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시장 골목-먹고 입고 마시고 즐기는 풍요로운 시장

김천 자유기고가
2020.03.23

영등포시장은 서울 서남부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곳이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없는 것이 없었으며, 문 닫힐 틈 없이 성시를 이루었다. 그 주변으로 오래된 골목들이 펼쳐졌는데 영등포시장만큼 오래된 기계산업 관련 공장과 상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골목 내시경]영등포시장 골목-먹고 입고 마시고 즐기는 풍요로운 시장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에서 나와 골목으로 들어서면 문구와 주방용품, 식자재와 관련한 크고 작은 도매상들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이 골목길은 한눈에 봐도 오랜 역사가 묻어 있다. 세월의 때가 두껍게 쌓여 있는 골목 안 상점들은 대부분 낡은 기와집이거나 그와 비슷한 꼴이다. 간혹 침과 뜸을 뜨는 한의원도 있고 그 앞을 지나칠 때 나는 짙고 달콤한 탕약의 냄새도 요즘 흔치 않은 골목길의 정경이다.

영등포시장 골목에는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먹고, 입고, 마시고, 즐길 거리가 골목 안 곳곳에서 눈에 띈다. 고깃집과 횟집 같은 평범한 식당 사이로 흑염소탕 전문점도 보인다. 으슥한 길목에 여관촌 골목도 숨어 있고 아주 오래전에 보고 잊었던 ‘카바레’ 간판도 있다. 노느라 바쁜 사람들이 많은 듯 콜라텍과 노래방, 안마시술소와 피부관리점 등 야릇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게들도 골목 곳곳에 남아 있다. 생산재부터 소비재와 향락업소까지 업종의 다양성은 이 동네 골목만 한 곳을 보지 못했다.

일대의 모든 골목은 영등포시장으로 연결된다. 시장은 아직도 거대하게 땅을 차지한 채 버티고 있다. 도시가 멸망하고 문명이 흔적 없이 사라져도 시장은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어쨌든 모여들어 무엇인가를 사고팔아야 하니까. 재생사업의 산물로 가게를 정비하고 비 가림 천장도 설치해 신식 재래시장이 됐다. 그런데 영등포시장이 텅 비었다. 완벽한 방역으로 청정시장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지만 행인의 발길은 그쳤고, 상인은 망연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쌓아놓은 물건들도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다.

식당·여관·향락업소·철공소 즐비

지금이야 코로나19 사태라는 특별난 사정이 있지만 전통시장의 쇠락은 오래전부터 진행된 일이다. “경기가 좋았던 적은 언제였느냐?”고 묻자 상인은 “글쎄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경제가 위기라는 비명이 연례행사로 거듭됐고, 진짜 절벽을 지나도 왔지만 아직도 경기가 좋아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몇몇 상인들은 경기를 묻자 고개를 돌리며 대답을 피한다.

예전엔 멀리 경기 김포·강화에서까지 장을 보러 다녔다는 이야기를 방증하듯 영등포시장은 장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물건의 구색을 갖추었다. 구획마다 냄비며 그릇 따위를 비롯해 무·배추 등 반찬거리, 과일과 과자, 옷과 천 등이 바리바리 쌓여 있다. 좀 더 나아가면 인근 식당과 소매업자를 상대하는 고깃간과 식재료상들이 들어섰다. 무수히 많은 닭발이 쌓여 있는 닭집에서 장을 보는 포장마차 주인은 “사람들이 당최 나다니질 않는다”고 푸념한다. 익숙하게 고기를 토막 내 저울에 달던 가게 주인은 “장 보러 오는 사람들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이야기했다.

공장 주변을 에워싸고 주거용 오피스텔 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공장 주변을 에워싸고 주거용 오피스텔 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영등포시장의 명물인 국밥집들도 한산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큰 무쇠솥에선 국물이 팔팔 끓고, 고사음식을 파는 곳에서는 돼지머리 모형이 웃음을 머금고 있다. 돼지는 웃을 때와 아닐 때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게 앞에 의자를 내놓고 가뭄에 콩 나듯 지나다니는 행인을 구경하던 노파는 불쑥 들어서는 손님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왜 왔어?” 원망하듯 퉁명스러운 인사치레에 손님은 “뜨끈한 국물에 돼지머리 안주로 소주 한잔해야죠”라며 구구절절 대꾸했다. 그들은 아무래도 오랜 단골인 듯싶고, 비 오는 날 일찍 마감한 하루를 소주 한잔으로 접으려는 것 같다.

