. ‘연인 오이신의 죽음에 슬퍼한 니브는 스스로 몸을 던져 바다에 투신하는데, 그는 불사신이 되어 바다를 밝게 비추었다는….’ 빛나는 바다는 바닷물 속에서 하늘거리는 니브의 머리카락이다. 그들이 탄 배의 이름 니브킨 오이르호는 이 전설에서 따온 것이다. 이 서브플롯은 영화의 엔딩에서 되살아나지만 그건 앞으로 영화를 볼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겠다.

특별한 클라이맥스 없이 영화는 흘러가지만 꽤 잘 만들어진 영화다. 공포라고 다 같은 공포는 아니다. 서구권에서는 이런 경우의 공포를 ‘eerie’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한다. 굳이 번역하면 기분 나쁜, 내지는 서늘한 공포쯤이라고 해야 할까. 시사회는 온라인 스크리너를 제공받아 PC로 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극장 개봉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전에 리뷰했던 <주디>같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조차 IPTV로 직행했다. 비록 코로나19 국면이지만 좋은 작품을 볼 기회는 쉽지 않다. 기회가 되면 보시길.

‘오징어가 사람 입에 임신’ 해외토픽 논란

영화에서 선원들을 공포에 떨게 한 것은 심해 생물의 유충이다. 심해 해양생물패턴을 연구하던 시본의 가정에 따르면 이들은 고래인 줄 알고 살아남기 위해 유충을 배에 발사했고, 물속을 유영하던 유충은 인간 점막을 뚫고 들어가 가장 약한 점막-눈을 통해 튀어나온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생충이겠지만 해양생물의 입장에서는 유전자에 각인이 되어 있는 번식을 위한 본능적인 생존술이었고.

경향자료

경향자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거대 오징어’의 유충이라는 표현에서 2012년 취재했던 사례가 떠오른다. ‘오징어가 사람 입에 임신’이라는 영국 <데일리메일>발 해외토픽이 논란이 되었다. 사람 입에 오징어가 새끼를 부화시킨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것이 가능하다면 무시무시한 공포스토리의 소재가 된다. 며칠 뒤 더 화제가 된 건 알고 보니 이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2008년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보고다. 미국 국립생명기술정보센터가 발행하는 잡지에 실린 논문을 보고 쓴 기사였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임신’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논문 원문을 찾아봤고, 해당 논문을 쓴 교수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임신은 역시 오해였다. 그는 오징어를 씹다 입에 통증을 느낀 환자를 검사해봤다. 볼 안쪽에 뭐가 잔뜩 붙었는데 오징어기생충(아니사키스)인 줄 알고 살펴보았더니 오징어 정충(精蟲)이었다는 것이다(사진). “새끼 오징어를 입안에 임신했다”는 이야기는 논문에 나오지도 않은 이야기를 <데일리메일> 측에서 과장한 게 문제였다. 2012년에 사건의 전말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아직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입안 오징어 임신’ 이야기가 나온다. 유튜브 같은 데 올라왔다고 다 사실은 아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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