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조용하고 은밀하게 ‘안방의 세월호’ 참사

2016.10.18

부부와 가족이 편히 쉬는 곳, 따뜻한 잠자리가 있는 곳이 안방이다. 안방에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범인에 의해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벌어진 대규모 살인사건이 바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발생한 곳은 가장 많은 경우가 집이고 안방이다, ‘엄마, 숨이 안쉬어져’ 시리즈는 이번호부터 4회 동안 가습기 살균제 노출피해가 이뤄진 장소적 특징을 다룬다. 집, 병원, 직장, 그리고 해외에서의 노출피해다.

많은 사람들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안방의 세월호’라고 부르는 데 공감을 표시한다. 세월호 사건은 짧은 시간 동안 배가 바닷속으로 침몰하며 300명이 넘는 아이들과 승객들이 스러져가는 끔찍한 현장을 수많은 국민들이 TV로 고스란히 지켜보며 몸서리치는 충격을 받았고, 그 여파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1994년 제품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2011년 말 정부의 조사 결과로 사건이 알려질 때까지 17년 동안 전국 수백만 가정의 안방에서 어린아이와 산모, 그리고 노인들이 가습기에서 뿜어져나오는 농약이자 독극물에 노출되어 짧게는 수일 만에, 길게는 몇 년 동안에 폐가 서서히 굳어가면서 숨을 쉬지 못하고 눈과 피부 등 몸의 각종 장기가 망가져가는 고통을 겪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며 승객들이 물속에서 숨을 못 쉬는 고통 속에 스러져갔듯 안방에서 시민들이 살균제라고 하는 독극물의 고통 속에 스러져갔던 것이다.

이렇게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발생과정은 다르면서도 같은 특징을 보였는데, 정작 사건 발생 이후의 해결과정은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다. 아무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고 유족과 피해자들을 거리로 내팽개쳤다. 지금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지난 5년 동안 광화문 네거리에서 셀 수 없는 기자회견과 일인시위를 했는데, 세월호 피해자들의 텐트 농성장이 차려진 이후 같은 공간에서 종종 열리는 두 참사 피해자들의 외침은 동병상련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설명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모습들이었다.

어린이가 사망한 안방에서 아빠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침대에 앉아 있다. 침대 위에는 아이를 숨지게 한 가습기 살균제와 아이사진 그리고 사망진단서가 놓였다. /최예용 제공

어린이가 사망한 안방에서 아빠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침대에 앉아 있다. 침대 위에는 아이를 숨지게 한 가습기 살균제와 아이사진 그리고 사망진단서가 놓였다. /최예용 제공

참사 이후의 해결과정 똑같은 두 사건
‘안방의 세월호’라는 표현처럼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발생한 가장 많은 경우는 집이고 안방이다. 가습기라는 가전기기가 주로 겨울철에 잠자는 방에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외부활동을 멈추고 편히 쉬는 곳, 부부와 가족의 따뜻한 잠자리가 있는 곳이 안방이다. 안방에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범인에 의해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벌어진 대규모 살인사건이 바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다. 범행은 17년 동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되었고, 범행대상은 대한민국 5000만 인구의 20%인 1000만명이었다. 범행에 희생된 피살자 신고는 9월 30일까지 거의 1000에 이르는 976명이다. 피살자를 포함한 상해피해자는 5000명에 육박하는 4707명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실제 범행 피해자는 신고된 숫자의 수십~수백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2012년 상반기와 2013년 1년 동안 전국의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피해환경조사를 진행했었다. 2012년에는 한국환경보건학회 차원의 조사였고, 2013년에는 질병관리본부의 정부 조사였다. 그때 여러 피해자들의 안방을 들어가봤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벌어진 안방은 겨울철의 안방이었고, 어린아이와 산모들이 함께 있던 안방이었다. 올해 들어 60~70대의 노인 피해자들에 대한 신고가 부쩍 늘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전체 사망피해자의 절반가량이 3세 이하의 영유아들이었고, 30대 산모여성들이었다. 영유아가 있는 가정의 겨울철 안방 풍경은 엄마가 아이를 안고 따뜻한 바닥에 요를 깔고 자고 아빠는 침대에서 자거나 늦게 들어와 거실 소파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다. 추운 겨울이라 창문과 방문을 꼭 닫고 겨울밤을 난다. 바로 그러한 안방에서 살인범인 가습기 살균제는 공범 가습기를 통해서 뿜어져 나왔고, 방바닥을 향해 내려앉았다.

