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박미례의 <바닷가 할아버지로부터>-치열한 삶과 생존에 대한 헌사

2016.12.13

야생의 동물과 어부 사이에는 별다른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운 듯 보이지만, 거대한 힘이 흐르는 자연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명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그림은 박미례의 <바닷가 할아버지로부터>라는 작품이다. 4m가 넘는 광활한 캔버스를 갖가지 이미지들로 가득 채운 그림이다. 그리고 그림 한가운데에는 고기잡이배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갑판에 가지런히 걸린 등에 불을 밝히고 배는 거친 파도를 뚫고 나아간다. 짙푸른 바다는 밤하늘같이 어둡고, 노란 불빛을 밝히는 이 작은 배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같았다. 넓디넓은 바다는 삶의 터전이고 바다를 나서는 것은 생존의 문제다. 작업을 위해 먼 바다로 나가다 배가 뒤집힐지라도 바다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이상, 나갈 수밖에 없다. 그들 자신의 삶을 이 바다에서 꾸려갔고, 가정을 이루었으며, 이 바다에서 아이를 낳고 길렀다. 바다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은 바다와 한몸처럼 뭉쳐진다.

자연이 아닌 인간의 삶을 그리기 시작

화면의 오른쪽 위에는 거대한 항공모함이 어선을 향해 밀고 들어온다. 이 거대한 배는 바다가 생계의 현장이었지만, 힘과 힘이 부딪치는 전장이었음을 새삼 알려준다. 가운데에 자리한 어선과 비교해보면 위압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거대한 존재가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을 때 느끼는 공포감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 거대한 강철선이 바다에서 엄습해오는 것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경계선을 만들고 지키기 위함이다.

박미례, <바닷가 할아버지로부터>, 487cm×237cm, 캔버스에 유화, 2016/작가 제공

박미례, <바닷가 할아버지로부터>, 487cm×237cm, 캔버스에 유화, 2016/작가 제공

그 안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경계를 넘는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그들을 막아선다. 생존을 위한 사투가 벌어진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자리한 또 다른 어선은 해경의 단속을 피해 도주하는 중국 어선이다. 어족이 남아 있지 않은 그들의 바다를 벗어나 타국의 바다로 월경한 이들이다. 생존을 위해 넘어왔지만 그들의 존재는 다른 누군가의 생존을 위협한다. 지금도 서해에서는 목숨을 건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다시 화면 가운데에 자리한 이 작은 어선을 바라본다. 힘과 힘이 충돌하고, 생존을 위한 사투가 계속되는 바다에서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부지런히 바다를 오가는 거대한 화물선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거친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배를 몰고 바다로 나아가는 어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헤밍웨이가 쓴 구절 하나가 떠오른다. “노인의 모든 것이 늙거나 낡아 있었다. 하지만 두 눈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다와 똑같은 빛깔의 파란 두 눈은 여전히 생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이인규 옮김, 문학동네, 2012. 10쪽)

그림을 그린 박미례는 야생의 자연을 그리던 작가다. 지금도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는 자연,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는 자연을 거대한 화면에 쏟아내듯 묘사한다. 잠시 2014년에 그린 <천국과 지옥 사이>를 들여다보자. 힘이 가득 실린 붓질, 넘치다 못해 물감덩어리를 짓이겨 넣은 것처럼 보이는 질감, 이야기와 표현이 마치 한몸처럼 느껴진다. 이미지와 표현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고 넘쳐흐른다. 그리는 대상과 그리는 방식이 이렇게 한몸처럼 느껴지는 작가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박미례가 2016년에 접어들어 갑작스레 자연이 아닌 인간의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궁금해 물어보니 한 번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답했다. 박미례는 속초에서 자랐고, 할아버지는 어부였다. 더 이상 배를 탈 수 없을 때까지 바다에서 그의 삶을 꾸려나갔다. 이 그림은 이제는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에 대한 헌사였다. 사실 <바닷가 할아버지로부터>는 지금까지 박미례가 해왔던 작품의 연장선에 서 있다. 야생의 동물과 어부 사이에는 별다른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운 듯 보이지만, 거대한 힘이 흐르는 자연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명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천국과 지옥 사이>, 420cm×200cm, 캔버스에 유화, 2014/작가 제공

<천국과 지옥 사이>, 420cm×200cm, 캔버스에 유화, 2014/작가 제공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

다만 차이가 있다면 추상적인 생각들을 사적인 경험으로 옮겨가면서 얻은 구체성일 것이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직접 그 이야기를 듣지 않는 이상, 그의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아주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그림은 공감을 불러온다. 사적인 이야기를 알지 못해 발생하는 공백에 보는 이들 각자의 이야기가 채워질 것이다. 완전히 동일한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삶의 무게를 이겨내며 굳게 나아가는 인간의 삶은 너무나 보편적인 이야기니까.

<바닷가 할아버지로부터>에서 삶과 노동의 무게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거친 바다를 헤치고, 거대한 화물선과 군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 작은 어선과 같다. 하루하루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귀항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며,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이 과정이 너무나 고되어 그만두고 싶어질 때도 생긴다. 반복되는 삶의 고리가 끊어졌을 때, 해방감과 함께 허무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언젠가 해고를 당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다시는 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모두가 등을 돌린 듯한 기분이 들고, 더 이상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처럼 내몰린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 작은 배처럼 다시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이 작은 배 앞에 무지개 길이 드리워진 것처럼 파도를 막아낼 수 있는 길이 열릴 것만 같았다. 물론 <바닷가 할아버지로부터>는 박미례와 그의 할아버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바라보는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자라나고 있었다.

<권혁빈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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