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안의 ‘드래그’를 마주하기까지

김주연 연극평론가
2020.02.10

<헤드윅>, <프리실라>, <킹키 부츠>, <라카지> 등 뮤지컬에서 ‘드래그퀸’은 자주 만날 수 있는 소재이자 캐릭터다. 화려한 의상과 드라마틱한 가발, 반짝이는 무대를 가득 채우는 흥겨운 노래와 춤에 이르기까지 드래그퀸은 뮤지컬이란 장르의 특성과 장점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켜 주는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화려함과 흥겨움이 주가 아닌 연극 무대에서 드래그퀸은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 전할 수 있을까. 매튜 로페즈 작, 신유청 연출의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은 바로 이 지점, 즉 연극에서 드래그퀸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흥미로운 대답이다.

쇼노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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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자체는 사실 특별하지 않다. 얼떨결에 여장을 하고 드래그 쇼에 서게 된 남자 케이시가 좌충우돌 끝에 드래그퀸으로 성공하게 되는 이야기. 하지만 드라마의 초점은 케이시가 어떻게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케이시가 드래그가 된 자신, 즉 조지아 맥브라이드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맞춰져 있다.

처음 케이시는 드래그 쇼를 완강히 거부한다. 아내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한 번도 의심한 적 없기에 드래그퀸이 된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어색해하면서도 점차 드래그의 화려한 의상과 분장 그리고 퍼포먼스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기본적으로 쇼와 무대를 사랑하는 케이시로서는 드래그 역시 하나의 매력적인 장르로 느껴졌던 것. 다음으로 케이시는 남의 노래, 남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페르소나를 찾아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게 만들어낸 케이시의 페르소나 조지아 맥브라이드는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되고, 케이시는 여기 만족하며 즐겁게 공연하고 돈도 많이 벌게 된다. 하지만 작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극 중 또 다른 드래그퀸인 렉시의 입을 통해 케이시에게 묻는다. “그게 다야? 드래그는 너에게 대체 뭐야?”라고.

사실 스스로 즐겁게 공연하고 대중적으로 인기와 성공을 누리게 되었음에도 케이시는 여전히 아내에게 자기 일을 숨기고 있다. 이는 케이시 스스로도 여전히 드래그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아내에게 똑같이 투사되고, 아내 역시 남편이 드래그 쇼를 한다는 것과 그것을 숨겨온 사실을 알게 된 뒤 배신감과 분노를 표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케이시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드래그가 무엇인지, 왜 자신이 드래그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마주하게 되고, 그 속에서 조지아 맥브라이드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진심으로 깨닫게 된다. 이 연극은 이처럼 케이시의 인생역전을 그린 스토리 자체가 아니라 그가 자기 안의 조지아 맥브라이드, 즉 드래그퀸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까지의 내적 성장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케이시뿐 아니라 각각 다른 이유로 드래그퀸을 선택한 이들에게 드래그는 어떤 의미인지 다채롭게 보여주면서 주제를 부각시킨다. 2월 1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김주연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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