코앞에 있는 ‘범인’을 오랫동안 몰라
아이가 콜록거리고 감기 기운이 있는 상황이라면 부모들은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자주 찾았고 자주 틀었다. 가습기 살균제는 아이와 가족의 건강상태를 악화시켰지만 부모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병원에서 습도조절을 잘하라는 말에 따라 가습기를 더 자주 찾았고 가습기 살균제를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서 사용했다. 아이와 가족의 상태는 더 나빠졌고 악순환은 거듭되었다. 급기야 가족 중 한 사람이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119 구급차에 실려가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상황으로 악화된다.

그런데 살인범은 한 명이 아니었다. 안방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환자가 실려간 병원 곳곳에도 살인범은 도사리고 있었다. 응급실에도 중환자실에도, 입원실에도 가습기가 돌아갔고 가습기 살균제가 사용되었다. 많은 환자들의 진단명에 ‘특발성’ 또는 ‘상세불명’이라는 말이 형용사처럼 따라 붙었는데, 이는 원인을 알지 못한다, 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어 특정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원인이 아니 범인이 바로 코앞에 있었지만 그 누구도 범인임을 눈치채지 못했고, 살인범은 그렇게 17년 동안 태연하게 범행을 저질렀다.

2011년 9월 중순의 일이다. 8월 31일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정작 구체적인 제품명에 대해서 발표를 하지 않아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첫 성명서에서 ‘사람 죽인다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명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주변의 슈퍼마켓을 뒤졌다. 옥시싹싹, 애경가습기메이트 등 제품들을 하나둘 구입해서 모았다. 그러면서 피해자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정부가 피해신고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신고를 받는다는 소식을 언론에 알린 며칠 후 어느 날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여성이었다. 우리 아이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세상을 떠났어요…. 심상치 않았다. 전화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제가 댁을 찾아가서 말씀을 듣겠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에 찾아가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에 <한겨레신문> 기자가 연락해와 피해신고가 들어오냐고 물었다. 이러한 사례가 있어 내일 찾아가기로 했다고 하니 기자도 오겠단다.

서울 강남의 작은 아파트였다. 결혼 후 이듬해인 2008년에 낳은 아이는 건강하고 활발했다. 세 살 때인 2010년 겨울부터 가습기를 틀었고, 집 옆에 있는 작은 슈퍼에서 300㎖짜리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작은통을 3개쯤 사다 썼다. 제품 표면에는 ‘가습기 청소를 간편하게-살균 99.9% 아이에게도 안심’라고 적혀 있었다. 아래쪽에는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도 있었다. 영어로 Relaxing, 한글로 라벤더향이라고도 쓰여 있었다. 슈퍼 주인이 요즘 이 제품이 인기라는 말도 했다. 아래쪽을 누르면 일정량이 뚜껑 쪽으로 올라와 그만큼만 병뚜껑에 따라서 가습기 물통에 넣었다.

2010년 11월부터 아이가 기침을 하며 감기증상을 보였다. 피곤해 했다. 동네병원에서는 단순 감기라고만 했다. 몇 번 다녔지만 낫지 않았다. 이듬해 1월 아이는 좋아하는 음식도 잘 먹지 않았다. 그래도 잘 놀았다. 그러다 1월 말 새벽에 아이가 이상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병원에서 아이의 폐사진을 찍었는데, 폐포가 터져 늑막 안에 공기가 차는 기흉이라고 했다. 사흘 뒤부터는 혼자서 숨을 쉬지 못해 산소호흡기가 채워졌다. 폐가 딱딱하게 굳었다며 폐섬유화라는 말을 의사가 했다. 하지만 의사도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다. 아이는 병원에 실려간 지 한 달 조금 지난 2월 말에 숨을 거뒀다.

가습기와 살균제를 사용했던 방을 보여달라고 했다. 작은 방에 장롱이 있고 창문 옆에 침대가 놓였다. 엄마는 아이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까봐 방바닥에 요를 깔고 잤고 아빠는 침대에서 잤다. 침대 끝 쪽에 가습기를 놓았다. 아침이면 창문에 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밤마다 가습기를 틀었고, 가습기 살균제도 잊지 않고 넣었다. 3살 아이를 앗아간 안방의 모습이었다. 이 이야기는 9월 19일자 신문 2면에 ‘가습기 살균제 세 통, 그 뒤… 3살 준식이는 세상을 떠났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됐다.