영등포시장 일대는 인력사무소들이 많았다. 문래동·신길동 일대의 새벽 인력시장이 남구로역 일대로 옮겨간 후, 일용직 노동자들은 시장 근처의 인력사무소에서 일거리를 찾는다. 새벽에 소개소에 들러 일을 잡고 공치는 날은 시장에 들러 국밥 한 그릇에 또 살아갈 용기를 얻길 거듭하며 가혹하고 힘겨운 시절을 버텨내는 것이다. 그런 국밥집들도 오늘은 힘겹단다. 팔팔 끓는 돼지국물도 훌훌 마셔줄 사람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손님 10분의 1로 줄었다”

골목에서 산업과 공장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장비와 물품들을 구할 수 있다.

골목에서 산업과 공장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장비와 물품들을 구할 수 있다.

시장 한 블록은 온통 안전화와 작업복을 파는 상점들이 자릴 잡았다. 투박하고 단조롭던 안전장비들도 화려하고 다양한 기능을 갖추었다. 안전화가 얼마나 곱고 다양한지는 영등포시장에 와서 보면 놀랄 것이다. 안전장구도 안전에 패션을 더해야 잘 팔린다.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영등포시장은 일종의 모천 같은 곳이라 어딜 가도 다시 돌아와 유역을 맴돌며 일을 찾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터전이다. 노동에 지친 이들은 운수 좋은 날, 또 속이 상한 날 그리고 아무 이유 없어도 그 일 없음을 기념하면서 돼지껍질에 소주를 씹는다. 그렇게 사는 이들을 국밥집 주인 할매는 알아봐 주고 어깨를 도닥거려주고 국물에 넉넉히 고기토막이라도 한 줌 더 넣어주면서 지지한다. 그것이 영등포의 인심이다.

시장 밖 풍경은 을씨년스럽다. 영등포 공구상가까지 이어진 골목길엔 전기 기계 공구와 모터류 그리고 부속 장비를 파는 공장과 상점들이 줄을 잇는다. 일반 상점가와 달리 이곳엔 밤늦게까지 문을 연 가게들이 많았다. 가게 주인은 “손님들이 다 오랜 거래처들이다. 필요할 때 오는데 그러니 늦게까지 문을 열고 전화가 오면 기다려주고 그런다”는 것이다. 가까이는 문래동과 양평동 일대에서, 멀리는 구로동 인근, 더 멀리는 경기 시화 안산공단 그리고 아주 멀리는 평택 등 경기 남부지역의 공장들도 모두 이곳에서 필요한 기계와 장비들을 구해간다.

공장을 지키는 장인들은 대부분 40년 이상 동업종 종사자들이다.

공장을 지키는 장인들은 대부분 40년 이상 동업종 종사자들이다.

이것저것 묻는 말에 성가셔하기보다 비 맞는다며 걱정하던 모터공장 안주인은 “이 일 시작한 지 40년, 여기 자리 잡은 지 벌써 30년은 된 것 같다”고 했다. 골목은 느리게 변했다고 한다. 골목 사람들은 전부 자기 일로 벌어먹고 살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조금씩 달라졌단다. 땅값이 한참 들썩이다가 재개발이 취소된 후 잠잠해지나 싶었더니 나이 들어서 떠나고, 일 없어서 떠나고, 집세 올라 밀려나면서 골목 풍경도 달라졌다. “저기도 공장 있던 곳이다”라고 가리키는 장소엔 높은 주거용 오피스텔 건물이 들어섰다. 공장 일색이던 일대가 군데군데 주거용 원룸빌딩이 들어서고 있었다. 벌써 사람이 들어선 곳도 있고 한참 건물을 올리는 곳도 여럿 보인다.

