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히어로들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타노스를 물리치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3가 막을 내렸다.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의 빈자리는 누가 채울까.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세대를 암시하는 마지막 작품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다.

존 왓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마블이 제작한 스파이더맨의 두 번째 솔로영화다. 시기는 엔드게임 이후다. 재가 되어 사라졌던 사람들이 돌아온 새로운 세상. 아이언맨은 없고, 캡틴마블·토르·닥터 스트레인지는 지구를 떠났거나 연락이 안 된다. 스파이더맨도 지쳤다. 피터 파커는 슈트를 벗어버리고 친구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난다. 이때 공기·물·불·흙으로 만들어진 빌런, ‘엘리멘탈’이 멕시코·모로코·이탈리아·체코에 나타나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어디선가 나타난 ‘미스테리오’가 엘리멘탈들을 상대하지만 혼자서는 버겁다. 쉴드의 닉퓨리 국장은 스파이더맨이 힘을 보탤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망설인다.

타노스를 물리쳤지만 피터는 엔드게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고교생인 피터에게 아버지처럼 생각했던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부재는 너무 컸다. “어딜 가도 그분이 보여요. 너무나 보고 싶어요.”

재난에 대한 회복력을 경제학에서는 ‘리질리언스(Resilience)’라고 부른다. 리질리언스는 ‘뛰어서 되돌아가다(to jump back)’는 뜻을 가진 라틴어 ‘리실리오’에서 나온 말로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말로는 회복력·회복탄력성 등으로 해석된다. 생태학자인 홀링은 1973년 논문 ‘생태계의 리질리언스와 평형’을 통해 리질리언스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리질리언스를 ‘변화나 교란을 흡수해 동일한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2000년대 미국사회가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서브프라임모기지로 재난 수준의 충격을 받자 사회·경제 시스템을 복원시키기 위한 개념으로 리질리언스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회학자 닐 애드거는 내부 혹은 외부의 경제적 관계에 의해 유도되는, 느리지만 급진적인 변화를 다룰 수 있는 네트워크 혹은 자본력을 ‘경제적 리질리언스’라고 정의했다. 또 사회를 재조직화하고 선택적 행동을 통해 사회망을 구축하는 능력을 ‘사회적 리질리언스’라고 규정했다.

특히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파괴된 미국 뉴올리언스는 폭동과 약탈, 방화, 총기사고, 느린 복구 등이 겹치면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도시 인프라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것과 함께 도시공동체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오바마 행정부는 록펠러재단과 함께 ‘국가 재해 리질리언스 대회’를 열고 도시회복력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리질리언스는 여러 분야에 적용된다. 도시공학에서 리질리언스는 재해에 대응하거나 복구할 수 있는 인프라나 도시계획으로 정의된다. 심리학에서는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힘을 의미한다. 경영학도 리질리언스를 주목하고 있다. 회복력이 약하면 기업 위기 때 손쉽게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 신체의 리질리언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초고속열차에 치여도 며칠이 지나면 회복된다. 하지만 정신적·내면적 리질리언스는 여느 청소년과 다르지 않았다. 망설이는 피터에게 토니 스타크의 친구, 해피 호건이 말한다. “토니가 그렇게 떠난 건 네가 돌아올 걸 알았기 때문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피터.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