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할머니 모시고 사는 뇌종양 3급 환자 홍정한씨 “지금 이순간이 내겐 가장 소중”

2017.09.05

채순연(왼쪽), 홍정한(오른쪽)

채순연(왼쪽), 홍정한(오른쪽)

“할머니보다 먼저 죽으면 안되잖아요.”

88세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홍정한씨(27)는 지난해 4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3년 정도밖에 살 수 없는 뇌종양 3급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5년 9월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일어난 전신발작이 그 시작이었다. 이따금씩 얼굴과 팔, 다리 등 전신발작 증세가 찾아왔지만 견뎠다. 하지만 2016년 4월 19일 찾아온 전신발작으로 그는 수술실에 들어가게 됐다.

대뇌 전두엽과 측두엽 사이에 4cm짜리 역형성 성상 세포종이 발견됐다. 역형성 성상 세포종은 악성종양 중 하나로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 3급 뇌종양이다. 이 종양을 가진 환자 100명 중 절반 이상이 3~4년 사이에 사망한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음에도 그는 할머니 채순연씨(88)를 돌본다. 채씨는 지난 3월 28일 알츠하이머(치매) 판정을 받았다. 뇌종양 3급 환자인 홍씨와 치매환자인 채씨의 이야기는 지난 7월 29일 KBS 1TV <동행-할머니와 고등어(120회)>편에 방영됐다.

5년 전부터 홍씨의 할머니는 찹쌀과 고등어를 매일 집에 들고 온다. 냉동실은 할머니가 사온 고등어로 가득 차 있다. 그가 노랗게 변색돼 상해버린 고등어를 새 걸로 교체하려고 하면 할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신다. 홍씨는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온 할머니는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대야를 끌며 고등어를 파셨어요. 이 일로 가족도 먹여 살렸고요. 일종의 과거의 애착이죠”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치매환자가 되면서 홍씨의 삶에는 변화가 생겼다. 매일 아침마다 생과일을 갈아 만든 과일주스와 울금·계피·대추차를 만들어 할머니에게 먹인다. 울금에 있는 커큐민은 치매에 효과가 있다. 할머니가 오후에 집 근처 노인복지관에 가면 홍씨는 학교 급식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3시간가량 한다. 이후 복지관에 있는 할머니를 집에 모시고 와서 저녁을 같이 먹고, 청소·빨래 등 집안 살림을 한다.

홍씨의 일상은 할머니에게 맞춰져 있지만 단 하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노래 연습이다. 하루 1시간씩 발성연습을 하고, 성악가에게 레슨을 받는다. 홍씨는 “군대에 있을 때 사지방(병영 내 PC방)에서 배우 조승우가 부른 <지금 이 순간>을 보게 됐어요. 제대 후 복학해 영화학과로 전과해 뮤지컬 두 편에도 출연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뇌종양으로 혀가 마비되는 증상이 잦아지면서 뮤지컬 연습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노래 연습을 한다. 지난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홍씨와 할머니의 이야기는 8월 26일 KBS 1TV <동행-할머니와 고등어 그 이후(124회)>편으로 방송된다. “고난으로 다시 태어났기에 ‘지금 이순간’이 소중합니다. 내 삶을 통해 누군가가 희망을 갖는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정상빈 인턴기자 literature09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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