공장 안은 어둡고 공작기계와 거대한 모터가 가득 쌓여 있다. 비를 막으려고 쳐둔 비닐 사이로 촉수 낮은 백열전등 빛이 번지고 있다. 우울한 풍경이지만 작업복을 입고 장비를 정리하는 안 사장의 얼굴은 환하며 평온해 보인다. “여길 찾는 사람들은 모두 급하다고 온다. 고장이 정해져서 계획대로 닥치는 일이 아니니 정말 급해서 찾아올 것이다”라고 말한다. 급한 사람들 뒤치다꺼리를 하다보니 세월이 갔단다. 남은 건 잘 커줘서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두 자녀와 집 한 칸, 그리고 공장 한 채. “우리는 그래도 내 공장이라서 밀려날 걱정은 없다. 남편이 평생 고생해서 이룬 것이라 건강할 때까지 버틸 셈이다”라고 했다. 자식과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더 환해지는 얼굴을 보면 노동의 고단함을 이기는 가족의 힘을 엿볼 수 있다.

영등포시장은 과거 서울 서남부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었다.

영등포시장은 과거 서울 서남부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었다.

이곳 공장들은 주로 공장용 기계 장비들을 깎아 만들고 보수하는 일을 한다. 을지로 철공소보다는 규모가 크고 전문적이며 문래동 쇳공장들과도 다른 모습이다. 쇠를 깎는 선반장비들도 을지로의 기계보다 커 보인다. 비 오는 오후에도 기계는 연신 비명을 질러대면서 쇠를 깎아대고 있었다. 장비를 다루다가 지치면 처마에 서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다시 공장으로 들어서는 나이든 기능인들의 모습을 보면 평생 생업의 의미와 무게를 알게 된다. 쇠를 다루는 사람들의 표정은 묵직하다.

영등포시장 골목의 특색 있는 모습은 아직도 남아 있는 1990년대식 간판들이다. 아마도 그 이전의 간판들은 양철판에 붓으로 그린 것이거나 아크릴 간판이었을 것이나 1990년대 가로정비 사업의 흔적으로 일관된 서체의 간판들이 골목을 점령했다. 푸른 바탕에 디나루·세나루·고딕체 등 아주 오랜 서체들은 빛이 바래고 떨어진 곳도 자주 보인다. 사람들은 간판에 신경도 쓰지 않고 그 아래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그라인더로 쇠를 갈던 가게 주인은 “간판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적고, 이 바닥에서는 다 물어물어 소개로 찾아온다”고 했다. 다들 간판보다 더 오랫동안 일을 해왔던 터라 어디 쓰는 어떤 장비 하고 물으면 옆 골목 몇 번째 집 안경 쓴 사장을 찾으라는 식으로 답이 나왔다.

아파트 주민은 백화점과 쇼핑몰로

안산에서 온 거래처 사장을 접대하느라 케이블 가게 사장이 전화를 하자 쟁반에 커피를 담은 다방 종업원이 비를 맞으며 찾아온다. 사장 얼굴을 보고 묻지도 않고 커피를 타서 내놓는다. 적어도 이 가게에서만 수천 잔의 커피를 탄 솜씨다. “여기선 다 안다. 비밀이 없다. 가게 빚이 얼마고 그달 적자인지 잘됐는지를 훤히 안다”는 것이 다방 종업원의 이야기다. 그이도 이 골목에서만 10년 넘게 오갔단다. 골목에선 모든 것이 익숙하다. 오가는 이들도 다루는 물건도 심지어는 도둑고양이조차 서로를 알아보고 무심히 지나친다. 그 무심하게 안심하는 모습들이 영등포시장 골목의 정서다.

영등포 일대 도림동·신길동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영등포시장 골목길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 변화는 느리고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됐다. 골목에서 살던 이들이 나이를 먹는 속도만큼, 생업의 성쇠만큼 흐릿하지만 진행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영등포시장을 찾던 이들은 나이를 먹었다. 젊은 세대는 지하상가 쪽을 더 선호하고 아파트 주민들은 백화점과 인근의 쇼핑몰을 찾는다. 빛깔 고운 물건을 찾게 되는 일이야 당연하지만, 영등포 일대에는 더 요상하고 야릇한 빛깔의 골목들도 여럿 있다. 역전과 백화점 뒤편에서 커튼으로도 가리지 못하는 욕정의 홍등가 골목도 있고, 낡아 쓰러지는 쪽방촌 골목도 공존한다.

어려운 때가 닥쳤다. 그래도 때때로 고난을 겪지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영등포시장 골목 사람들처럼 역경은 이겨낼 것이다. 세상의 전진을 이끄는 큰길 위, 작은 돌멩이 하나 얕은 물웅덩이가 길을 막지 못하듯이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통은 지나칠 것이고, 세상은 묵묵히 제 일을 하며 평온해질 것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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