2013년 서울 은평구의 한 사망자 사례의 환경노출조사를 갔었다. 2000년 전후에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했고, 2004년 이사를 한 이후 2011년까지 애경 가습기메이트와 집 인근에 있는 이마트의 자체상품(PB)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12년 동안 장기간에 걸친 사용 사례였다. 1998년생인 첫째아이가 5살이던 2002년 3월 호흡곤란이 왔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고,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6월 초 사망했다. 하나뿐인 아이를 잃은 부부는 충격 속에 부모집으로 이사했고, 그 이후에도 가습기와 살균제를 계속 사용했다. 2006년 초에 엄마에게 호흡곤란이 왔고, 심장이 답답해지는 증세로 고통스러웠다. 둘째가 2004년 태어났는데, 엄마가 아프기 시작한 해의 9월에 둘째마저 호흡곤란으로 입원했다. 모세기관지염 진단이 나왔다.

서울 은평구의 어린이 사망 사례의 노출환경조사 집 구조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안방의 조사지도./최예용 제공

서울 은평구의 어린이 사망 사례의 노출환경조사 집 구조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안방의 조사지도./최예용 제공

이사한 집까지 따라와 남은 가족 위협
안방의 살인자는 이사한 집을 따라다니며 남은 가족의 생명을 위협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범인임을 모르는 병원에서는 첫째의 사망진단기록에 무려 7개의 폐질환 질병명을 기록했다. 간질성폐질환, 폐렴, 전신성캔디다증, 패혈증, 성인성호흡곤란증후군, 자발성기흉, 종격동폐기종이 그것이다. 조사자는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의 사용환경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이사하기 전에 살았던, 그러니까 사망자가 살았던 집의 구조를 조사했다. 먼저 집의 평면도를 그리고 아이가 잠을 잤던 안방에 대해 보다 자세히 물었다. “여기에 문이 있구요, 창문은 이쪽에 달렸어요. 이쪽 구석에 침대가 있었는데 안쪽에 아이를 뉘고 엄마는 그 옆에서 잤죠. 가습기는 침대 옆 화장대 위에 놓았고 가습기의 방향은 침대 쪽으로 늘 해놓았어요. 병원 갈 때마다 습도조절을 하라고 해서 가습기는 얼굴에 바로 쏘이도록 높이와 방향을 맞춰 놓았죠.” 방의 가로 세로 길이와 높이를 재고 창문의 길이도 재서 기록했다. 침대의 높이와 길이, 가습기를 놓았던 화장대의 높이도 쟀다. 그 과정을 모두 사진에 담았다.

이렇게 조사한 내용은 나중에 각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에 어느 정도의 농도로 노출되었는지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살인사건의 현장에 대한 경찰의 수사나 다름없는 그런 것이었다. 매우 오래전부터 가습기를 사용했고, 사망자가 일찍 발생한 경우였지만 유족들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보관하고 있었다. 아이가 사망한 후 부모댁으로 이사할 때 갖고 갔던 가습기 살균제를 창고에 두었는데, 사건이 알려진 후 찾아보니까 나왔다는 것이다. 옥시싹싹의 초기모델로, 필자도 처음 보는 제품 디자인이었다.

2013년 겨울 대전지역에서 신고한 피해자들을 조사했다. 거실 한편에 하늘나라로 간 아이가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해준 발도장과 아이를 안고 활짝 웃는 엄마와 아빠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3살짜리 남자아이를 잃은 아빠에게 가습기를 사용했던 방을 보여달라고 했다. 아이가 잠자던 안방에는 가습기 대신 빨래걸이가 놓여 있었다. 아빠는 침대에 걸터앉아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2011년 8월 31일 저녁 뉴스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산모 사망의 원인이라는 정부 발표를 보는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내 손으로 우리 아이를 죽게 한 거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특징 중 하나는 피해자가 가해의식을 갖는다는 점인데,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한다.

올해 초부터 4월 말까지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신고를 받지 않았다. 작년 말까지만 신고를 받는 걸로 환경보건법 고시에 정해 놓았기 때문이란다. 4월 중순 롯데마트 사장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갑작스런 사과를 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모든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5월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대한민국 최대의 사회 이슈가 되었다. 정부는 피해신고를 받기 시작했고, 한 달에 1000명이 넘는 신고가 쏟아졌다. 하지만 안방의 살인범을 신고한 사람들보다 아직도 신고하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10월 4일자로 3개월간 진행된 국회의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특위 활동이 끝났다. 옥시의 영국 본사가 사과하고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지만 진상규명, 피해대책, 재발방지라는 국정조사의 3대 과제에는 한참 못미치는 상황인데도, 새누리당은 국정조사를 연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사망피해자 달력과 국회의사당을 향해 사망자의 숫자만큼 절을 거듭하며 호소했지만 특위의 새누리당 간사는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이란다. 1년 전에 옥시싹싹과 애경 가습기메이트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한 유족은 아버지 영정을 들고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가습기 살균제 살인범들이 활개쳤던 겨울이 오고 있는데도 피해자들이 다시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