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송란희 한국 여성의 전화 사무처장 “폭력에 반격하는 여성 인상적”

2016.10.25

/ 한국 여성의 전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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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 16일 폐막한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의 슬로건이다. 진심은 송란희 한국 여성의 전화 사무처장이 영화제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10년의 마음이다. 한국 여성의 전화는 폭력 없는 세상, 성평등한 사회를 내걸고 1983년 문을 열고 성폭력·가정폭력 등의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회원들의 활발한 참여로 전국 25개 지부를 두고 해매다 1000건이 넘는 상담을 접수했다. 상담의 내용은 잔혹하고 마음 아픈 것들이 많았고, 때때로 기사화돼 사회를 뒤흔들어 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쉽게 잊혀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누가 보러 올까 걱정도 했습니다. 그래도 영화제를 하면 영화를 보는 두어 시간만큼은 폭력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지 않겠어요?”

진심을 담아 단순하게 시작한 영화제가 어느덧 10돌을 맞았다. 열 살 생일잔치는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로 뜨거운 상태에서 맞을 수 있었다. 송 사무처장은 “올해는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확실히 많은 변화를 느꼈다”고 말했다. 송 사무처장은 영화제 준비위원회에서 수석 프로그래머 역할을 맡고 있다. 출품작을 심사하고 결정하는 역할이다. “우선 출품 편수가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한국영화를 많이 상영하고 싶어도 작품이 적었는데, 예년 120여편 응모하던 작품이 180여편으로 확 늘었고, 내용면에서도 주제의식을 담은 훌륭한 작품들이 많아졌습니다. 여성 이슈에 관심이 있어서 영화를 만든다는 사람뿐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여성 이슈에 관심을 보이고 보다 전문적 능력을 발휘해 만들었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영화 내용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성인권영화제에 ‘폭력’은 단골 소재였지만 올해의 ‘폭력’은 달랐다. “예전에는 폭력 피해자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그린 것이 많았어요. 불쌍하고 위축돼 있고 우울한 모습요. 그런데 올해는 반격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성희롱을 일삼는 고교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볼펜으로 찍어버리는 여선생님이라든지 거창한 것은 아니라도 일상에서 당장 가능한 반격의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디어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이미지를 재현한다. 송 사무처장의 지론이다. 송 사무처장은 미디어가 여성을 고정관념으로 묘사한다고 비판할 때 이 이야기를 꺼냈었다. 이번엔 지난 한 해 논쟁 속에서 성장한 여성들의 사회적 자신감이 영화에도 반영되는 것을 확인했다.

송 사무처장은 “매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영화 심사, 번역 등 여성의 전화 자원활동가들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 대한 감사도 ‘단순한 진심’이라는 말에 포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제를 키운 것은 역시 관객의 몫이다. 영화가 한 편 끝나고 관객들이 감상을 주고받는 자리가 영화제를 인권의 장으로 키운다. 각자의 경험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시간이다. 송 사무처장이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자랑스러워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송 사무처장은 영화제의 인상 깊은 작품으로 <임브레이스>를 추천했다. “뚱뚱한 여성이 자신의 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리고 열광적 반응을 얻으면서 자신에게 반응한 사람을 찾아 만나고 다니는 내용입니다. 몸에 대한 긍정을 다룬 영화예요. 어떤 관객분이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여성이 한 명도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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