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플랫폼-최첨단 격리시설에서 벌어지는 생존 스릴러

최원균 무비가이더
2020.05.18

가까운 미래, 중년의 남자 고렝(이반 마사구에 분)은 최첨단 설비로 관리되는 일명 ‘수직 자기관리 센터’라는 감금시설에 스스로 입소한다. 격리 통제되는 환경을 핑계 삼아 오랫동안 실천하지 못했던 금연을 실천하고 읽지 못했던 소설도 읽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서.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같은 방에 배정된 광기 충만한 노인 트리마가시(조리온 에귈레오 분)는 위협적인 자기 고백을 늘어놓고 이를 시작으로 악몽 같은 일상이 이어진다. 결국 고렝은 세상을 바꾸고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위해 결정적 선택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주)더쿱

(주)더쿱

<더 플랫폼>은 무대의 설정부터 노골적인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수직으로 길게 연결된 의문의 감금장소. 각각의 방에는 층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새겨져 있고 숫자가 작을수록 상부층, 숫자가 클수록 하부층이 된다. 방마다 2명의 사람이 수감돼 있지만, 이들의 관계는 처지에 따라 단순한 인간적 유대를 훌쩍 뛰어넘는 기괴한 형태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들의 행복과 안위를 결정짓는 유일한 대상이자 목적은 오로지 식량이다. 하루에 한 번 관리소가 있는 0층에서 출발해 층마다 일정한 시간을 머무르며 아래로 향하는 플랫폼에 실린 음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고 오염되어 간다. 그만큼 낮은 층에 머무를수록 생존 확률은 현저히 줄어든다. 결국 굶주린 사람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본성에 충실한 끔찍하고 극단적인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징과 풍자로 가득한 허구의 세계

한 달에 한 번씩 새롭게 리셋되는 수감 층의 재배치는 하부층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지만 상부층 사람들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극한의 공포가 된다. 이렇게 계급 간의 단절과 같은 계층의 사람끼리 반목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환경은 사람들을 극단적인 한계로 몰고 가고 결국 변화시킨다.

수감자들은 입소 시 스스로 선택한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입소할 수 있다. 이는 감금 생활에 도움이 되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실상은 각각의 인물들의 본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이기도 하다. 주인공 고렝이 선택한 소설책 <돈키호테>는 그가 얼마나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인물인지를 보여준다. 셀메이트 트리마가시가 선택해 가지고 온 물건 ‘사무라이 플러스’는 기분과 판단에 따라서는 폭력도 마다치 않는 그의 호전적인 성격을 극명하게 대변한다.

한정된 공간과 소수의 등장인물이 동반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은 수시로 변하는 상황과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충분히 극복된다. 여기에 적재적소에 한 번씩 등장하는 차가운 폭력은 관객들의 긴장감을 바짝 조이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는데, 이런 냉정하고 잔인한 묘사는 영화가 던지는 다양한 질문과 철학적 사색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게 만든다.

<더 플랫폼>의 가장 큰 미덕은 배경이 되는 SF적 시공간의 설정 위에 촘촘히 들어찬 풍자와 현실 비판 그리고 이를 통해 분명하게 제시하는 성찰의 여지다. 그리고 이는 기본적으로 독특한 세계관을 창조하고 복잡하지만 공감 가는 이야기와 대사를 쌓아올린 두 각본가의 업적이다.

시의적절한 사회 고발 스릴러

시나리오는 멕시코에서 2인극 드라마로 명성을 얻은 데이비드 데솔라와 애니메이션 작가로 일한 페드로 리베로의 공동작업으로 탄생했다. 처음에는 무대를 위한 희곡을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무대공연은 없었고, 각본은 제작자의 중계로 가더 가츠테루-우루샤 감독에게 전해졌다. 각본이 가진 가능성에 공감한 가더 감독은 바로 영화화를 위해 두 원작자와 의기투합했지만 2년여에 걸친 각색 작업은 고문과도 같았다고 회상한다.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 결말은 한없이 이상적이지만 그만큼 근본적으로 철학적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언택트(Untact) 사회화에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화였다는 평가에 감독은 크게 공감하지 않는다.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진 문제였고, 앞으로도 쉽게 해결되기 힘든 문제이므로 이 영화는 어느 시대에서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더 플랫폼>은 우리나라와 홍콩, 대만을 제외한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지난 3월 2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작품이기도 하다. 협소한 무대와 정치적으로 너무나 노골적인 주제 등 자칫 단점이 될 수도 있었을 요소들까지 영화적으로 현명하게 활용해 장르적 쾌감까지 충실히 확보하고 있는 이 영화는 올해 놓치지 말아야 할 강렬하고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가 분명하다.

여기는 어디? 당신은 누구?

무대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영화가 있다. 물론 이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말이다.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저예산 영화들이 선호하는 인기 있는 소재로 꾸준히 만들어지다 보니 서브 장르로 구분이 가능할 정도다.

에스와이코마드

에스와이코마드

1997년 캐나다의 빈센조 나탈리 감독이 연출한 <큐브>는 이런 소위 ‘밀실 스릴러’의 대표적 작품이다. 직육면체의 방에서 눈을 뜬 사람들은 벽마다 존재하는 출구 중 하나를 선택해 나아가야만 한다. 출구마다 숫자로 된 힌트를 주지만 잘못 선택하면 끔찍한 부비트랩으로 죽임을 당하니 이들의 선택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스페인 영화 <페르마의 밀실>(2007)은 방안에 모여 문제를 풀어야 하는 네 명의 수학자가 등장한다. 답을 찾지 못하면 사방의 벽이 조금씩 조여 오므로 살기 위해선 필사적으로 정답을 찾아야 한다.

<더 킬링 룸>(2009)은 심리학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 밀실에 감금된 사람들이 뜻밖의 상황에 처하고 살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상황을 긴박하게 그려낸다.

영국의 스튜어트 하젤딘 감독이 연출한 <이그잼>(2009)은 유명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입사시험을 치르러 모인 취업준비생들이 주인공이다. 특별하게 통제되는 시험장 안에 모인 이들은 결국 취업뿐 아니라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만 한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서클>(2015)은 거대한 원형 안에서 정신을 차린 일군의 사람들이 2분마다 죽을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주장과 선택의 과정을 통해 현대사회의 이면을 통렬히 고발한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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