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노동

2020.05.04

혹시 ‘임계장’이란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편집실에서]고령자 노동

저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38년간 공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2016년 퇴직해 4년째 시급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조정진씨(63)가 쓴 <임계장 이야기>란 책을 읽고 나서입니다. ‘임계장’이 ‘임 부장’이나 ‘임 차장’ 같은 직함이 아닌, 바로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준말이라는 것을. 바로 정년퇴직 후 계약직으로 일하는 고령층 비정규직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실제 조씨도 고속버스 배차원으로 일하면서 ‘임계장님’이란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답니다.

책에 따르면 수많은 60세 이상 고령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시급을 받고 매연과 미세먼지가 가득한 열악한 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파트경비원·빌딩관리원·버스배차원 등 청년 구직자들이 꺼리는 일터에서 힘겨운 노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을 중에서도 을’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항의라도 하면 곧바로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임계장을 ‘고·다·자’라 부른다고도 합니다. 고용자 입장에서 보면 ‘고르기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는 의미입니다. 일할 사람은 언제든 채용할 만큼 널려 있고, 마음에 안 들면 언제라도 쉽게 해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쓴웃음이 나오지만 이게 바로 2020년 현재 고령 노동자의 현실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60세에 정년을 맞아 은퇴하더라도 일을 놓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녀가 결혼하지 않고 취업 준비를 하거나, 대학원이라도 다니는 경우엔 부담이 더욱 커집니다. 사실 고령자 노동의 시대는 이미 본격화됐습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2020년 2월 현재 한국의 60세 이상 인구 가운데 약 470만 명이 일터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취업자 수 2680만 명 중에 약 17%를 차지합니다. 바로 이번 호에서 고령자 노동에 대해 한번 살펴보기로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령자 노동이 일반적 현상이 되고 있는데도 이들을 뒷받침할 고용복지를 위한 지원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은 근로환경이 열악해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일하다 다쳐도 보상은커녕 아예 실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업급여와 같은 보호장치에서도 비켜나 있습니다. 노동자로서 기본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겁니다.

<임계장 이야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구의회 의원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여러분은 고령자가 일하는 모범 사례이십니다. 집에서 따분하게 노는 것보다 일을 하시니 건강에도 좋고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기대에 부풀었던 가슴이 서늘해졌다.”(126~127쪽)

그렇습니다. 용돈을 벌기 위해, 손주들 과잣값 마련하기 위해 이들이 일터로 나온 게 아닙니다. 생계유지 때문입니다. 정년을 맞아 직장을 떠나더라도 다른 일을 하지 않고서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젠 고령자 노동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저 역시 몇 년 뒤 정년을 맞은 후에도 다른 일거리를 찾아 뛰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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