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아역스타가 평생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

정용인 기자
2020.02.17

제목 주디

원제 Judy

감독 루퍼트 굴드

출연 르네 젤위거, 제시 버클리, 핀 위트록 외

상영시간 118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0년 2월 26일

㈜퍼스트런

㈜퍼스트런

그녀와 첫 만남은 흑백이었다. TV에서 방영된 <오즈의 마법사>(1939)를 통해서다. 언제였나 찾아보니 1973년 12월 29일 KBS에서, 1979년 12월 24일 TBC에서 방영했다. 1973년을 기억하는 건 아닐 테고, 1979년에 봤을 것이다. 원래의 영화는 오즈에 떨어진 도로시가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부터 컬러로 바뀌는데, 당시엔 흑백TV였으니, 그 경이로운 장면전환을 알 수 없었다.

그녀, 주디 갈랜드가 미국 서부 캔자스의 시골마을에서 불후의 명곡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는 장면은 앞의 흑백으로 찍힌 부분에 들어 있다. 40년 전 형·누나와 영화를 보면서 “도로시가 기르던 개 ‘토토’는 이미 죽어 세상에 없겠네” 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기억나는데, 어쨌든 기자가 영화를 볼 당시엔 이미 도로시도 세상을 떠났다. 도로시였던 주디 갈랜드는 1969년 영국 런던에서 눈을 감았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주디>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녀의 마지막 삶을 주 배경으로 때때로 플래시백을 통해 그녀의 인생을 회고하는 스토리라인을 담고 있다. 원작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되던 뮤지컬 <무지개의 끝(End of the Rainbow)>이다. 중의적인 제목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궁금해하던 ‘어딘가’이기도 했다.

아역스타로 유명세를 떨친 사람이 평생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그 유명세가 지긋지긋하게 싫을 것이고, 운명의 저주처럼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 주디는 비교적 잘 극복한 인물이다. 그녀는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요즘 같으면 한창으로 간주될 나이다. 영화에선 느지막이 둔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은 ‘좋은 엄마’로 그려지고 있다(그녀의 삶에서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담았다면 그녀의 유족들이 뮤지컬 제작 및 영화화에 동의했을까).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배우 이야기

나이 들어 다시 본 <오즈의 마법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울긋불긋한 테크니컬러 필름의 질감이다. 지금은 재현하기 힘든 독특한 색감이다. ‘테크니컬러’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게 사자가 나와서 으르렁거리는 MGM영화사 로고다.

“이 벽 넘어서 뭐가 있는지 그림을 그려봐. 내가 떠올리는 건 중서부에 있는 시골 마을이야. 조그만 교회가 있고, 농부들이 살롱에서 취해 떠들고 있고, 그 부인들은 휴일에 머리하고 있지.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익을 갖다 주고, 너에게 돈을 주지. 영화를 만드는 것이 내 일이고. 주디, 네 일은 그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거야. 너보다 예쁜 아이들은 많아. 어쩌면 그 애들의 코가 너보다 높고, 이가 더 가지런할지도 모르지. 그 다른 예쁜 애들은 갖지 못하고 너만 갖고 있는 것이 뭔 줄 알아?” 장광설이다. 동시에 위압적이다. 장광설의 주인공은 루이스 B. 메이어다. MGM영화사를 만든 바로 그 사람.

겁에 질려 꼼짝 못 하고 ‘옛서(Yes, sir)’만 되풀이하는 소녀가 14세 앳된 얼굴의 주디다. 앵글이 톱 쇼트로 바뀌면 바닥에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벽돌도로가 드러난다. 그러니까, 저 ‘협박’을 받은 장소는 <오즈의 마법사> 촬영장 세트다. 주디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장점이 뭐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 한다. 메이어는 “목소리”라고 답한다. 다시 말해 그녀의 노래 실력이다. 그리고 메이어의 이 말은 주술(呪術)처럼 그녀의 일생을 지배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굴레에서 그녀는 평생을 벗어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삶.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햄버거도 먹을 수 없었고, 그녀의 생일파티조차 실제 생일과 무관한 날 언론 보도용으로 연출됐다. 그녀와 오랫동안 짝을 맞췄던 아역스타와의 관계도 은막과 달리 실제 사랑으로 이어질 수도 없었다.

돋보이는 르네 젤위거의 열연

“위대한 예술은 원래 그런 고통을 통해 잉태되는 거야”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잔혹했던 엔터테인먼트 산업. 영화가 담고 있는 것은 <오즈의 마법사> 이후 그녀의 삶이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14세의 도로시지만, 그 후 주디 갈랜드는 또 다른 은막의 스타-이를테면 <스타 탄생>(1954) 같은 영화의 주연이었고, 가수로서의 삶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 시작 장면에서 속옷 차림으로 에릭 칼멘의 노래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를 온몸을 쥐어짜며 부르던 르네 젤위거가 주인공 주디 갈랜드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익히 알고 있던 르네 젤위거의 통통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약에 찌들어 깡마른 말년의 주디 갈랜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얼핏 보면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영화는 50개가 넘는 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어 있다. 수상 소식이 들려와도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 같다.

경향자료

주디 갈랜드의 실제 삶, 그리고 그의 아이들

영화의 절정부에서 주디 갈랜드(사진)는 자신의 인생 노래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는데, 북받친 그녀는 끝내 노래를 마무리하지 못한다.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은 앞으로 영화를 볼 사람을 위해 남겨두겠다.

[시네프리뷰]주디-아역스타가 평생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


아무튼 영화에서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은 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마지막을 발견한 것은 다섯 번째 남편 미키 딘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부고기사에서 언급된 것과 달리 그녀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곳은 화장실이었다. 수면제 내지는 항불안제로 사용되는 향정신성 의약품 바르비투르산 과용이 사망원인이었다.

영화가 묘사하는 것처럼 그녀가 아역스타로 활동할 무렵 아동배우들에 대한 인권 존중 따위는 없었다. 밤늦은 촬영 때 아이들이 졸지 않도록 암페타민, 그러니까 히로뽕을 먹이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래서 잠을 못 자는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다시 수면제를 먹였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잃은 주디 갈랜드에게 MGM사 사장 메이어는 사실상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그에게서 헤어나려고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심지어 계약이 종료된 훨씬 뒤까지(MGM사는 주디 갈랜드라는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첫 아이를 낙태하게 했다).

그녀의 딸들도 남모르는 천형을 겪었을까. 영화에 주로 나오는 세 번째 남편 시드니 루프트 사이에 둔 남매 이외에도 두 번째 남편 빈센트 미넬리와 사이에서 낳은 맏딸 리자 미넬리까지 총 3명의 자녀를 뒀다(리자 미넬리는 영화에서 잠깐 나온다). 리자 미넬리는 <캬바레>(1972)에서 셜리 브라운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시드니와 사이에서 낳은 딸 로나 루프트도 <그리스 2>(1982) 등 영화에 출연했지만, 주로 연극과 TV 드라마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가수로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

지난해 연말, 주디 갈랜드가 부른 영화 <스타 탄생>의 주제곡 <The Man that Got Away>가 깜짝 빌보드 톱 10에 올랐다. 로나 루프트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올해 가장 기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밝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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