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실험적 기법으로 완성한 1인칭 전쟁 서사극

최원균 무비가이더
2020.02.24

제목 1917

제작연도 2019

제작국 영국, 미국

러닝타임 119분

장르 전쟁, 드라마

감독 샘 멘데스

출연 조지 맥케이, 딘 찰스 채프먼 외

개봉 2020년 2월 19일

등급 15세 관람가

(주)스마일이엔티

(주)스마일이엔티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어느 날, 들판 한쪽에서 숨을 돌리고 있던 영국군 8대대 소속의 스코필드(조지 맥케이 분)와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 분)는 지휘관의 다급한 호출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독일군의 계략에 넘어가 몰살 직전에 몰린 2대대에 당장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라는 임무가 떨어진다. 친형이 2대대에 속해 있어 마음이 조급한 블레이크는 스코필드를 재촉하고 제대로 마음의 준비조차 갖추지 못한 채 두 사람은 길을 나선다. 이미 초토화되어 부패한 시체가 나뒹구는 대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덫이 되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독일군 공격에 대한 두려움은 두 젊은 병사의 순수한 영혼을 조금씩 옥죄어 온다.

이야기의 시작은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의 경험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기회가 될 때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령사로 복무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손자에게 들려주곤 했다. 그러나 <1917>이 실화는 아니다. 감독은 아이디어를 확장시키기 위해 오랜 조사를 진행하던 중 독일군 퇴각 후 그들의 동향을 파악하지 못해 혼란에 빠졌던 영국군의 기록을 발견했고, 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두 젊은 전령사의 천로역정을 확장시켰다.

거의 실제 시간의 흐름을 쫓으며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을 고수하는 이 작품은 당연히 철저하게 스코필드의 두려움과 성찰 그리고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치밀한 ‘원 컨티뉴어스 숏’의 마법

영화는 시작부터 내달린다. 내적 인간의 심리와 외적·물리적 위기상황을 넘나드는 치밀한 시나리오와 매순간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답고 정교한 화면구성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관객들에게 생생한 현실감과 극도의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 같은 황홀경을 실현하는 데 가장 큰 몫을 해낸 일등공신은 일명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이라 불리는 독특한 편집기법이다. 촬영 전부터 치밀한 계획과 리허설로 준비한 이 기법은 개별적으로 촬영된 장면들을 정교하게 연결해 마치 계속 연결되는 하나의 장면처럼 가공한다. 물 흐르듯 군더더기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배경의 변화와 이야기의 연결성은 극도의 현실감을 확보한다. 감독과 제작진은 애초 리허설을 통해 배우들의 동선과 세트의 거리까지 세밀하게 계산해야 했다. 또 대부분 야외에서 이루어진 촬영은 같은 톤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자연조건을 기다렸다가 촬영하는 수고를 감내해야만 했다. 나날이 진보하며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여기에 더해짐으로써 가능해진 첨단의 성과물이자 테크닉이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카메라 시점의 연결에 치중하다 보니 다른 단점도 포착된다. 시각적으로는 하나의 열린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연속적 사건이지만 그 안의 에피소드들은 개별적으로 분절된 장처럼 이질적 요소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마치 PC게임의 내러티브처럼 관찰자를 흥분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전통적이고 유기적인 이야기가 동반하는 치밀한 서사와 정서는 상당 부분 붕괴된다.

현존하는 최고의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

이런 새로운 기법의 영화화에는 그 어느 때보다 카메라의 힘이 지대했다. 촬영을 맡은 로저 디킨스는 조명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를 통한 독특한 영상미로 유명하다. 현존하는 최고의 촬영감독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그는 유독 아카데미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제67회 시상식에서 <쇼생크 탈출>(1994)로 후보에 지명된 이후 13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매번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결국 2018년 제90회 시상식에서 드디어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촬영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1917>이 그의 작업에 있어서 이례적인 것은 평소 정적인 장면을 선호하고 롱테이크나 다수의 카메라를 사용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던 그가 앞서 언급한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실험적 형태를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평소 그의 장기인 명암과 실루엣이 뚜렷한 아름다운 화면은 그대로 살려내면서도 더불어 실험적 역동성까지 담아내는 데 성공한 그는 결국 올해 다시 한 번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함으로써 명성과 재능에 대한 평가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다.

지난 2월 9일(현지시간) 열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917>은 작품상·감독상을 비롯한 총 10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어 촬영상·음향효과상·시각효과상 등 주요 기술상 3개 부문을 수상했다.

변화와 파격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바른손이앤에이

(주)바른손이앤에이

<1917>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유력한 작품상·감독상 후보였다. 감독상을 수상한다면 <아메리칸 뷰티>(1999) 이후 가장 큰 간격을 둔 2회 수상이란 새로운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샘 멘데스의 공식적 장편영화 데뷔작인 <아메리칸 뷰티>는 제72회(2000)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5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촬영상)을 휩쓸며 당시 파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올해 아카데미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파격을 선택했다. 비영어권 영화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4개 트로피를 내준 것이다. 세계 영화제 중 자국 중심의 가장 폐쇄적인 영화제로 정평이 나 있던 터를 생각하면 특별히 작품상과 각본상 수상은 기적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이미 많은 분석이 나왔지만 이번 <기생충>의 수상은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인정은 당연하고, 그동안 아카데미가 백인남성주의 영화제란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 점진적으로 추진해왔던 자정과 변화의 시도와 맞물린 결과였다. 투표인단에 유색인과 여성의 비중을 높이는 등 안팎의 노력을 수년간 진행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세계 영화제의 권위까지 탐내는 아카데미에게 <기생충>은 시기적절하게 등장했고, 그래서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지난해까지 ‘외국어 영화상’으로 지칭되다가 올해부터 ‘국제영화상’으로 명명된 수상 부분의 첫 수상자로 기록되게 되었다는 것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한쪽에서 <1917>의 수상 불발에 냉정한 작품평가가 뒤로 밀린 명분을 위한 역차별이었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아카데미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마다 가장 혁신적이며, 놀라운 수상기록으로 한국영화 <기생충>이 언급되리란 사실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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