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볼 하프타임쇼에 세계가 ‘들썩’?

박효재 국제부 기자
2020.02.17

미국 마이애미에서 2월 2일(현지시간) 열린 슈퍼볼 하프타임쇼에서 가수 샤키라가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낸 고음에 지구 반대편 중동 국가들까지 들썩거렸다. 중동에서 미식축구는 인기 스포츠가 아니지만 샤키라가 선보인 특이한 고음이 이 지역 문화를 반영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태생 가수 샤키라가 2월 2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슈퍼볼 경기 하프타임쇼 무대에서 춤을 춘 뒤 댄서들에 둘러싸여 있다. / AFP연합뉴스

콜롬비아 태생 가수 샤키라가 2월 2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슈퍼볼 경기 하프타임쇼 무대에서 춤을 춘 뒤 댄서들에 둘러싸여 있다. / AFP연합뉴스

샤키라는 글로벌 히트곡 <힙스 돈 라이(Hips Don’t Lie)>를 부르던 중 갑자기 카메라로 가까이 다가와 혀를 날름거리며 고음을 냈다. 미국인에게는 생소한 행동이었고, 공연이 끝난 뒤 소셜미디어에는 “샤키라가 혀로 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만화 <스펀지밥> 캐릭터의 행동을 따라 했다는 추측부터 ‘마치 추수감사절 식탁에 올려진 칠면조가 사면(赦免)을 받은 뒤 내는 소리 같다’, ‘아침 알람시계 소리로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조롱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중동 출신 네티즌들은 샤키라의 행동을 ‘자그루타’라고 설명한다. 자그루타는 시리아·요르단·레바논의 결혼식 축하 풍습으로, 남성의 선창에 신부 측 여성 하객들이 단체로 혀를 날름거리며 고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샤키라의 친가 쪽 조부모가 레바논 이민자 출신이고, 그가 이날 공연에서 중동의 전통춤 벨리댄스를 추면서 자그루타라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일간 <더내셔널>은 이튿날 “레바논계인 샤키라가 자그루타로 그의 아랍 혈통에 경의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가정 출신 미국 가수 제니퍼 로페즈가 하프타임쇼 무대에서 푸에르토리코 국기가 새겨진 망토를 펼쳐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가정 출신 미국 가수 제니퍼 로페즈가 하프타임쇼 무대에서 푸에르토리코 국기가 새겨진 망토를 펼쳐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샤키라가 낸 고음이 콜롬비아 바랑키야 카니발에서 들을 수 있는 기쁨의 함성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샤키라의 고향이 콜롬비아 바랑키야인데다가 바랑키야 카니발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점에서 자부심의 표현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샤키라는 <힙스 돈 라이> 뮤직비디오에서 하얀색 콜롬비아 민속의상을 입고 춤췄다.

샤키라가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이번 하프타임쇼는 사상 최초로 라틴계 뮤지션들로만 헤드라이너를 꾸렸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세계적인 팝스타인 제니퍼 로페즈도 이번 쇼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라티노”라고 외치며 자신의 뿌리를 자랑스러워했다. 11살 된 딸과 함께 히트곡 <렛츠 겟 라우드(Let’s Get Loud)>, 그리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곡 <본 인 더 유에스에이(Born in the USA)>를 번갈아 불렀다. 그러면서 미국 성조기와 푸에르토리코 국기 문양이 새겨진 망토를 활짝 펼쳤다.

이번 슈퍼볼 공연은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가 제창도 미국의 라티노 가수 데미 로바토가 맡았다. 이때 한인 2세인 크리스틴 선 김이 아시아인 최초로 수화공연을 선보였다.

하지만 하프타임쇼에 열광하는 이민자들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하프타임쇼 무대에 오른 10대 소년들은 새장처럼 갇힌 구조물 속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외신은 이 구조물이 중남미 출신 미등록 이민자 부모와 자녀를 격리하며 논란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을 비판한 것이란 해석을 내놨다.

<박효재 국제부 기자 mann616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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